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증산성지동곡약방
증산성지동곡약방(甑山聖地銅谷藥房: 약방파)은 1945년경에 서상근(徐相根, ?~1962)이 창설한 증산교서상근파을 이은 종파이다. 서상근이 1962년 사망한 후에 김기태(金箕泰)가 계승하였는데 별스런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최근봉(崔根奉)이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동곡약방 자리를 사들여 광제국(廣濟局)이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최근봉이 죽자 그의 부인 김향님이 이곳을 지키다가 권호중(權呼中)과 합세하여 ‘증산대도일화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때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권호중(본명, 鍾熙)은 1912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출생하여 일찍 도에 뜻을 두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보화교의 김청강 밑에 있기도 했다. ...
2025-10-0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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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도리원파
증산교도리원파(甑山敎桃李園派)를 설립한 김광찬(金光贊, 1869~1917, 본명 俊湳)은 1869년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전라북도 익산군 함라면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성격이 거칠어 남과 싸우기를 잘 하였다고 한다. 참봉을 거처 황등면장을 지냈다. 강일순의 종도가 되고는 강일순의 천지공사에 적극 참여 하였다. 『대순전경』 등 증산계 경전에 광찬의 기록이 30여회나 등장한다. 강일순이 ‘도리원서문(桃李園序文)’을 천 번 읽으면 도에 통한다고 한 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도리원서문을 많이 읽게 하였기 때문에 이 교파를 세상에서 도리원파라 했다. 김광찬이 옥중에서 사망하자 이 ...
2025-10-0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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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경
단군계
단군계 신종교 가운데 단군교종무청, 단군조선종천교, 삼신교, 천상환인미륵대도 등에서는 『천부경(天符經)』을 조화경(造化經)·『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교화경·『참전계경(參佺戒經)』 혹은 『팔리훈(八理訓)』을 치화경(治化經)이라고 부르면서 그 의미를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교단에서는 조화경을 한인(桓因), 교화경을 한웅(桓雄), 치화경을 단군(檀君)에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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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자산
몰수된 적산자산을 귀속재산이라고도 한다. 1945년 당시 귀속재산의 총 가치는 우리나라 총 자산가치의 약 80%에 이를 정도였다. 그 일부는 미 군정청에 의해 민간에 불하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는 1948년 건국이후 한국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8년까지 불하되었다. 이때 불하가격 자체가 시가 1/4~1/5 정도였으며 상환 기간도 최고 15년 분할 상환이었다. 당시 높은 인플레로 인해 불하 자체가 하나의 특혜였다. 종교의 귀속재산은 같은 계통의 종교단체에 불하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으나 미군정이 임의로 불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던 개신교 목사였던 한경직(韓景職), 송창근(宋昌根), 김재준(金在俊) 등이 ...
2025-10-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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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근
천도교
장효근은 이종일(李鍾一)·오세창(吳世昌) 등과 함께 《제국신문(帝國新聞)(1898년)》을 창간한 당대의 대표적 언론인이다. 그는 1905년 12월 천도교에 입도하였고, 1906년 6월에는 《만세보(萬歲報)》 창간에 참여하여 국가문명의 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는 천도교가 주도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그 후신인 대한협회(大韓協會)에 참여하여 오세창·최영직 등과 함께 《대한민보(大韓民報)》를 창간하였다. 1914년 8월 민중운동으로 보성사 안에 천도교구국단을 조직하였으나 실패했고, 1919년 2월 27일에는 천도교 산하 보성사(普成社) 총무로 있으면서, 3·1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한 ...
2025-10-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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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평화건설단
우주일주평화국
2016년 현재 교단 홈페이지(http://www.ydc1440.com.ne.kr/title_2.htm)에 실린 ‘우주일주평화국 헌장’에는, 성민원·성례원·성의원·성정원·성법원의 5대기구와 일주이념연구원·일주평화건설단·일주생활공생조합의 3대기관이 교단의 기구로 소개되어 있다. 이들 기관은 모두 1명의 기구·기관장을 둔다. 일주평화건설단은 교단의 3대 기관의 하나로 옛 명칭은 통일평화건설단이다.
2025-10-0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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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한 한병수(韓丙洙)는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12임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신도(神道)에 통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태을진인(太乙眞人)이라 하며 서울 필운동에 인천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 이덕제(李德帝)가 계승하여 한국전쟁 이후로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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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도량
인왕도량은 『인왕경(仁王經)』의 내용에 의거하여 설행된다. 『인왕경』은 인왕(仁王)이 16대국의 국왕에게 교시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제왕들을 대상으로 국토의 안일을 위하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 蜜)의 심법(深法)을 설한 경전이다. 『인왕경』의 호국품(護國品)은 여래가 국왕을 향하여 국토를 보호하는 방법을 설한 것으로, 백불상(百佛像)·백보살상(百菩薩像)·백나한상(百羅漢像)을 모시고 100명의 법사를 청하여 백등(百燈)을 켜고 백향(百香)을 사르고 100가지의 꽃을 공양하며, 하루에 두번 『인왕경』을 강독하고 그에 대한 공덕을 설하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인왕도량은 이에 따라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고 100명의 ...
2025-10-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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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환성
천도교
1909년 12월 손병희는 교조인 최제우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양산 통도사에서 49일 기도회를 올렸다. 그리고 천성산 적멸굴을 방문하여 이적을 체험했는데, 이때 그는 사람의 사후문제를 크게 깨닫고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을 주장했다. 1912년 4월에는 각 지방 두목을 모아 도선암에서 49일 동안 연성기도회(煉性祈禱會)를 행했고, 6월에는 교인들의 수련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우이동에 봉황각(鳳凰閣)을 준공했다. 이후 7년 동안 49일 또는 105일씩 총 480여명을 수련시켜 3.1운동을 준비했다. 1916년 9월에 천도교 의사원(議事員) 일동이 우이동 봉황각을 찾아갔을 때 손병희는 이들에게 ‘유형한 나로써 무형한 나를 찾으라 ...
2025-10-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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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평
각세도
이선평의 도호는 신계(晨鷄)이다. 1882년 2월 23일 황해도 문화군 구월산하 태산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도에 뜻을 두고 16세 되던 해에 보서(寶書)를 얻으려고 중국에 가던 중 평안도 순안군 적리 암치내에서 한밤중에 ‘천하대보 정진무외 무궁조화 각재자기(天下大寶 正眞無外 無窮造化 各在自己)’라는 16자의 대보송(大寶頌)이 허공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깨친 바 있어 중국으로 가지 않고 구월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10여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20세에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며 중달인사(中達人事)하는 영통(靈通)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의술·점복·풍수지리서를 탐독하면서 ...
2025-10-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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