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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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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지상(地上)의 인간은 영인체(靈人體)와 육신(肉身)으로 구성되며 영인체는 마음인 생심(生心)과 체(體)인 영체(靈體)로 구분되고 나아가 육신 역시 마음인 육심(肉心)과 체(體)인 육체(肉體)로 존재한다. 따라서 지상인간의 마음은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과 육신의 마음인 육심이 수수작용(授受作用) 하여 일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지향하는 마음이 본심(本心)이다. 타락된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는 마음은 양심(良心)이라고 한다. 본심과 양심의 관계는 본심은 선을 지향하는 인간 마음의 성상(性相)적 부분이며 양심은 그 형상(形狀)적 부분이다. 창조본연(創造本然) ...

2025-07-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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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흥여자사립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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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보흥여자사립수학(普興女子私立修學)은 1920년대 초반에 차경석의 여동생 차윤숙(車輪淑)이 ‘신지식을 함양하고 장래 사회에서 활약할 보천교인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차윤숙의 객실에서 출발한 보흥여자사립수학은 15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교사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김옥선(金玉善)이다. <참고문헌>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의 교육활동」(김재영, 『신종교연구』 제14집, 한국신종교학회, 2006)

2025-07-09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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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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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

보화교 수련의 종류는 주로 주문과 기도공부로 이루어짐. 시천주결실공부법(侍天主結實工夫法), 대명덕탄부부법(大明德呑符符法), 망월탄부부법(望月呑符符法), 해부탄부부법(海符呑符符法) 등이 있음.

2025-07-09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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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삼대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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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34년(원기19)12월 16일에 4×6판 41쪽으로 발행되었다. 《삼대요령》이라고도 약칭한다. 먼저 발행된 《보경육대요령》(1932)의 국한문판과 한글판이 각각 한 달 간격으로 보급된 이후로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 훈련편 학력고시편 사업고시편’이라는 여섯 가지 교리체계가 교도들의 마음속에 확고히 틀 잡혀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경육대요령》의 총목차 중에서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 ‘훈련편’의 세 가지만 발췌하고 각각의 요지와 목적을 간략히 정리하여 《보경삼대요령》을 새롭게 발간했다. 대중들에게 100쪽에 달하는 《보경육대요령》보다는 41쪽 분량의 《보경삼대요 ...

2025-07-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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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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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유마종

1992년 무해(김길수)에 의해 창종된 대한불교유마종(도솔천유마종)에서 발행한 월간신문으로 1993년 등록(공보처 제6151)되었다. → 대한불교유마종 참조.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

2025-07-0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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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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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파는 그 수도방법상에서 크게 태을주(太乙呪)를 비롯한 여러 주문을 주로 염송하는 주송파(呪頌派)와 법문 즉 『현무경』사상을 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법문파라 한다.

2025-07-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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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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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당(三神堂)

백옥성은 1865년 평안도 강동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묘향산 신선암에서 매월 초하루 보름으로 제향(祭香)을 받들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전생 금세에 지은 죄업을 사하고 금세의 복록과 후천운수를 다시 받게 해 달라」 는 기도를 드리곤 했다. 어느 날 계룡산 산신이 나타나 「계룡산에다 일간 초당과 초가삼간 집을 마련해놓고 청룡과 백학이 춤을 추며 너를 오라 손짓하니 바삐 가자 어서가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타관이라 못가겠다고 하니 산신께서 벌을 내려 3개월간을 고통을 받았다. 가산을 정리하여 계룡산을 찾아와 계룡산 성도봉 남쪽(신도안 쪽) 만복암(萬福庵) 큰 바위 밑에 일간 초당과 초가삼간이 있어 ...

2025-07-0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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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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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교(關聖敎)

박기홍의 구체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20년 김용식(金龍植)과 함께 종래의 관제(關帝)를 숭배한 숭신단체 전내무(殿內巫) 및 일반 민중을 교도로 하는 관제숭배자를 규합하여 관성교를 조직하였다. 박기홍은 전내무 등에 의해 잘못 전해진 관제의 교를 교정하는 한편으로 관제의 충렬용의(忠烈勇義)로써 민중을 선도하려고 하는 취지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7-0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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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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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인암파

증산교인암파(甑山敎仁菴派)를 창립한 박공우(朴公又 1876-1940)는 1876년 전주 교동에서 부친 박순문과 모친 오묘전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풍체가 당당하고 음성이 웅장하고 힘이 장사여서 전라북도 정읍 · 고창 · 흥덕의 세 장을 주름잡고 다녔다. 3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고창에서 야소교를 믿어 수십 명을 전도한 일이 있고 동학에 들어가 열성 있는 신도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수제자중 한사람이 되고 증산의 천지공사에 적극 협력하였다. 증산이 사망하고 난후 기운을 내려 줄 것을 증산상제에게 기원하여 신력(神力)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1 ...

2025-07-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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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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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교

바하올라는 1817년 오늘날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미르자 후세인 알리 누리(Mírzá Ḥusayn-`Alí Núrí)다. 27세가 되던 해에 바하울라는 바압의 종교운동에 참여해서 핵심적인 지위에 올랐다. 바압의 종교단체에게 탄압을 받던 1850년대에 그는 자신이 신의 전령사임을 알리는 신의 계시를 받았고 1863년 바그다드 체류기에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에게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바하이교를 설립하였다. 1868년 오스만제국에 의해서 바하울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카(`Akká)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술탄의 사후에 자유를 얻은 바하울라는 말년에 바흐지(Mansion ...

2025-07-0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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