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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각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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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앙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들 삼신이 단군신앙의 중심이 된다. 삼신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삼신각개설과 삼신일체설이 그것이다. 삼신일체설은 삼신이 근본은 하나의 하느님으로 천지인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삼신각개설은 환인은 천신(天神) 환웅은 지신(地神) 단군은 인신(人神)으로 각각 존재한다는 설이다. 단군계 신종교에서는 삼신각개설과 삼신일체설을 종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곧 삼신은 일체이면서도 각각의 성격으로 다시 분립되어 표상된다는 것으로 원리적으로는 일체이나 신앙면에서는 분리되어 산신·용왕·칠성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 ...

2025-07-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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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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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교회

삼박자축복이란 본래 개신교 설교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인데 특히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는 설교 때마다 “예수 잘 믿으면 영혼 구원뿐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고 자주 외침으로써 이 표현은 순복음교회의 상징적 표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삼박자축복 표어가 한국에서 크게 퍼질 수 있던 또 다른 요소는 브루스 윌킨스(Bruce Wilkinson)가 저술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의 유행이었다. “야베스는 일가 가운데서 가장 세력 있는 사람이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이렇게 빌었다. ‘부디 저에게 복을 내리시어 제 영토를 넓혀주시고 손수 액운을 막아 어려운 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

2025-07-0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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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원성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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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삼대원성취가는 1946년 경 수운교 본부에 와서 공부하고 있던 해암 김두화(金斗和)씨가 작사하고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싸인'에 부쳐 부른 노래이다. 우리나라에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탄생하기 전 애국가의 곡으로서 널리 불린 바 있다. 우리말로 작별이라 번역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작사자 김두화씨는 『단기고사』를 번역한 분이기도하다. 삼대원성취가는 아래와 같이 4절로 되어 있고 후렴이 있다. 1)천도순환 돌아오니 용담의 봄이요/천단짓고 경배하니 금병의 빛일세/후렴/무궁조화 삼대원 성취하는 날/지상천국 분명하다 수운천사 만세 2)하날님덕 널리펴서 천하에 전 ...

2025-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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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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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삼광문(三光門)은 보천교 중앙본소의 대성전인 십일전(十一殿)의 정문으로 현재 남아 잇지 않다. ‘삼광문(三光門)’은 보천교의 신앙 대상인 삼광영(三光影)에서 땄다. 삼광(三光)이란 천지(天地) · 일월(日月) · 성신(星辰)을 의미한다. 삼광문은 중앙에 무극문(無極門)과 좌우의 사상문(四象門)으로 구성돼 있다. <참고문헌> 「보천교」(이강오, 『전북대학교논문집』 제8집, 전북대학교, 1966) 「普天敎와 物産獎勵運動」(안후상, 『한국민족운동연구』 제19집,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8) 「佛敎總本山 曹溪寺 創建考」(안후상, 『보조사상』 제15집, 보조사상연구원, 2001) 『보천교와 한국의 신종교』(김재영, 신아출판사 ...

2025-07-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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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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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일반, 감로법회

1931년 6월 경북 예천의 용봉교당(龍鳳敎堂)에서 최취허(蓮邦最就墟)에게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들을 위한 불교의례문의 편찬을 의뢰받은 안진호(安震湖)는 한 달 만인 7월에 초고를 완성한다. 원고를 받은 최취허는 권상로(權相老)와 김태흡(金太洽)에게 교정을 받고 그해 12월에 발간한다. 근대 발전된 활자본의 의례서로서 한글까지 병기된 것이어서 발간 2년 만에 품절될 정도로 당시 불교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한 인기에 힘입어 안진호는 1935년 『불자필람』의 체제와 내용을 계승한 『석문의범(釋門儀範)』을 간행한다. 『불자필람』은 상·하 2편과 부록으로 구성되며 상편은 조석종송(朝夕鍾頌)을 시작으로 비구니팔경법(比丘 ...

2025-07-0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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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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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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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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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내에서 무심대사(無心大師)로 불리는 신수영(申壽英 1878∼1961)이 경상북도 안동 삼정산의 유하사(遊夏寺) 주지로 있다가 1945년 11월 10여 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다음해 신도안에 입주하여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다시 그 아래에 법룡사(法龍寺)를 창건하였다. 앞으로 이 땅에 단군국조의 운수가 열릴 것이므로 단군국조를 숭배해야 한다고 믿고 1948년 천진전(天眞殿)을 세워 단군영정을 모셨다. 이곳을 계룡천진전이라 부른다. 1961년 신수영의 사망 후 지정영(池正永)이 팔모정을 지으라는 신수영의 영계(靈啓)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이수학은 신기수(申 ...

2025-07-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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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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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신앙대본사

배선문은 1933년 6월 27일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했다. 9세 때 초등학교에서 그림그리기 시간에 태극기를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3일간 벌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그가 입산수도하여 민족사상과 단군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단군신앙을 하게 된 이유로 어려서 할아버지한테 받은 『단기고사』를 읽은 것도 한 영향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군복무를 마친 1958년부터 5년간 입산수도한 끝에 깨침을 얻어 1962년 강원도 평창의 청학산 기슭에 ‘청학시교당’을 개설하였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선원을 개설하고 신자를 두었다. 1959년에는 두타산 무명동굴에서 ...

2025-07-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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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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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보천교의 차경석(車京石)이 급증하는 전국의 교인을 효율적으로 통괄하기 위해 1916년에 24방주제를 도입하여 핵심 간부 24인(방주)을 임명하였다. 1919년에는 경상남도 함양의 대황산록에서 고천제를 올리면서 24방주제를 60방주제로 확대하였다. 60방주는 금·목·수·화의 4방주 동·서·남·북의 4방주 춘·하·추·동의 4방주 그리고 24포주(胞主) 24운주(運主) 등을 말한다. 60인의 방주들에게는 각 방면(方面)을 새긴 상아방인(象牙方印)과 방철(方鐵) 즉 선추(扇錘)를 주었다. 각 방주 아래에는 1명의 대리(代理) 1인과 6명의 육임(六任)을 두었다. 대리와 육임에게는 교첩(敎帖)과 상아직인(象牙職印)을 주었다. 육 ...

2025-07-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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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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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화연구원

박천봉은 1922년 경상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와 교감을 지내는 등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마을금고를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종교의 현묘지도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단군사상에 있어 ‘홍익’이야말로 현묘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으며 1986년에 서울시 서대문구에 단군전(홍은사)을 세웠으며 이후 홍익문화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2025-07-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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