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십삼계문
대한불교미륵종
김계주(金桂朱, 1896-1950, 호 洪原)가 창립한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에서 신도들이 지켜야할 13가지의 계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일념경천지(一念敬天地): 일념으로 천지를 공경하라-도덕(道德). ②명륜정덕성무교확시(明倫正德聖戊敎擴施): 명륜 정덕으로 거룩한 무교를 널리 펴라-공적(公績). ③경기중기친(敬其衆合其親): 대중을 공경하며 친숙함을 더하게 하라-인의(仁義). ④예의승지불상행겸양(禮義勝之不常行謙讓): 예의는 떳떳치 못한 것을 이긴다. 겸양을 행하라-덕화(德化). ⑤체석유수보종(體席有守保終): 몸과 자리는 지켜야하니 마침을 잘 하라-立功. ⑥제심격경모하(除心輕輕侮下): 마음을 가벼이 않으면 ...
2025-10-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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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호
세계종교
신철호는 1989년 서울 도봉구에서 김정희와 함께 세계종교를 창립했다. 호는 일령(日靈). 신철호는 1982년 김정희 등 21명과 함께 태백산에 기도를 드리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태백산 천제당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이때 하느님의 조화영기(造化靈氣)가 그의 몸에 내렸다고 한다. 이어 하느님은 신철호와 김정희 두 사람을 마리천산 제천단으로 따로 불러 세계종교를 중창하라고 계시를 내렸으며, 이들은 그 이후로 하느님이 내리는 계시를 모두 받들면서 무형세계에서 이루어지는 8년 간의 작업 끝에 세계 7대성인과 민족 7대성인을 모두 귀일시키는 천지대통일의 세계종교를 성취했으며, 1989년 10월 5일 밤에 하느님으로부터 결재천문 ...
2025-10-0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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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정경
원불교
1927년 5월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에 수록된 『정정요론』은 원래 『정심요결(正心要訣)』로 불리는 독립된 서적으로 전래의 도교계통 수련서였다. 부안사람 이옥포(李玉圃)가 1900년대에 기술한 것으로 전하는데, 송규가 스승을 찾아 전라도를 순력하던 1917년 증산교단(甑山敎團)을 방문했을 때 강일순(姜一淳)의 여식 강순임(姜舜任)을 통해 수집하여 원불교에 수용되었다. 이를 박중빈의 감수 아래 1924~1925년에 이춘풍(李春風)이 번역하고 도교적인 수양방법을 불교적인 흐름으로 조정하여 『수양연구요론』의 1~2장에 수록함으로써 초기교단의 수양 보조교재로 활용되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정산은 이의 원전을 전후 8장으로 ...
2025-10-0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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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화
영가무도교
송철화는 1904년 1월 26일 대전시 유천동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사무실의 소송사건 알선업에 종사하였으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인생문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정역』을 알게 되어 이를 연구하게 되었고, 도(道)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정역에 기반한 종교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던 송철화는 1960년 충남 논산시 두마면 향한리의 향적산 국사봉 아래 ‘허공산제당’을 짓고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수련과 도를 공부시키다가, 1976년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 ...
2025-10-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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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성요론
원불교
원불교의 삼학 수행에 있어서 ‘계문’과 함께 작업취사 공부의 중요한 방법이 된다. 종교가에서는 ‘하지 말라’는 금기의 가르침이 많은데, 솔성요론은 적극적으로 성품을 발현하여 생활 속에서 활용해 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①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②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 ③사생 중 사람이 된 이상에는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요, ④지식 있는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함으로써 그 배움을 놓지 말 것이요, ⑤주색낭유(酒色浪遊)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요, ⑥한편에 착(着)하지 아니할 것이요, ⑦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
2025-10-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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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흠
천도교
손병흠은 의암 손병희의 아우이다. 1880년대 손천민(손병흠의 손위 조카)의 권유로 손병희와 함께 입도하였다. 최시형을 도와 동학의 포덕에 주력하였고 관아의 체포령을 피해 숨어 지내는 최시형의 은신처 마련에 힘썼다. 1892년과 1893년 교조신원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1894년의 동학혁명 제2차 봉기에 참여하여 우금치전투와 논산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동학혁명 후 최시형을 모시고 강원도 지방으로 피신생활을 하였다. 1898년 해월 최시형이 환원(사망)한 뒤로 1901년 3월 손병희와 함께 일본에 망명해서 손병희를 보좌했고, 일본과 국내를 오가며 동학의 재건에 전력하다가 1903년 급질(急疾)로 서거하였다. <참고문헌 ...
2025-10-0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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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안
원불교
서중안은 1881년 11월 21일 전북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에서 부친 치욱(致旭)과 모친 반월경화(潘月鏡華)의 11남매 중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천성이 인후하고 침착했으며 강직하고 세밀했다. 17세에는 향교 출입을 하며 선비들과 문장을 주고받았다. 유학을 공부하였지만 반상차별의 폐풍을 비판하고 가문에 내려오던 노비문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하였다. 서중안은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의서(醫書)를 탐독하며 연구했고 근동에서는 명필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김제면 교동리에 ‘인화당한약방’을 개설했는데 명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각처에 신용을 얻어 번창했다. 1923년(원기8)에 친형인 서동풍(春山徐東風) ...
2025-07-1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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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복
금강대도
본관은 달성이며 약봉(藥封) 서성(徐渻)의 12세손이다. 1884년 상산(祥山) 서상의(徐相儀)와 오상전(吳祥田)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1898년 금강대도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와 결혼하였다. 1910년 충청도 계룡산으로 토암과 함께 남천포덕을 단행한 후 연화대도를 창개 제1대 도주가 되어 오중대운(午中大運)의 남녀평등 사상으로 제자를 양성하다가 1927년 44세로 타계하였다. 금강대도에서는 토암이 천상에서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었으며 자암은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이었는데 오중시대를 맞이하여 건곤부모로 하강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청수를 올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 창생 제도를 발원하는 ...
2025-07-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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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인
서대인은 독신생활을 극력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 나와 17세에 원불교에 출가했다. 아버지는 소태산대종사께 상서를 올려 딸을 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간청했으나 8년 동안 사가에 돌아가지 않았다. 서대인은 초창기 서울교당의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에 교당을 일궈낸 산증인이다. 서울교당은 1926년(원기11) 창신동에서 시작하여 1933년(원기18) 돈암동으로 정착하는데 서대인은 그 교당에서 1931년(원기16)부터 공양원 생활을 했다. 당시의 교당생활은 생활비가 없어 새벽까지 삯품팔이 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간난(艱難)함 속에서도 서대인은 1941년(원기26) 3월 경성성신여학교를 졸업했다. ...
2025-07-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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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1936년 전주 신흥(新興)중학교를 졸업 일본에 건너가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했으며 1957년 캐나다 이매뉴얼신학대학원을 졸업 귀국하여 1961년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에 취임했다. 그는 종래의 그리스도론적인 신학 해석방법에 반대하고 성령론적인 해석방법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민중자체의 구원적 성격을 부각하면서 성령활동의 정치적 성격을 중시하였다. 그는 1970년대에 들어 국내 신학자들과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하고 적극적인 반독재투쟁 대열에 섰다. 1975년 6월 유신독재하(維新獨裁下)에서 야기된 이른바 '학원사태'로 인해 해직되었고 이듬해 3·1 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하여 함석헌·김대중 등과 함께 긴급조치 제9 ...
2025-07-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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