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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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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한얼교의 창립자 신정일은 종교활동과 함께 통일한국당 총재와 주한이라크 명예대사 등의 정치활동 하버드대학 케네디정치연구소 객원연구원과 옥스퍼드대학 파운딩 펠로우 등 학술연구활동 한얼의료법인 등의 사회복지사업과 더불어 동양문화신문의 설립에 의한 언론·문화활동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신정일 당시 한얼교의 대표적 언론·문화활동 중 하나로 1993년에 창립한 동양문화신문을 들 수 있다.

2025-07-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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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원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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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대한불교원융원. 대한불교원융종의 초기 등록명칭.

2025-07-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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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증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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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찬이 창립한 증산도의 초기 이름

2025-07-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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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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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한국전쟁 후 조용승이 조직한 ‘수국회(守國會)’가 전신이 된다. 수국회의 강령은 ①민족적 절대불굴의 영원수국정신통일(永遠守國精神統一)과 ②공산주의와 침량(侵*)세력에 절대불복종의 정신통일을 목적으로 ③국부민강(國富民强) 도덕사회 건설을 도(圖)함이다. 수국회는 1955년 장경래(張景來)·이수기(李壽基)·심정섭(沈貞燮) 등과 협의하여 ‘단민회’를 형성한 뒤 단민회에 흡수되었다. 본회의 이념은 어떻게 하여 영원한 독립국가로서 훌륭한 민족이 될 수 있을까에 있으며 이는 민족단결과 정신통일에 의해 가능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국조 단군성조를 숭봉하여야 하며 이것이 성취되면 전 민족의 단결과 통일된 정신으로 영원한 독 ...

2025-07-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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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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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은 단군사상을 선양하고자 1964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단군사상에 조예가 깊은 김일권(金一權)과 결속하여 ‘정수회(正守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였다. 이들은 단군사상을 고무하는 강담회를 수시로 개최하였는데 얼마 후 김일권이 이탈하고 대신 대종교에 있던 신철호(申哲鎬)가 주간이 되어 1965년 10월부터 『정수회보(正守會報)』를 간행하여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러나 1967년 이춘상이 정수회에서 손을 떼게 됨으로써 단체는 활동이 정지되었다. 그 뒤 단군숭령회에 소속되어 있던 강대길(姜大佶)이 다시 ‘단군정수회’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종로구 공평로에 회관을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 ...

2025-07-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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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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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라고도 하며 그 의인화한 모습을 수성인(壽星人) 수노인(壽老人)이라고 불렀다. 남극노인성은 28수(二十八宿) 중에 동쪽의 각(角)과 항(亢)으로 현재의 성좌로 보면 처녀자리에 해당한다. 이 성좌는 28수 가운데 우두머리다. 이 성좌는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는 보이지 않다가 천하가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오면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별자리를 보면 행복과 장생을 기원한다고 한다. 역대 황제들도 수성단(壽星壇)을 건립하여 천하의 태평을 기원했다. 중국인들에게 수노인은 우수꽝스러운 대머리에 미소 짓고 있는 매우 친숙한 존재다. 수노인은 수사슴을 타고 다니는데 한손에는 영지버섯과 신선초를 ...

2025-07-0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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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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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는 초기부터 인내천의 여성관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성 의제개량에서부터 생활개혁 및 의식의 각성 여권신장 교육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펼쳐오다가 1924년 천도교 청년여성들은 최초로 여성단체인 내수단을 조직하여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내수단 위원은 주옥경 이정희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주로 강연과 야학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5년 내수단 강연 주제를 보면 “완전한 인격(김미리사)” “혁신의 급선봉(유각경)” “부인문제(주옥경)” 등으로 여성계몽을 도모했고 1929년 5월 동아일보 후원 하에 “보육법(차사백)” “어린이의 심리생활(방정환)” 등 아동보 ...

2025-07-0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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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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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체의 1960년 조용승(趙鏞丞)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본 단체에서는 천지만물과 화해하면 천지만물이 한편이 되고 무엇으로부터도 상해를 입거나 병균이나 악귀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화해와 감사를 강조하다. 그러한 감사의 생각 속에서 신과 불의 모습을 보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신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곧 신이고 부처라고 하여 신앙의 대상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특별한 경전은 없다. 그리고 국은(國恩) 부모 아내․남편 자식 부리는 사람 모든 사람 천지만물에 감사하라고 강조하고 그러한 감사생활은 만병과 재앙을 물리친다고 가르친다. 1945년에 조용승이 종래 믿었던 가톨릭으로부터 나 ...

2025-07-0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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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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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

보화교(普化敎)를 창립한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은 1896년 1월 11일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신흥리에서 부친 김용술(金龍述)과 모친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병으로 시달리며 자랐다. 1921년에는 신효묘방(神效妙方)을 얻어 창생을 구제할 생각으로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여 9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큰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1929년에 보천교를 나와 사방으로 주유천하를 했다. 1930년 주신수련(主神修練)의 입공에 들어가 입공한 지 3일째 되던 날 수운 최제우와 증산 강일순이 나타나 수운은 ‘나를 보고 수운 아버지라고 불러라’하고 증산은 ‘나를 보고 증산 어머니 ...

2025-07-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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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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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은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7세 때는 음양복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12세 연하인 박중빈과 의형제를 맺고 수도정진하는 박중빈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16년 4월 박중빈이 26세로 대각(大覺)을 얻자 첫 제자가 되었다.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한 그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받은 3천여원의 채권증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그는 박중빈이 경륜을 펴는데 대소사의 모든 일을 함께 했는데 당시 불러주는 글과 시가(詩歌)를 받아 적어 편집한 것이 《법의대전(法義大全)》ㆍ《백일소(白日蕭)》ㆍ《심적편(心迹篇)》 등으로 그 일부가 《대종경》 전망품 1장 등에 전한다. 1917년(원기2)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 태방(兌方 ...

2025-06-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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