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북오도연합노회
기독교
해방 이후 남북의 교회가 두절되어 전국 교회를 묶는 총회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의 교회만이라도 총회 기능을 대신할 잠정적 협의기관을 구성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1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황해도의 16개 노회가 연합하여 김진수(金珍洙)를 회장으로 연합노회를 설립하였다. 이 연합노회는 종전의 총회 헌법 고수, 신사참배의 과오 통회, 신학교 직영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와해 공작과 지도자들의 투옥이나 회유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으며, 김익두(金益斗) 목사를 총회장으로 하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공식적으로 결성된 이후 북한의 교회들은 점차 친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연합노회의 영향 ...
2025-10-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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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교
오음주송의 수련에 의해 종교적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강조한 일부계 분파의 신종교.
2025-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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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
천주교
본관은 해남(海南),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전라도 진산(珍山,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사람으로, 1783년 25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84년 서울로 와서 역관(譯官)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얼마 후 입교하였다. 1789년 북경에 가서 견진성사(堅振聖事)를 받고 돌아왔으며, 1790년 북경교구장인 구베아 주교의 제사금지령에 따라 외사촌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그는 1791년 모친상을 당하자 위패를 만들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천주교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일은 지역에서 물의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조정에 알려져 남인과 노론 사이의 정파싸움으로까지 ...
2025-10-0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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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불물십본지
김능복(金能福)이 창립한 삼심교정원의 초기이름. 염불종(念佛宗)이라고도 했음.
2025-10-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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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일본기독교
그는 삿뽀로 농업대학시절 기독교로 개종하여, 188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애머스트(Amherst)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서구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크게 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성직자가 되지 않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다. 1888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보고 배웠던 신앙의 훈련을 심어주기 위해 니가타[新潟縣]에 있는 기타고시시학관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곧 사임하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891년 천황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교육칙어’ 봉독식때 정성들여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경사건’으로 말미암아 교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문필가로서의 삶을 평생 살게 되었다. 그는 ...
2025-10-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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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천도교
손병희의 수련장소로 천도교로서는 유적의 의미가 있으나 현재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손병희가 1882년 동학을 믿기 시작하면서 전도사로부터 받은 주문 21자를 매일 3만 독(讀)씩 읽고 외우며 지극한 수련을 쌓기 시작하였다. 손병희는 주문을 읽는 틈틈이 매일 같이 짚신을 두 켤레씩을 삼았으며, 이 짚신을 한 달에 여섯 번 5일만에 열리는 청주장에 나가 팔았다. 이와 같은 생활을 3년간이나 수련으로 일관된 생활을 해 나갔던 것이다. 손병희는 공주 가섭사, 익산 사자암, 그리고 풍천 용문사 등에 들어가 수련을 하였다. 이와 같은 지극한 종교적인 수행이 훗날 그 많은 업적을 이루게 하였던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천 ...
2025-10-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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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암
구한말에 안석현이 남산의 약수터 위에 묘당을 지어 제갈무후(諸葛武候:臥龍先生)를 봉안하고 사람들의 기복, 재액, 치명을 기원하였다. 그 후 이 묘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김교상(金敎商)이 이 곳에 전처럼 묘각을 건립하고 무후묘(武候廟)라 하였고, 관운장까지 모셔 한때 관왕묘의 지부가 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단군까지 봉안하고 그 옆에는 불당을 세워 당호를 와룡당이라 했다.
2025-10-0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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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옴진리교는 요가 단체로 출발하였으나, 종교단체로 발전하여 시바를 주신(主神)으로 폐쇄적인 공동체을 유지하며 종말론적 세계관, 교조에 대한 절대적 신뢰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교조 아사하라(1955~)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종말론적 예언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자신이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나타난 구세주이며, 자신의 영적인 에너지를 받은 추종자는 살아남아 새로운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불교적 이상세계인 ‘샴발라’(Shambhala)를 본 딴 ‘로터스 빌리지’를 전역에 건설하여 일본을 세계구제의 중심부로 만들고자 하였다. 옴진리교는 90년대 전후 이미 폐쇄적인 집단으로 발전하여 내부 불만자나 ...
2025-10-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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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등대
금강대도
오만등대는 둥근 원 모양의 오만수련광장의 중앙에 세워졌으며, 정사각형의 돌탑 위에 삼각형으로 된 철탑이 높이 솟아 있어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했다. 돌로 세운 네 기둥은 높이가 21자 6치이고, 네 개의 문은 동서남북으로 통달한다는 의미가 있다. 네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철탑의 높이는 108자로 삼층이며, 전등을 달아 행사시엔 불을 밝힌다. 또한 오만등대는 솟대문화의 민속학적인 뜻도 담고 있어 인류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덕성편년』(금강대도)
2025-10-0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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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수산리
천도교
정부의 탄압을 피해 최시형이 어디로 은신했는지는 기록에 따라 다소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최시형이 1867년 2월경에 예천 수산리에 온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행정구역상 예천군 풍양면 고산 1리에 속한다. 저수지를 앞에 두고 마을 뒤로 우뚝 솟은 삼각형 산이 이채롭다. 산 아래 마을이 ‘수산리(水山里)’이다. 마을 앞 들판에서 땅을 파면 어디서든 물이 솟는다고 해 마을 이름을 수산리라고 부르게 됐다는 두메산골이다. 30여 가구에 주민 6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작은 산마을이 한때 최시형이 관아의 탄압을 피해 은신한 곳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학운동의 탄압으로 1864년 최제우가 ...
2025-10-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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