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김형규
제화동대도
김형규는 1891년 3월 29일 경남 합천군 쌍벽면 안계리에서 출생했다. 27세때 보천교에 입교하여 치성 절차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보천교의 타락과 신풍운동이 일어나 대립된 양상을 보고 보천교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양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1947년 해인사에서 보화교 교주였던 김환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녁 치성 중 ‘백의초상관음불(白衣肖像觀音佛)’이란 소리가 크게 울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있는 부처가 바로 김환옥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김환옥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보화교에 입도하게 되었고 김환옥에게서 ‘대봉’이라는 호를 받게 된다. 1954년에 김환옥이 사망하고 1959년에 원평 보화교 ...
2025-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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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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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유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1919년 전국의 유림 130여 명이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등의 독립운동지를 발간하였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이 때 모금한 자금을 1926년 나석주에게 주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1927년 상하이의 영국인 병원 ...
2025-06-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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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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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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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유교 불교 도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법명(法名)은 설잠(雪岑) 도호(道號)는 청한자(淸寒子)이다. 유교·불교·도교의 삼교(三敎)를 넘나들며 각각에 정통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서울 삼각산에서 독서하던 중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책을 불사르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양주 수락산(水落山) 인제 설악산(雪岳山) 경주 금오산(金鰲山)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많은 시문(詩文)과 소설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47세 때 잠시 환속(還俗)하기도 했으나 얼마 뒤 다시 서울을 떠나 전 ...
2025-06-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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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종
대종교
김서종은 1893년 6월 1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양원(養源)여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 후 영남 각자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영우저축회(嶺友貯蓄會)를 창설하였다. 1922년 북만주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으로 이주하여 큰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하얼빈에서 ㈜북만농구공사(北滿農具公司)를 창설하여 재만 교포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참교(參敎)가 되었고 나철이 삼성사(三聖祀)에서 민족의 비운과 교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순교할 당시 그를 수행하였다. 그 후 지교(知敎)와 상교(尙敎)로 승질(陞秩)하 ...
2025-06-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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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보
단군성주교
김근보(金根寶 1911-1977 호 新谷 雲寶)는 단군성주교의 제2대 교주이다. 1960년 단군성주교를 창립한 강승태가 사망하자 김근보가 2대교주로 취임했다. 그는 1911년 제주도 애월읍 광령리에서 태어나 일찌기 강승태의 도에 입도 하여 강승태가 사망 당시 단군성주교 본소 원장직을 맡고 있다가 2대 교주가 된 것이다. 법통 계승과정에서 이백환ㆍ김승례(이들은 동도법종금강도를 세움) 등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법통체계 계승을 위한 많은 저술을 하며 교단을 이끌다가 1977년 사망했다. 김근보의 저술로는 『도덕경의문(道德警宣文)』ㆍ『성도정기기성운집(成道定機祈誠運集)』ㆍ『천지인합기대요(天地人合機大要)』 등 20여권 ...
2025-06-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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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
유교
자손이 조상에게 지내는 여러 제사 중에서 돌아가신 날 곧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가 기제(忌祭)이다. 기제사(忌祭祀) 또는 기일제(忌日祭)라고도 한다. 돌아가신 지 1년째 2년째 되는 해의 기일에 시행하는 의례는 각각 소상(小祥) 대상(大祥)이라 하고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시행하는 의례를 기제라 한다. 기제의 대상은 보통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사대(四代) 조상 곧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이며 공적이 큰 조상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4대를 지나도 계속 제사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도입되면서부터 유교의례에 따른 기제의 시 ...
2025-06-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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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조합
보천교
1920년대 초부터 보천교 중앙본소가 있는 정읍의 대흥리에는 자급자족을 위한 방직공장 염색공장 농기구공장 갓공장 등의 생산 시설이 들어섰다. 대흥리의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후천선경의 신정부 수도로 인식한 탄갈자(가산을 교단에 기부하고 중앙본소 주변으로 이거한 사람들)들이 늘면서 이러한 생산시설은 더욱 늘어났다. 중앙본소에서는 1924년에 탄갈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협동조합 형태의 기산조합(己産組合)을 결성하였다. 기산조합은 입회금과 조합비를 납부하면 조합원증을 발급했으며 조합원들로 하여금 조합원증을 항상 휴대토록 하였다. 기산조합은 직업을 알선하거나 물품의 매매나 소개를 돕기도 하고 재난 시에 교인 상호간의 구호 ...
2025-06-3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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