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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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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의 창립자인 정석문은 1949년 각세도 남관에 입교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남관이 이병태와 한병헌, 임선호, 정수성, 전태성 등에 의해 분파되는 과정에서, 각세도에서 이탈하여 자택에서 수도하게 된다. 그러던 중 태양신(太陽神) 일정선생(日精先生)의 영감으로 ‘일월도(日月道)’라는 도명(道名)과 주문(呪文)을 받고, 일월도를 설립한다. 하지만 각세도 교인들이 많이 있는 지역에서 교세확장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진실한 도란 사람마다 가지는 자기의 천성에 있다는 것을 천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교명을 ‘천성도’로 바꾸었으며, 1955년 충남 금릉군 대덕면 화전리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

2025-10-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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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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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채지가』는 지초를 캐며 부른 노래라는 뜻이다. 지초는 불로초로 불렸던 영약(靈藥)이다. 현재 채지가는 증산도, 순천도, 대순진리회 등 여러 교단에서 출판, 보급하여 교화에 이용하고 있다. 수운교의 『채지가』는 일제시기부터 필사본으로 알려졌고, 경전 못지않게 많이 읽혀왔다. 「남조선 뱃노래」, 「초당의 봄꿈」, 「달노래」, 「칠월식과」, 「남강철교」, 「춘산노인이야기」, 「궁을가」등 7편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중에 「궁을가」라는 제목의 가사는 현재까지 여러 편이 전해오고 있다. 첫 구절이 무슨 말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붙여지는데, “대명천지 일월하에....”로 시작하는 「대명천지 궁을가」(이를 ‘전남대본’이라 ...

2025-10-1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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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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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 등과 함께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여 종교활동을 본격화하였으며, 한때 수만에 이르는 신도가 모이기도 하였다. 교단이 커진 후 김항의 제자들은 각자가 후계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분열하였고, 김영곤은 하상역에 맞서 연산과 공주지방에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따로 교단명칭을 정하지 않고 김항이 생존시 부르던 ‘무극대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고, 전북지방까지 포교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임도봉은 계룡산 신도안에 ‘중앙대종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고, 무극기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 ...

2025-10-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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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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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역사적으로 중광은 나철(羅喆, 1863~1916)이 1909년 1월 15일 자시(子時)를 기하여 한성 북부 재동(漢城 北部 齋洞)의 취운정(聚雲亭) 아래 8통 10호의 초가집 북벽(北壁)에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 대례(大禮)를 행한 뒤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한 사건을 의미한다. 재동의 위치는 현재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으며, 가회동(嘉會洞, 북), 계동(桂洞, 동), 경운동(慶雲洞, 남), 안국동(安國洞, 서)과 접해 있다. 이 때 참여한 인물들은 전남 강진 출신의 오기호(吳基鎬, 1863~1916), 충남 부여 출신의 강우(姜虞, 1862~1932), 최전(崔顓, 미상~1918), ...

2025-10-0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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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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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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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정치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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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주평화국(宇宙一主平和國)

일주정치창립(一主政治創立)이란 우주일주평화국의 4대 사명 중 하나로 ‘한님 다스리는 정치로 정치를 개선함’을 의미한다. 우주일주평화국을 창설한 양도천은 1950년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활동을 하던 중, 1964년 계룡산에 입산 특별기도를 하다가 “우주가 ‘한님’의 집이며, 새 역사 창조의 사명이 한국에 있고, 그 사명자가 바로 자신이며, 계룡산이 그 근거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 해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석계리 계룡산 성도봉(成道峯) 아래에 ‘하나님의 집 공회’라는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세계일가공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79년에는 ‘세계일주국’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세 ...

2025-10-0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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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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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은 도인들에게 설법할 때 “천지만물이 한울의 신령한 기운[靈氣]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고, 우리 도의 뜻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고[以天食天], 한울로써 한울을 화할[以天化天] 뿐”이라 하였다. “천지는 한 기운[一氣]”이요 “만물은 천도의 표현”이다. 이돈화는 『신인철학』에서 ‘이천식천’을 ‘이질적 기화(異質的 氣化)와 동질적 기화(同質的 氣化)’로 풀이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사멸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생물은 다른 종의 생물을 먹는 수요자가 되는 동시에 자신이 먹히는 공급자가 된다. 이는 참담한 생존경쟁이 되나 우주의 전적 행위, 한울의 전적 기화작용으로 보면 우주 그 자체를 키우기 위한 교 ...

2025-10-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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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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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매(魑魅)는 산 속의 요괴, 망량(魍魎)은 물속의 괴물을 말하는데, 이들이 합쳐져 온갖 도깨비를 지칭하는 하나의 성어(成語)가 되었다. 원래의 의미 외에 그러한 요괴와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가지각색의 악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2025-10-0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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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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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68년 4월 4일 교정원 교화자문위원회에서는 신문발간연구위원회 구성건의를 결의하고, 5월 11일 ‘신문발간연구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듬해인 1969년 3월 1일 원불교의 대내적인 성장과 일원대도의 대외적인 선양을 통해 인류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과 취지 아래 ‘원불교신문사’가 설립되었다. 5월 27일 문공부에 ‘원불교신보’라는 명칭으로 등록을 필했고, 한국주간신문협회에 가입했다. 6월 1일 《원불교신보》 창간호를 발행했다. 격주간, 월 12면 발행으로 타블로이드판 인쇄로 발행되었으며, 발행인 박장식, 편집인 김정용, 주필 이공전, 편집국장 조정근이었다. 1971년 1월 1일 격주간 월 12면에서 16면으로 ...

2025-10-0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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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세계미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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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종은 2007년 김월단(金月檀)에 의해 창종되었다. 김월단은 1965년 미륵도량 백화사를 창건하였고, 1968년 일붕 서경보(徐京保: 1914~1996)를 은사로 득도한다. 법명은 연호(蓮湖)이다. 그 후 도심포교에 진력하며, 1975년 새마을장수대학장, 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삼장대학원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2003년 덕화사(德華寺)로 사찰명을 변경하였고, 종교 간의 벽을 넘어 타 종교인들도 동참할 수 있는 도량을 지향하였으며, 2007년에 용화세계미륵종을 창종하였다. 김월단은 조상을 위하는 것은 전통이나 인간 도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길이며, 예부터 유주무주의 고혼을 위한 위령제가 국가적 행사로 ...

2025-10-0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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