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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등극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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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선도교(仙道敎)의 교세가 급속히 확산되던 1910년대 말에 일제의 선도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차경석은 1919년에 대황산(大篁山)에서의 고천제(告天祭)를 통해 24방주제를 60방주제로 확대, 개편하였다. 즉 전국의 교인을 60방주제로 묶어 557,700명의 간부를 임명한 것이다. 1921년 9월에는 경기도경찰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황석산(黃石山)에서 국호를 ‘시(時)’라 하고, 교명을 ‘보화(普化)’라 하는 대규모의 고천제를 차경석이 주도하였다. 황석산 고천제(1921년)는 국호를 선포한 천자등극 행사라는 풍설로 세간에 떠돌았다. 1921년에는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이 널리 유포되었다. ...

2025-10-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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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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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 한 후, 교세가 확대되자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네 사람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였다. 초기의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이 사망하기 이전에 이미 교단명칭을 ‘천인교’로 바꾸어 독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도주는 이선평에 의해 장명성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김해제는 천인교를 포교하다가 사망하게 되고, 한계택(韓啓澤)이 그 뒤를 잇게 되며, 다시 한백우가 교단을 이끌었으나 교세가 미미하여 마침내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 ...

2025-10-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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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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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는 망자가 극락정토로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이다. 불교에서 죽음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유한한 삶에서 죽음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 죽음의 문제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생이 다하면 인간의 영혼은 극락과 지옥으로 간다고 말한다. 삶의 업보에 따라 결정되는 극락과 지옥이지만, 망자를 위해 정성으로 천도재를 올리면 누구나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천도재는 사람의 사후 일정한 시기에 행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와 모든 영혼들의 왕생을 기원하는 수륙재, 그리고 우란분재(盂蘭盆齋,) 지장재(地藏齋) 등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

2025-10-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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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창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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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창건사는 1933년 이돈화가 저술하고 천도교 중앙종리원에서 발행한 중요한 역사 문헌이다. 서문은 현암(玄菴) 정광조(鄭廣朝)와 계암(桂菴) 최석련(崔碩連)이 썼다. 최석련은 서문에서 천도교 역사를 “후천생활의 창조적 역사이며, 후천인류의 시조적(始祖的) 역사”라 평하였다. 책의 내용은 대신사편(大神師編), 해월신사편(海月神師編), 의암성사편(義菴聖師編), 중의제편(衆議制編)의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도교 역사 70년래의 사적과 법설의 개략을 적은 것이다. 수운의 대각(大覺)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돈화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

2025-10-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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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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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중앙대교당은 1918년 4월 5일 천도교 부구(部區) 총회에서 새로운 교당을 짓기로 결의하여 이 해 12월 1일에 개기식(開基式)을 하였고, 1919년 7월에 착공하여 1921년 2월에 준공했다. 천도교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는 처음에 건평 400평 규모의 대교당을 계획하고 당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조선총독부는 교당이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것과 중앙에 기둥이 없어 위험하다는 구실을 붙여 불허하였다. 천도교측은 절반으로 규모를 줄여 겨우 허가를 받아 1919년에 착공하였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의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집회, 예술 공연 등의 일반 행사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민중의 광 ...

2025-10-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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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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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

권두에 송병준과 박정동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 간기가 있다. 이 책은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수운 최제우의 교설을 해설한 것으로 주왈(主曰)로 시작되고 있으며, 2권은 해월 최시형의 교설을 해설한 내용으로 사왈(師曰)로 시작되고 있다. ‘천경정의’라는 문헌제목은 하늘에 근본한 도를 밝힌다는 의미로 설명되고 있으며, 본문 다음에는 ‘의(義)’또는 ‘석(釋)’이라 하여 본문의 뜻을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1편 ‘주왈천도야(主曰天道也)’란 구절을 ‘천도는 무극의 큰 우리(大圈)이며, 인도는 무극의 바른 굴대(正軸)이다. 그 큰 우리로부터 바른 굴대로 복사(輻射)되는 것이 영(靈)이며, 그 바른 굴대 ...

2025-10-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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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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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단군성전천진전, 환중교

국조단군성전천진전에서는 경전으로 『천경신고』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경전 속에는 『천부경』·『삼일신고』·『개벽경』·『천지부모경』·『삼진경(三眞經)』 등이 들어 있고, 이들 경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군계 경전들을 종합하고, 그에 해설을 추가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환중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은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칠성경』·『산신경』·『용왕경』·『천경신고』 등이 있다. 따라서 환중교의 『천경신고』는 『천부경』이나 『삼일신고』 등이 포함되지 않은 독립된 경전이라는 점에서 국조단군성전천진전의 『천경신고』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 ...

2025-10-1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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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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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처용무는 5명이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추는데, 동은 파란색, 서는 흰색, 남은 붉은색, 북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이다.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오방(五方)처용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 후기까지는 한 사람이 춤을 추었으나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다섯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이후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처용 탈은 팥죽색 붉은 ...

2025-10-1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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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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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교

찬물요법은 ‘찬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찬물치료’, 또는 ‘물법치료’라고도 한다. 김봉남(金奉南)의 봉남교(奉南敎)에서 찬물치료와 물법치료는 혼용해 쓰면서도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구분된다. 찬물치료는 외부에서 물을 체내에 공급함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봉남이 물법의 원리를 깨달은 초통을 하고 신도들을 모아 부처님 앞에 찬물을 올리고, 아미타불·미륵존불을 염송하면서 무량주(無量呪)·칠성주(七星呪)·음부경(陰符經) 등 여러 주문을 외우고는 환자들에게 그 물을 먹였다. 봉남이 물을 먹일 때는 병자가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친다든가, 주축(呪祝)을 한다든가 안찰(按擦)·타골(打骨)·침구법(鍼灸法)까지 겸행했다. 이 ...

2025-10-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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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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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태극도)

무극도(無極道:太極道)의 창시자 조철제(趙哲濟, 1895~1958, 호 鼎山)가 1928년 신도들 가운데 장정들을 뽑아 이 단체를 조직하고 수리공사·황무지 개간·간척지 개간·벌채사업·금광개발·도로공사 등의 사업을 전개하여 도가의 생활 안정과 산업장려, 빈민구제에 공헌하게 했는데 이것을 단원도수(團員度數)라 했다. 1930년에는 각처의 진업단을 모두 불러 2개의 단으로 나눈 다음 1개단 300명은 함경북도 무산으로, 1개단 200명은 북만주 목단강 근처의 산림에 보내 벌채에 종사케 했다. 무산에서 일을 마친 단원들은 목단강에 합류시켜 2년 반 동안 업적을 올렸다. 이때 일본 경찰은 진업단이 독립군과 합세할까 염려하여 조철 ...

2025-10-0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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