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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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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언종

손해봉(孫海捧, 일명 元道)은 1903년 6월 경상북도 기한군 안강면에서 출생하였다. 1948년 당숙인 진각종 종조 손규상이 영일에 참회원을 개설할 당시 적극 조력하여 경제적 협력은 물론 밀교적 교리체계 형성에도 크게 역할하였다. 그러나 손규상이 1950년 심인불교를 등록할 당시 공동명의로 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1인을 대표로 하였으며, 또 교단운영에서도 지나친 독주를 한다 하여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손규상을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그도 가담하였었고 이로부터 견해를 달리하여 1954년 탈종한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일 울산에 참회당을 세우고 포교를 시작하며, 대한불교참회당교도회 유지재 ...

2025-10-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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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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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는 유럽에서 종교전쟁 이후 교회가 점유하던 토지나 재산이 국가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을 일컫는데서 시작된 용어이다. 근대사회에서 근대화나 합리화로 인해 종교가 사회생활과 통치의 모든 측면에서 권위를 잃는 현상을 놓고,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케임과 같은 고전 사회학자들이 다양한 설명을 제시하였다. 1960년대 이후 사회학계에서는 피터 버거로 대표되는 세속화 이론이, 신학계에서는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로 대표되는 세속화신학이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감퇴되지 않는다는 징후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면서 세속화 이론도 복잡해졌다. 한쪽 이론가들은 현대 ...

2025-10-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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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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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식(成人儀式)은 문자 그대로 성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 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한 사람의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된다. 예로부터 민족·종족·집단별로 다양한 성인의식이 시행되어 왔으며, 세계 각 지역의 성인의식에 관한 풍부한 인류학적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성인의식으로는 유교식 의례로 거행된 관례(冠禮)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가례(家禮)』의 보급과 함께 양반층을 중심으로 관례를 거행하는 풍습이 점차 확산되어 나갔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볼 때, 조혼(早婚)의 풍습으로 인해 관례는 대체로 혼례(婚禮)의 과정 속에 흡수되어 시행되었고 독립된 의례로는 정착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

2025-09-0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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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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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1964년 9월에 처음으로 발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초기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한국 교회의 소식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1985년 1월호부터 교회본부의 방침에 따라 잡지의 편집 체제가 변경되면서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특정 주제에 관한 교인의 입장과 신앙의 증언 등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1999년 1월호부터는 『리아호나』로 표제가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5-07-1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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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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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도

성덕도에서 1964년 6월 1일 월간으로 창간된 신문. 교화 홍보지로 활용해 오다가 1979년 11월(187호)를 마지막으로 휴간되었음.

2025-07-14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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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교백윤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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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교 창시자 고판례가 사망하자 백윤화가 한 파를 이루어 활동하였음.

2025-07-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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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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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신자였던 조일제는 당시 성도교(性道敎)를 창립한 이민제(李民濟)의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원리에 감명을 받고 성도교에 입교했지만 성도교의 신행을 따르지 않고 별도의 분파로 활동하다가 제세교(濟世敎)를 창립하였다. 계룡산아래 하대리에 본부를 두고 교명을 다시 선교로 바꾸었다. 1957년 조일제가 사망하자 일부 간부들이 신도를 이끌고 도학교(道學敎)에 입교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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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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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미륵불교연구회

용화미륵불교연구회(龍華彌勒佛敎硏究會)를 창립한 서승영(徐承永 1920-1996)은 192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증산교를 알아 신앙했다. 그러던 중 1964년에 증산 강일순의 계시를 받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경(經)을 외우게 되었다. 그 경을 기록으로 남겨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다가 1965년에 부산 동래구 장전 3동에서 본회를 창립했다. 1979년에 경제정책ㆍ 세제개혁ㆍ교육개혁ㆍ지하자원 개발ㆍ행정개혁ㆍ형법개혁ㆍ주민등록 철폐 등을 건의하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발송하는 등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상당수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나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1985년에 또 다시 증산의 계시를 ...

2025-07-1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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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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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전주 신흥(新興)중학교를 졸업 일본에 건너가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했으며 1957년 캐나다 이매뉴얼신학대학원을 졸업 귀국하여 1961년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에 취임했다. 그는 종래의 그리스도론적인 신학 해석방법에 반대하고 성령론적인 해석방법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민중자체의 구원적 성격을 부각하면서 성령활동의 정치적 성격을 중시하였다. 그는 1970년대에 들어 국내 신학자들과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하고 적극적인 반독재투쟁 대열에 섰다. 1975년 6월 유신독재하(維新獨裁下)에서 야기된 이른바 '학원사태'로 인해 해직되었고 이듬해 3·1 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하여 함석헌·김대중 등과 함께 긴급조치 제9 ...

2025-07-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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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봉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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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신사사변(1941년)으로 수감이 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잠시 석방되었으나 건물훼철에 대해 소송을 진행하던 중에 일제는 다시 검거를 하려고 하였다. 이에 “불법된 형벌에 처하게 되리니 어찌 무죄한 사람으로서 위태한 지경에 처하여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리오” 하고 제자들과 함께 금병산 삼태봉 서태에 임시로 토굴을 만들어 두 달간 피신하였다. 토굴 안에서 갖은 고난을 겪다가 다시 충북 청원군 낭성면 두문동으로 이주하였다. 2001년에 금강대도총본원에서 이곳에 성적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참고문헌 : 『도성편년』(금강대도)

2025-07-1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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