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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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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봉황각은 1912년 3월 7일 기공하여 6월 19일에 준공하였다. 1912년 설립 당시 봉황각과 내실 부속건물을 지었고 그 다음 해에 12칸짜리 수련 도장을 추가하였지만 3.1 독립운동 이후 수련 도장은 헐렸다. 봉황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현판은 한암 오세창이 중국 명필가의 필적을 모사한 것이다. 건물 앞쪽으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의암의 묘소가 있다. 의암 손병희는 1912년 4월 15일부터 1914년 사이에 전국의 천도교 지도자 483명을 봉황각에 모아 49일씩 7회에 걸쳐 연성수련회를 실시하여 3.1운동의 핵심역량을 형성하였다. 서울시는 3.1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보존하기 위해 1969년 9 ...

2025-07-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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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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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증산도 봉청수는 아침저녁으로 청수(淸水)을 떠 놓고 상제님과 태모님 조상신께 절을 올리고 기도하는 일상적인 신앙 의식이다. 증산도에서 청수는 생명의 근원 정화 순수 맑음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기도할 때는 맑은 물이 인간과 신명을 연결해 주는 매개로 간주한다.

2025-07-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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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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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법당이나 교도의 가정이나 또는 사무실 등에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는 것을 의식을 말한다. 원불교에서 봉불은 일반적으로 교당이나 가정이나 직장에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하는 것의 의미이지만 수행인은 각자의 마음속에도 항상 봉안하여야 한다는 점을 중요시하게 여긴다. 《원불교 예전》에는 “봉불은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함을 이름이니 법신불의 근본을 말씀하자면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자리며 그 실체를 말씀하자면 우주 만유가 모두 법신불 아님이 없으므로 따로이 일원상을 봉안할 것이 없으나 우리 일반 대중에 있어서는 신앙의 대상을 보이지 아니하면 마음의 귀의처와 수행의 표준을 알기가 어려우며 설령 안다 할지라도 마음 대조에 때때로 그 ...

2025-07-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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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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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제당은 지역마다 그 명칭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산신당 산제당 성황당 당산 등이 대표적이며 제주에서는 본향당이라 부른다. 당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신목(神木)을 제당으로 하고 돌무더기가 같이 있기도 하다. 제주도의 본향당은 당집이 있는 경우가 적고 신목과 위패를 새긴 비석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조천읍 와흘리의 경우 팽나무 신목과 ‘백조도령’ 등의 신위 위패가 새겨진 비석이 본향당이다. 본향당굿은 무당(심방)을 불러 하는 여성 위주의 당굿이고 남성들은 유교식 포제(酺祭)를 지낸다. 당굿은 일 년에 1회에서 4회까지 지낸다. 정초에는 신과세제(新過歲祭)를 지낸다. 대한에서 입춘 사이에 지낸다. 당굿에 ...

2025-07-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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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삼대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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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이 창립한 보화교(普化敎)의 의례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침ㆍ정오ㆍ저녁 삼시에 하는 삼시예배와 아울러 삼대치성 절후치성 등 여러 가지 치성이 있다. 보화교삼대치성(普化敎三大致誠)은 가장 성대하게 지내는 치성으로 수운득도일(4월 5일) 청강득도일(7월 3일) 개천절(10월 3일) 이다. 절후치성은 후천세계에 맞는 신력(新曆)에 따라 매월 초하루와 열엿새 정오에 선영신 앞에 드리는 치성과 하지 ․ 동지 ․ 춘분 ․ 추분에 드리는 치성이다. <참고문헌> 「김환옥의 보화교」(김홍철, 『원광』, 1988년 6월호).

2025-07-09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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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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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성전

기독교 『성경』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는 보혜사가 곧 진리의 영(성령 Holy Spirit)과 동일하다고 본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 기독교계 신종교에서는 창교자의 호칭으로도 사용된다. 장막성전의 영향을 받고 독립한 일부 신종교 창교자들이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안상홍 등이 구세 사명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이만희 김풍일도 자신을 ‘보혜사’로 불렀고 안상홍도 자신을 ‘보혜사 성령’의 사명자로 인식하였다.

2025-07-09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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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연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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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보천교연혁사(상·하)』는 차경석의 지시로 간부 이영호(李英浩)가 1935년에 편술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에서 1948년에 발간하였다. 『보천교연혁사(속)』는 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에서 1958년에 발간하였다. 앞의 『보천교연혁사(상·하)』는 1909년부터 1934년까지의 교단사이며 『보천교연혁사(속)』는 1935년부터 1936년까지의 교단사이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보천교연혁사(속)』(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58) 『도훈(道訓)』(민영국 편, 보천교총정원 전문사, 1987)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 ...

2025-07-0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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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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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일명 대흥리의 보천교 중앙본소의 대성전은 1925년 1월 16일에 건축공사를 시작하여 1929년 3월 15일에 준공하였다. 대성전의 핵심 건축물 십일전(十一殿)의 주변으로는 정화당 총령원 총정원 태화헌 연진원 등 45동의 부속 건물이 있었으나 차경석 사후에 일제에 의해서 모두 철거되었다. 1922년에 설립된 보천교 본부성전은 1936년 당시에 차경석의 손자 차천수의 소유로 돼 있어서 일제의 처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부성전은 유지돼 현재 보천교본부로 쓰이고 있다. <참고문헌> 「보천교」(이강오『전북대학교논문집』제8집, 전북대학교, 1966) 「普天敎와 物産獎勵運動」(안후상, ...

2025-07-0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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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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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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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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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1934년 5월에 차경석이 전문사(典文司)를 통해 발표한 강령과 주의 목적 등을 말한다. 교리는 인의(仁義) 강령은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 등이며 주의는 상생(相生) 목적은 대동(大同)이다. <참고문헌> 『대도지남(大道指南)』(임용순, 보천교중앙협정원·총정원, 1952)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보천교」(이강오 『전북대학교논문집』 제8집, 전북대학교, 1966)

2025-07-0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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