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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종교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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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타종

대한불교미타종 산하의 신문사로서 1989년 11월 14일 등록하였고, 현재 대표자는 권원상. <참고문헌> 대한불교미타종 홈페이지(http://www.mitajong.or.kr/)

2025-10-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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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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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양준룡은 한때 김해룡(金海龍)으로 행세한 신명인(神明人)으로, 김판례를 만난 후 1955년 대전시 보문산 기슭에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를 지었다가 ‘용화불사’로 개칭하였고, 1973년에 ‘단백교’로 개명하였다. 그는 김판례와 더불어 매일 단군의 계시를 받았는데, 김판례는 영매 역할을 하였고, 양준룡은 단군과 실제 대화를 나누었으며, 우리말로 발음하는 토설을 한자로 음을 맞추면 모두가 예언의 진리가 된다고 하였다. 초기 단백교 교리의 기본은 양준룡이 만들었는데, 그는 『시집가구서(詩集歌謳書』와 『장가가구서(章歌歌謳書)』 등 76권에 달하는 경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

2025-10-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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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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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갱정유도의 여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서당. 양당의 선생은 여모사(女姆師)라고 지칭됨.

2025-10-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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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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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때리기·찌르기·만지기·누르기·긁어파기 등 신체에 물리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죄의 구원과 병의 치료를 받고자 하는 한국개신교의 독특한 기도문화이다. 신약성경에는 전거가 없다. 구약성경 열황기하 13장 16절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라는 구절에 단 한 번 등장하는데, 개정번역판과 공동번역판에서는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라고 수정되었다. 한국 개신교에서 안찰을 처음주장한 사람은 천부교(天父敎)를 창시한 박태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다수의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 방식을 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속적 신앙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2025-10-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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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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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는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라고 되어 있고, 또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하여 조선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옮겨 1,500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2025-10-0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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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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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단군교종무청의 의례는 10월 3일 천제의식, 입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씨알의식, 매주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행하는 경배모임, 매월 3일과 15일에 행하는 기름모임, 잔치모임 등이 있다. 씨알의식의 순서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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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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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교천지종

십선은 방생(傍生), 근면(勤勉) 정행(正行), 정어(正語), 진어(眞語), 실어(實語), 애어(愛語), 보시(布施), 자비(慈悲), 지혜(智慧)를 지칭하며, 십악은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애(貪欲), 진애(嗔恚), 치음(痴暗)을 지칭한다.

2025-10-0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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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삼자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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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천도지상천국건설원

무선악이란 선악을 한가지로 통합한 절대의 진리 평등한 양심을 말하고, 삼정신은 국가관, 종교관, 사회관으로 보아 양심적인 사람으로 하는 제도적 법칙, 해인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뜻하며 신분증과 같이 인격판단기준이 된다고 한다. 양심평등은 위 법문으로 양심적인 인간으로 부활케 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2025-10-0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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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등대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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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성전의 별칭임.

2025-10-0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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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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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교

태을교(太乙敎)를 창립한 신현철(申鉉喆)은 보천교(普天敎) 간부로 있다가 교금 유출사건으로 차경석(車京石)과 마찰이 생겨 보천교를 탈퇴했다. 그리고 1921년 서울에서 태을교를 세워 차경석과 대결하였으나 곧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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