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군사직대제
천화불교(天華佛敎)에서는 1963년 서울 사직공원의 가건물에 9척의 단군신상과 사직신상을 모시고 매년 9월 15일(어천절 御天節)과 10월 3일(개천절)에 단군사직대제를 봉행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불교 유가밀교』(천화불교포교원 1968)
2025-07-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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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주의
원종교
대공화무국주의를 주장하는 김중건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먹는 일’과 ‘사람 질’로 개괄하고
2025-07-0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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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제
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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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단군교본부
김해경은 1950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에서 부친 재만(在萬)과 모친 윤금자(尹金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군복무 후에는 미용사 약탕기장사 물장사 인테리어 조경사업 등의 일을 했고 ‘목련의 향기’ 등 유행가 작사도 했다. 26세 되던 1975년 6월 어느 날 단군신령(檀君神靈)의 인도에 따라 아차산으로 이끌려 가 그곳에서 단군성령의 명에 따라 3일간 약수만 마시며 눕지도 자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2일째 되는 날 한 스님이 올라와서 홑이불과 옥수그릇을 주면서 정성드리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후 49일간 물만 마시며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를 시작하고 1주일째 되는 날 단군성령이 ...
2025-06-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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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동천교
동천교(東天敎)의 창시자.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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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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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중앙대종교
중앙대종교의 창립자 김청탄의 본명.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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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성
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은 190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한학을 공부하면서 화랑정신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도를 하였다. 1928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당(宜堂)이라는 중국인에게 의술을 배우면서도 화랑도와 단군의 풍월도 등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화랑도와 김유신장군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고 한편으로는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용산에서 한약업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충남 예산으로 피난하게 되었으며 1965년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가락김씨 종친회를 통해 ‘화랑사’를 건축하고 단군사상과 화랑정신 특히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
2025-06-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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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태
도교
도교(道敎: 봉남계)를 창립한 김덕태(金德泰)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영도에 거주할 때 병이 있어 김봉남의 부인 박씨에게서 물법치료를 받고 효험이 있은 후로 봉남의 신자가 되었다. 봉남이 사망한 뒤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환자들을 시술하면서 천지의 어머니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자기에게 강림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그래서 신자들은 김덕태를 ‘천지어머니’라 신봉하였으며 한때 수백 명의 신도가 있었다. 법단에는 천지어머니라고 하는 노고(老姑)의 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상은 김덕태의 얼굴과 흡사했다. 수련은 태상노군을 주송하면서 단식을 했고 이런 수련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했다. 참고문헌 : 『 ...
2025-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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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복
삼심교정원
김능복은 1940년 황해도 현성군 금산면 감수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 살며 초등학교와 중학을 졸업했다. 중학 2학년 때인 1969년 본원 창설의 원리인 「삼심대(三心大)」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후 여러 종교를 편력하며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여 1957년 제대하고 전북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서 윤불물십본지(圇佛物十本地:念佛宗)란 교명으로 문공부에 사회단체 등록을 했다. 그 뒤로도 원불교 · 통일교 · 삼각산 · 구복암 · 팔공산도덕암 · 대전기원정사 등을 돌아다니며 다른 종교의 교리사상을 섭렵하고 수양도 했다. 1978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25-06-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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