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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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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통일교회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들을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復歸)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진행하는데 이것을 복귀섭리(復歸攝理)라고 한다. 복귀섭리는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는 재창조(再創造) 섭리이므로 창조가 하나님이 세운 원리(原理)에 따라 진행되듯이 복귀섭리도 하나님이 세운 원리에 의해 진행된다. 이러한 복귀섭리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원리를 복귀원리라고 한다. 복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탕감(蕩減)복귀원리이다.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했을 때 다시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탕감이라고 하 ...

2025-07-09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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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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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이토암은 “공자는 72지(地)의 운을 응한 고로 3천 제자 중에 육예(六藝)를 통한 자가 72인이요 지금 건곤부모는 유불선 3합의 성인으로 36천(天) 72지(地)의 운을 응한 고로 9800제자 중에 만화도통하는 자가 108인이니라.” 하였다. 또한 “많은 부처와 신선이 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남녀 108군자가 아니겠는가(諸佛群仙이 降凡塵하니 男女百八이아닌가)”라 하였으니 건곤부모의 구제사업을 돕기 위해 함께 출세하는 수제자로 구천팔백 고명과(古名過)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만화도통(萬化道通)을 한 자가 108인(남108 여108)이 나온다는 것이다. 108군자는 공자와 같은 성인보다도 뛰어나다고 한다. <참고문헌> 『건곤 ...

2025-07-0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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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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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백봉은 성명과 신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는 태백산(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여 단군신명의 묵시를 받았으며 백두산 석실에 비전되어 오던 단군의 교전 『삼일신고』와 『단군실기』 등을 얻게 됨으로써 신도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1904년부터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백전(伯佺)을 비롯하여 두일백 정숭모 등 13명이 백두산 대숭전 고경각에서 모여 백봉의 교지를 받들어 단군교를 포명하였으며 이 포명식에 참석한 13명 외 20명 등 총 33명이 단군의 성역인 만주 몽고 일본 등으로 포교를 떠났다고 한다. 백봉의 단군교에 연원하여 이후 나철이 ...

2025-07-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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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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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부친 배운경(裵雲卿)과 모친 박운녀(朴云女)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3세 되던 1938년에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학과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이 해 10월에 이덕희(李德姬)와 결혼했다. 1946년부터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는 증산교단연합운동 부위원장을 지냈고 1971년에 결성된 증산신도친목회 부회장 1972년에 증산교단통일회 부회장 1974년에 ...

2025-07-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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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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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배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회 및 학술대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단체라 할 수 있다. 1980년 6월 15일 창립하였으며 초대 회장은 최덕신(崔德新)이었다. 1984년 6월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 3주년 기념식 및 ‘민족정통성 회복을 위한 학술강연회’를 개최하여 민족사관의 정립방향에 대해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박성수 고저선사의 제문제에 대해 단국대의 윤내현이 발표하였고 1985년 6월 15일 총재 안호상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민족사관의 주체와 실체-광복40년 민족과 역사의 만남’을 주제로 학술강연을 개최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 백두산 영유권문제에 대해 ‘겨레의 성지인 백 ...

2025-07-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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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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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철은 단군신명에 의해 받은 영적인 능력으로 치병능력을 얻은 후 많은 신자를 거느리게 되자, 1958년 갑동 뒤 산 위에 기도막을 짓고 단군을 모시다가 산에 올라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산 아래로 건물을 옮겨 짓고 단군을 모시며 명칭을 ‘단군대황전’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해 박노철은 서울에 있는 대종교본사와 교섭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였으며, 이후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1965년 박노철은 우종설(禹鐘卨)의 협력을 얻어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를 간행하게 되는데, 이 경전 발간 후 본전 건물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

2025-07-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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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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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교

박성호는 1919년에 천도교에 입도하였다가, 1922년 수운교로 옮겨 중요 간부가 되었다. 1932년에 수운교에서 나와 수운교별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종교 활동을 했다. 1934년에 본부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교명을 대동교라 고치고 활동하다 1966년에 사망했다.

2025-07-0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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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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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대승종

대한불교대승종의 창종자 도암(道庵) 박성도(朴性道)는 192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1935년 서울 사간동 법륜사에서 대륜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1938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대륜화상을 은사로, 춘산화상을 계사로 득도하였으며, 철원 심원사 화산경원(華山經院)에서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를 수료하였다. 1939년 개운사에서 한영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1942년에는 경기도 용인의 용화사(龍華寺)에 주석하며, 수도 정진 하면서 포교활동에 전념하였으며, 1950년 경기도 용인 내사면에 정수공민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교육에 전념한다. 이 학교는 제1호로 승인 인가되어 지금의 대대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1988년 ...

2025-07-0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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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증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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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증산교(彌勒甑山敎)를 창립한 정삼룡(鄭三龍 1910-?)은 1910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여장부로 성격이 활달한데다 신기마져 있었다. 1954년 신병(神病)으로 36일 동안 기도를 하던 중 증산 강일순의 영과 통령(通靈)이 되어 증산의 도를 전하라는 천명을 받았다고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치병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969년 도생들을 모으라는 증산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자신은 증산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논산군 두마면 석계리에서 본교를 창립하고 교조를 증산 자기는 2세 교주라 했다. 1974년에는 세계정세에 크게 이변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는 가하면 멀지 않아 인류는 한복을 입고 ...

2025-07-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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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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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연은 8세에 입산하여 찬운도사(餐雲道士) 도석선생(道石先生)의 지도를 받아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석선생은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 존재로 계시만 내려주는데 그의 계시에 의하면 머지않아 후천의 새 시대가 개벽될 것이며 이때 김구연이 개천궁(開天宮)의 영도자가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구연은 자신이 천자의 직성(直星) 자미성(紫微星)의 정기를 받았다고 해서 무자(戊字)를 따서 무법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무송(戊松)이라고 했다. 또한 당시 김삼부(金三夫)라는 사람이 단군신사를 해석하면서 『천부경』이 사실 단군의 저술이 아니라 황제가 단군에게 전한 것이며 『천부경』81자에는 우주진행의 역대 교리가 ...

2025-07-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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