총 3974건
통불교
통불교보살회의 약칭.
2025-10-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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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본원
금강대도
세종시에 있는 금강대도 총본산을 말하며, 금강대도 총본원과 연화대도 총본원으로 나뉘어지는데, 남자는 금강대도 총본원, 여자는 연화대도 총본원으로 병립하여 운영된다. 총본원 산하에는 종무원·교화원·교무원 등 많은 부서가 있으며, 지방에도 서울·부산·대전 등 여러 곳에 지방 본원이 운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건곤부모님과 금강대도의 진리』(이재헌, 미래문화사, 2003) 『종리학 연구 창간호』(금강대도종리학회, 2001).
2025-10-1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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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도인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본명은 이송운(李松雲)이다. 고경민은 12살 되던 해에 해선암에 머물 때 심부름을 가다 청운도인을 만나 그를 따라가 속리산에서 수련법(단전호흡)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그곳에서 만물은 흐르고 유전(流轉)한다는 ‘돌’의 법칙을 전수 받았다고 주장한다. 청운도인은 고경민이 하산할 때 사람을 위한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라는 인체주의(人體主義), 모두가 하나같이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일화통일(一和統一),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정명완수(定命完遂)를 가르쳤다고 한다.
2025-10-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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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도
각세도의 창립자인 정석문은 1949년 각세도 남관에 입교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남관이 이병태와 한병헌, 임선호, 정수성, 전태성 등에 의해 분파되는 과정에서, 각세도에서 이탈하여 자택에서 수도하게 된다. 그러던 중 태양신(太陽神) 일정선생(日精先生)의 영감으로 ‘일월도(日月道)’라는 도명(道名)과 주문(呪文)을 받고, 일월도를 설립한다. 하지만 각세도 교인들이 많이 있는 지역에서 교세확장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진실한 도란 사람마다 가지는 자기의 천성에 있다는 것을 천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교명을 ‘천성도’로 바꾸었으며, 1955년 충남 금릉군 대덕면 화전리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
2025-10-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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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조는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 1887). 천리교에서는 그녀가 인간세계를 창조한 오야가미(親神) 텐리오노 미코토(天理王命)에게 빙의되어 계시를 받아 교단을 세운 1838년을 입교(立敎)의 해로 보고 있다. 그녀는 11살 때부터 하늘의 계시를 받아 신의 야시로(やしろ, 신이 강림하는 곳)가 된 이래 친인척의 반대, 이웃의 비난과 조소, 승려나 신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나카야마 미키는 신의 뜻에 따라 빈민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었으며, 안산의 기도나 병을 낫게 하는 능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64년에는 신의 전달자인 혼세키(本席)가 된 목수 이부리 이조(飯降伊蔵)가 ...
2025-10-1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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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선법
천존회
천도선법(天道仙法)은 천존회의 창립자인 모행룡(牟幸龍)과 그의 부인 박귀달(朴貴達)이 1986년 6월 29일 천마산에서 수도하던 중 천계 천존으로부터 하사받았다고 하는 천계(天界)의 수련법이다. 천도선법은 대우주로부터 나오는 선천(先天)의 원기(元氣)를 체내에 끌어들여 몸과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 가며, 기(氣)를 운용하고, 대자연과 동화해가는 체계화한 기(氣)수련법이다. 천도선법 수련은 크게 천문, 수련동작(행공), 참선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2025-10-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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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회월보
천도교
일제는 한일강제병합 후 조선인에게 정기간행물의 발행을 ‘허가제’로 하고, 허가 자체를 극도로 제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인들이 발행한 일간지는 모두 합방 전에 발행허가를 받은 일간지 《매일신보(每日申報)》와 월간지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그리고 《중외의약신보(中外醫藥申報)》 3개 밖에 없었다. 천도교회월보는 1910년 창간되어 이종일이 사장을 맡았고, 1937년 5월 폐간되기까지(통권 제295호) 수차례 압수와 삭제, 차압을 당했다. 문제된 기사내용을 보면 ‘혁명이 발발한 지나국’소개(1932년 7월), ‘三一運動( 己未運動)의 불굴의 정신을 알리고 현재 사회문제를 비판’(1933년 ...
2025-10-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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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고사모파
선도교(태을교)를 세운 고판례(高判禮)가 이상호의 동화교와 합작하여 약 2년간 용화동에 머물다가 1933년 겨울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면 오성산에 집을 짓고 이주하여 동화교회수양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나 고판례가 1935년에 사망하자 그를 추종하던 고민환·이용기·백윤화가 제각기 교통을 받았다며 각자 다른 교당을 짓고 교법도 달리 포교하였는데 이들 교파를 증산교고사모파라고 한다. 고민환(高旻煥, 1887~1966)은 500석 지기의 부호로 군산 은적사에서 승려생활을 했었다. 사욕이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고판례를 만나 성포(聖圃)라는 호를 받고, 고부인은 그에게 도장의 모든 일을 맡겼다. 훗날 강일순과 고판 ...
2025-10-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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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광
입교 후 원평교당 창설에 앞장섰으며, 1928년 제1대 제1회 기념총회에서 불법연구회 제2대 회장에 피선되어 교단 초창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31년 3월, 총회에서 불법연구회 회장에 재선된 조송광은 그 해 8월, 소태산과 더불어 부산·경주 등 경상도 일대를 순회했다. 원불교 교단 최초의 해외 교화가 그에 의해 시작되었다. 1931년 11월 장남 수환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한의원을 열어 오사카교당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귀국하였다. 1936년까지 9년간 불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조송광은 그 이후 16년간 원평교당 교도회장으로서 지역 교화 발전에 적극 노력했다 ...
2025-10-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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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옥황상제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대순지침』의 내용에 따르면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계시를 받으신 도주(道主)님께서 종통을 세우셨다.”라고 하고, “도주님께서 진주(眞主: 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이며,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은 12월 4일로써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생을 뜻하심이다.”라고 하여 도주 조철제가 강일순 구천상제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도주 조철제는 1925년에 종단 무극도를 창도하여 대순진리에 의한 종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해방이후 1948년에 다시 종교활동을 부활하여 도인(道人)의 각종(各種) 수도 ...
2025-10-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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