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은적암
천도교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한울을 체험하여 깨달음을 이룬 뒤 널리 창생을 구하고자 동학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영남 사대부들과 관아의 탄압을 받아 1861년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으로 피신하였다. 은적암의 본래 명칭은 덕밀암(德密庵)이었는데, 수운이 이곳을 은적암이라 고쳐 불렀다. 선국사 대웅전 뒤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은적암 터 가는 길, 덕밀암 터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은적암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접주 심노환(沈魯 煥)의 도소였다는 이유로 관병에게 불태워지고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수운은 여기서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칼노래(劍訣),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몽중노소 ...
2025-10-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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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별신제
예전에 은산은 부여읍에서 서북쪽으로 첫 역원(驛院)이 있었던 곳으로, 인근의 농산물이 집산되었고 5일마다 큰 장이 섰다. 은산마을 뒷산을 당산(堂山)이라고 부른다. 당산 서쪽은 절벽이며 그 아래로 은산천(恩山川)이 흐른다. 당산의 남쪽에는 고목이 울창한 숲이 있고, 이 숲속에 별신당의 당우(堂宇)가 있다. 당우 안 정면에는 산신(山神)이 안치되어 있고, 동편 벽에는 복신장군(福信將軍), 서편 벽에는 토진대사(土進大師)의 위패와 초상화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이들은 백제부흥운동에 나섰던 충신들이다. 옛날 은산에 역질이 돌았는데, 백제의 장군이라는 노인이 현몽하여 백골을 수습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백골을 모아 장사를 지 ...
2025-10-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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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법결의
원불교
교도 가운데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공부와 사업을 서로 권장하며 정신과 육신을 서로 보호하기 위해, 서로 처지가 적당하고 뜻이 맞는 사이에 법규의 정한 바에 따라 특별히 은부자(恩父子)와 은모녀(恩母女)의 의(義)를 맺어 한 가족의 정의(情誼)로써 일생토록 보살핌과 봉양의 의무를 다하는 것(『예전』 교례편). 혈육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 사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친부모 이상으로 잘 모시고, 친자녀 이상으로 자비를 베풀며 사는 관계를 말한다. 은법결의식은 그 결의됨을 스승과 동지 친우들에게 공개하며, 서로 끝까지 그 의리를 지켜나갈 것을 서약하는 의식으로서 은법결의를 스승·선배·동지·친우들에게 널리 공개하고, 서로 끝까지 그 ...
2025-10-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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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성
신리종교
→ 신리종교 참조.
2025-10-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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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원
황황교
윤윤원은 1894년에 출생하여 30세 되던 때 갑자기 사경에 들어갔다가 몇일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이 사경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황황공부를 시작하여 1960년 충남 공주군 계룡면 구왕리에서 황황교를 창립했다. 윤 여인은 하늘의 지시를 받고 있는 영사(靈師) 또는 강사(降師)라 불렸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열리는 정기집회 때 그녀는 자기의 고유한 춤을 추게 되는데 그 춤의 모양이 무녀의 춤과 흡사했다고 한다. 또한 윤윤원은 점, 사주나 궁합 등에 능통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
2025-10-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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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신비주의
퀘이커교
퀘이커교의 신비주의는 세상으로부터의 물러남과 세상 속에서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한다. 퀘이커교의 창시자인 조지 폭스에 의하면, 퀘이커교는 내적으로는 신과의 수직적인 관계성을 형성하고, 외적으로는 인간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을 추구한다. 곧 신비경험이 내면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이 세상 속에서 윤리적 실천을 통해 드러날 때 의미가 있다고 본다.
2025-10-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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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초공사
증산법종교
1기초는 1937년 9월 17일 전주, 2기초는 1942년 12월 24일 의성, 3기초는 1945년 2월 3일 의성, 4기초는 1946년 1월 15일 김제(구미란), 5기초는 1947년 4월 8일 김제(동곡), 6기초는 1949년 1월 20일 김제(오리알터)로 구분하고 있다.
2025-10-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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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갑철학
삼령교
현도철이 창립한 삼령교(三靈敎) 교리의 핵심. 일월성신과 천지의 도수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그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을 강조.
2025-10-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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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일
타고난 총명으로 5세에는 한시(漢詩)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13세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독하여 철리(哲理)에 밝았다. 23세에는 8개군 합동 유림강회에서 『주역』을 강론하여 유주역(柳周易)이라는 별칭까지 받았다. 젊어서는 민족광복에 뜻을 두어 독립지사들과 모임을 갖고 상해에 건너가려하였으나 부친의 열반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3세부터 영광보통학교 교원으로 13년간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일체 자유 활동을 제지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와 방해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교원직을 사임했다. 이후 몇 년간을 울분에 휩싸여 좌절하며 지내다가 1932년 10 ...
2025-10-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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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회통론
성리학에 입각한 예교(禮敎)국가로 출범한 조선 초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으며 서로 회통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己和)가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이 대표적인 저술인데, 이는 정도전 등 유학자들의 배불론(排佛論)에 대하여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불교를 대질하여 자문자답식으로 논술한 책이다. 유교와 불교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교법이므로 공존함이 마땅하니 서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펼치고 있다. 이후 배불론과 불교옹호론 및 절충론 등의 논쟁이 이어졌으나,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유불회통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5-10-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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