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천자등극설
보천교
선도교(仙道敎)의 교세가 급속히 확산되던 1910년대 말에 일제의 선도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차경석은 1919년에 대황산(大篁山)에서의 고천제(告天祭)를 통해 24방주제를 60방주제로 확대, 개편하였다. 즉 전국의 교인을 60방주제로 묶어 557,700명의 간부를 임명한 것이다. 1921년 9월에는 경기도경찰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황석산(黃石山)에서 국호를 ‘시(時)’라 하고, 교명을 ‘보화(普化)’라 하는 대규모의 고천제를 차경석이 주도하였다. 황석산 고천제(1921년)는 국호를 선포한 천자등극 행사라는 풍설로 세간에 떠돌았다. 1921년에는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이 널리 유포되었다. ...
2025-10-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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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교기
대종교
천신교기는 원방각(○□△)의 문양이며, 이는 철학적으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천·지·인)을 의미하고, 신학적으로는 신과 인간, 그리고 물질(신인물)을 상징한다. 나철이 대종교를 중광한 후 초기에는 청색 원에 흰 글씨로 ‘신(神)’자를 쓴 신자기를 사용했는데, 김교헌이 흰 바탕에 원방각 삼극장 문양을 고안하였다. 이후 1926년 1월 16일 만주 영안현 제4차 교의회에서 원방각의 문양을 대종교의 교기로 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일제의 포교금지령으로 인해 1935년 12월 26일 윤세복에 의해 발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5-10-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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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청년운동
천도교
초기 천도교청년운동은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의 취지대로 ‘성신쌍전(性身雙全)의 유무겸전(有無兼全)인 원만무결한 인내천주의의 실현’에 있었다. 이는 사회의 묵은 제도의 개혁과 신문명 건설에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맥락 하에서 월간잡지 『개벽(開闢)』을 창간했다. 사회주의가 풍미하고 노동문제가 핵심주제로 부상함에 따라 1921년 4월 25일에는 교리강연부를 천도교청년회로 변경하여 민족과 계급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범인간적(凡人間的) 민족주의’를 제창하였다. 1921년 4월에는 천도교소년부를 창립하여 5월에 어린이날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1922년 6월에는 여성잡지 『 ...
2025-10-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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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기도단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옥순은 30세 무렵 심한 병에 걸려 회현동 송죽고아원에서 3일간 안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시력과 청력이 신이하게 트이는 듯한 체험을 한 그는 이후 도처에서 심령을 보고 타인의 마음을 투시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으며, 1959년 4월에 대한수도원에 들어가 45일간을 금식기도를 한 뒤 은사체험이 더욱 강화되어 성령이나 마귀와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5년 1월 “사람이 전하는 것은 천국의 복음이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은 김옥순 본인이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는다.”고 주장하면서 ‘대한예수교천국복음제단’을 창립하였다. 1970년대 말 서울 강남 신사동에 ...
2025-10-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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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대
인도교
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 1890~1940, 호 龜岳) 는 1890년 1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 비금면 지당리에서 채두호(蔡斗鎬)의 아들로 태어났다. 25세 되던 1914년 장형 규일(圭一)과 함께 보천교에 입교하여 중요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22년 보천교를 떠나 증산의 탄생지인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객망리에 성전을 짓고 천인교(天人敎)라 이름하여 독립했다. 이후 수도정진 하다가 1931년 6월 1일 득도했다고 한다. 그는 인자하면서도 엄격하여 그를 따르던 신자나 간부들이 경외심을 가졌으며, 탁월한 지혜와 불굴의 의지는 신도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1936년 4월 조선총독부는 증산계 각 교단 ...
2025-10-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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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우주론
증산도
증산도(甑山道)를 창립한 안세찬(安世燦, 1922~2012)은 강일순을 상제로 보고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했다. 증산도에서 보는 우주는 강일순의 교설 속에 나타난다. 강일순은 우주를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로 보고 자신은 우주의 주제자요 상제로서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써서 우주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변화시킨다고 했다. 강일순은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말하고 해와 달이 나의 명을 받아 운행한다고도 했다. 그는 또 건곤감리(乾坤坎離) 사체(四體)를 바탕으로 도체(道體)를 바로 잡았다고 했다. 건곤(天地)은 도의 체(體)로 무극이요, 감리(日月)는 도의 용(用)이 되매 태극(水)을 체로하고 황 ...
2025-10-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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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김자현파
증산교김자현파(甑山敎金自賢派)는 증산 강일순의 종도인 김자현(金自賢, 1875~1927)의 아들 태진(泰振)이 이끌던 증산계 교파이다. 김자현은 김형렬의 사종(四從)으로서 김형렬과 함께 미륵불교(彌勒佛敎) 창립에 참여하여 저극 협력하였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그의 교통을 이어 포교하였다. 그러나 김자현이 사망한 후로는 김자현의 아들 태진과 태봉(泰鳳)이 이를 계승하였는데 이들을 증산교김자연파라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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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경
단군계
단군계 신종교 가운데 단군교종무청, 단군조선종천교, 삼신교, 천상환인미륵대도 등에서는 『천부경(天符經)』을 조화경(造化經)·『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교화경·『참전계경(參佺戒經)』 혹은 『팔리훈(八理訓)』을 치화경(治化經)이라고 부르면서 그 의미를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교단에서는 조화경을 한인(桓因), 교화경을 한웅(桓雄), 치화경을 단군(檀君)에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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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천
증산대도일화장
증산대도일화장(甑山大道一俰場)을 창립한 정혜천(鄭惠天, 1911~ ?, 본명 文順, 호 同立)은 1911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와 오빠를 두었기 때문에 일찍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상이 싹터 해방 후와 자유당 시절에는 팔에 완장을 두르고 가두강연도 하고 대한노총 총본부 부녀부장을 지낸 활동가였다. 1967년에 증산교 통합운동을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이 운동을 하며 하나의 종파로 활동을 했다. 1967년 전주 관성묘에서 보천교·대법사 등 17개 증산교파 들을 모아 증산교인 통합운동 신생친목회를 결성하였고, 1973년에는 증산교 뿐 아니라 천도교·수운교까지 포함시켜 20개 교단이 참가한 ...
2025-10-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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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은
인천도
인천도(人天道)를 창립한 정용은(鄭鏞殷, 1930~1994)은 1930년 2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 진안면 현하동 의흥곡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17세시 차경석 밑에서 일등필사로 있던 조광제를 만나 증산교를 알게 된 후 전국의 심산유곡을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고 염색기술자·직공생활 등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이 모든 일을 하며 살았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서 하천부지를 정리하여 블록 공장을 설립 운영하며 종교 활동을 하다가 1994년에 사망했다. 그의 종교활동은 1971년에 시작되었다. 이해에 그는 밀교(密敎)를 설립했고, 1972년에 문공부에 등록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의 종교활 ...
2025-10-0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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