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보천교청년단
보천교
1923년 당시 23세인 보천교인 이봉진(李琫振)이 보천교세가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교리 연구 및 청년들에게 신지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설립한 청년 단체다. 만 16세부터 30세 이하의 보천교 청소년 30여 명을 자신의 집으로 모이게 해 회의를 갖고서 그 이름을 ‘보천교정의단’이라 하였다. 보천교청년단은 그 이후에 바뀐 이름이다. 교단의 간부들이 일제의 탄압을 불러올 수 있다며 청년단 구성에 우려를 표하자 이봉진은 스스로 보천교청년단을 해체하였다. <참고문헌>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의 교육활동」( 김재영, 『신종교연구』 제14집, 한국신종교학회, 2006)
2025-07-0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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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농악단
보천교
1920년대 보천교에서 전국의 장구잽이와 쇠잽이 등을 선발하여 ‘보천교 농악단’으로 재조직하였다. 차경석은 보천교농악단으로 하여금 풍물굿을 자주 열게 하였으며 남선과 북선으로 패를 갈라 기예를 겨루도록 하였다. 보천교 농악단의 기예를 보기 위해서 교인뿐 아니라 인근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천교 중앙본소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차경석은 상쇠잽이의 머리 매는 방법이나 12발 상모 돌리는 것을 직접 지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보천교농악단은 좌우로 상쇠잽이 12명씩 24명 장구잽이 역시 좌우로 12명씩 24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 나발과 소고 북 피리 무당 날나리 징 등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
2025-07-0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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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본단
대종교
보본단에서 제사지내는 대상은 시조신인 단군 한배검으로 제천의식을 행함으로써 조상신의 은덕에 보답한다고 하여 ‘보본’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대종교에서는 이 제단의 석함(石函)에 『삼일신고』가 천년동안 비장되어 왔다고 하며 그것을 백봉이 찾아내어 1905년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에게 전함으로써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중광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대종교중광육십년사』(대종교종경종사편수위원회 대종교총본사 1971) 『역해종경사부합편전』(대종교총본사 1986)
2025-07-09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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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회
본회는 배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회 및 학술대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단체라 할 수 있다. 1980년 6월 15일 창립하였으며 초대 회장은 최덕신(崔德新)이었다. 1984년 6월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 3주년 기념식 및 ‘민족정통성 회복을 위한 학술강연회’를 개최하여 민족사관의 정립방향에 대해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박성수 고저선사의 제문제에 대해 단국대의 윤내현이 발표하였고 1985년 6월 15일 총재 안호상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민족사관의 주체와 실체-광복40년 민족과 역사의 만남’을 주제로 학술강연을 개최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 백두산 영유권문제에 대해 ‘겨레의 성지인 백 ...
2025-07-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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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대순진리회
반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조선 전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 1420~1489)의 현손 조방(1557~1638)이다. 조방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찔렀던 인물이다. 그는 임란이 평정되자 경남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창녕 낙동대교’ 부근의 말바위 곧 두암(斗巖) 위에 반구정을 짓고 자호(自號)를 두암이라 하였으며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내왕하면서 교우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자가 침식되고 기울자 그 후손들이 1858년 5월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333번지로 정자를 옮겨 세웠다. 19 ...
2025-07-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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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택
원군교
원군교(元君敎)를 창립한 박인택(朴仁澤)은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일찍이 보천교를 신봉했으나 거기에서 나와 같은 교인 홍순옥(洪淳玉)과 함께 증산 강일순을 받드는 교인을 규합하여 1933년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에 교당을 짓고 원군교라 하며 활동했다. 그러나 곧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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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
증산대도갱신연구회
증산대도갱신연구회(甑山大道更新硏究會)를 창립한 박상래(朴相來 1920-1990)는 192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탄생했다. 한때 개태사 김광영 밑에서 수도하다가 증산교를 알아 증산교본부의 이상호ㆍ이정립 밑에 들어가 공부했다. 그러나 이들과 뜻이 맞지 않아 1960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골에 움막을 짓고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1986년에『한민족의 진로인 증산교 좌표』라는 책을 발간 이 책속에서 증산 강일순에 대하여 잘못 이해되고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합리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증산의 가르침인 병겁ㆍ의통 등 불합리한 것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증산사상을 해석하는 역할을 하다가 1990년 사망했다. 참고 ...
2025-07-0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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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동도교월평교회
박금수(朴金洙)와 함께 1967년 증산계 신종교 동도교월평교회(東道敎月坪敎會)를 창립한 인물.
2025-07-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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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름론
한얼교
한얼교의 핵심사상은 크게 한얼론·나얼론·바름론·구원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바름론은 본교의 윤리관이라 할 수 있다. 신정일은 우주의 본질이 바름[正]에 있다고 하였다. 이 바름은 있음과 없음의 모체로서 이름과 모양을 붙일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으나 일체 범성의 본원처가 된다. 그러므로 이 바름은 하나마저 붙이지 못하는 자리요 바로 한얼님의 근본자리이다. 한얼님의 이 바름에 작용이 일어나 지구의 자전과 공전 춘하추동 사시의 변화와 만물의 생로병사 등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바름의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라다니게 되니 이것이 ‘삐뚬[不正]’이다. 삐뚬이란 부족한 것 법칙을 위반하는 것 조화와 균형을 잃는 것 ...
2025-07-0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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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종교
민속종교는 엘리트 계층에 의해 형성 유지된 상층문화에 속한 종교가 아니라 대중 전통에 의해 형성 유지된 기층문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상층문화가 외래적 성격이 강한 반면 기층문화는 그 나라의 고유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한국 민속종교의 예로는 성주신 조왕 조상신 삼신 터줏대감 측신 등을 모시는 가신신앙(家神信仰) 마을에서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동제(洞祭) 무당을 중심으로 하는 무속(巫俗) 등을 들 수 있다. 동학(東學)처럼 민중이 신종교 성립의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 민속종교의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신종교의 성립에 기여하며 중요한 부분으로서 전승된다.
2025-07-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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