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인불도
본교의 창립자 전판철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신안(神眼)이 열리고 이보(耳報)와 구보(口報)가 열렸으며, 이후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인불대신(人佛大神)’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대부분의 병이 낫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를 도통한 ‘인불(人佛)’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에 이르고, 전판철을 ‘인불대신’으로 받들게 되자 196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교동에 교당을 신축했다. 이 교당도 당시 서울 모 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용채(趙龍采)라는 사람이 전판철로부터 중병을 치료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여 사당을 ...
2025-10-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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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대신
인불도
인불도의 창립자인 전판철은 어려서부터 앓던 지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치병의 능력이 생겼는데,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안마하면서 ‘인불대신’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환자로 하여금 이 주문을 외우게 하면 대부분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인불대신은 주문이나, 이후 전판철을 따르는 신자들은 그를 ‘인불대신’이라고 칭하게 되며,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된다. 특히 전판철의 사후에는 일시적으로 단군성조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을 ‘인불성전’이라고 고치고 전판철의 영정을 모시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전판철의 인불도」(김홍철, 『원광』, 1990년 4월호)
2025-10-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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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남
타불교
이희남은 남편 김원숙(金元淑)과 제주도 구좌면 동복리에서 살았다. 김원숙이 갑자기 정신병에 걸려 고민하던 중 제주에온 김봉남에게 물법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이로 인해 부부가 봉남의 신자가 되어 봉남을 따라 부산 영도에 가서 김원숙은 선원으로 종사하면서 물법교화를 받아 고참 교인이 되었다. 그 후 이희남의 물법시술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신자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봉남이 사망하고 이들 부부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봉남교단본부 설치에 협력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모두 흩어져 한 교파씩을 만드는 중에 그들도 나름대로 포교한 것이 수백 명의 신도를 갖는 교파가 되었다. 자기 집에 만든 법단에 봉남의 사진을 모시 ...
2025-10-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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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대천교
이영의는 오태환 등과 함께 1926년 대천교를 창립하였으며, 교주가 없는 대천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성사(제1대)가 되어 활동하였다. 다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관료로서 단군교에서 활동하였던 이영의라는 인물과 동일인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8. 1. 4.)
2025-10-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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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환성
천도교
1909년 12월 손병희는 교조인 최제우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양산 통도사에서 49일 기도회를 올렸다. 그리고 천성산 적멸굴을 방문하여 이적을 체험했는데, 이때 그는 사람의 사후문제를 크게 깨닫고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을 주장했다. 1912년 4월에는 각 지방 두목을 모아 도선암에서 49일 동안 연성기도회(煉性祈禱會)를 행했고, 6월에는 교인들의 수련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우이동에 봉황각(鳳凰閣)을 준공했다. 이후 7년 동안 49일 또는 105일씩 총 480여명을 수련시켜 3.1운동을 준비했다. 1916년 9월에 천도교 의사원(議事員) 일동이 우이동 봉황각을 찾아갔을 때 손병희는 이들에게 ‘유형한 나로써 무형한 나를 찾으라 ...
2025-10-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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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임
청동단군탑
이백임은 1910년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청동(靑銅)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5세에 심한 안질에 걸려 실명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천리교(天理敎) 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 고베[神戶]에 있는 천리교 지부에 가서 기도치료를 받아 완치한 후 천리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20세에 일본에서 결혼하여 생활하면서 불교로 개종하기까지 20년간 천리교 신앙생활을 하였다. 불교로 개종한 것은 아들의 신병 때문인데, 그녀가 36세 때 큰아들이 일어설 수 없는 병이 생겼고, ‘아들의 병이 조상의 지은 죄 때문에 생긴것이니 속죄기도하라’는 한 여승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일본인 공동묘지를 ...
2025-10-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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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신종교학
이능화(1869∼1943)의 자는 자현(子賢)이고, 호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홍문관교리와 이조참의,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지낸 개화파 이원긍(李源兢, 1849~1919)의 아들이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20여 세에 한양에 왔다. 당시 어지러운 내외정세를 알고 국제문물에 접하기 위하여 불어·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에 전력하였다. 1895년 관립법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897년 졸업도 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불어를 가르쳤다. 1906년 10월 관립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1909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서 새로운 학제가 시행될 때 ...
2025-10-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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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
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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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대치성 무극대도
강승태(姜昇泰)가 창립한 무극대도(無極大道)의 6대 기념일. 천지원존증산화천일(6월 24일). 천지원존증산탄강일(9월 19일). 천황모정부인탄신일(1월 30일). 천황모정부인선화일(8월 15일). 대황모고부인탄신일(3월 26일). 대황모고부인선화일(10월 5일).
2025-10-0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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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
단군성주교
강승태(姜昇泰, 1895-1960, 호 龍剛, 靈山天師)가 창립한 단군성주교(檀君聖主敎)의 계명이다. 6가지 경계해야 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육계(六戒)는 성·언·심·악·간·탐(性言心惡姦貪)이다. 단군성주교의 수련의 표준은 선을 정성스럽게 행하고 노애락(怒哀樂)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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