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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총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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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총본사는 교단의 중앙기구로 대일각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산하에 도본사 시교당 및 수도원을 두고 있으며 연구기관으로 종학연구원을 두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 2동 13-7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2025-07-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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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영암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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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중교(桓衆敎)의 이칭

2025-07-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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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성적도해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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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본 도서의 발간 취지에 대해서는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구천대원조화주신이신 상제께서 삼계 대권을 주재하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인세에 대강하사 상도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 지상 천국을 건설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巡廻) 주유(周遊)하시며 40년간에 걸쳐 행하신 삼계 공사 중에서 선택한 구절을 요약해서 성화(聖畫)로 본부 본전 회관 및 더러는 지방 회관에도 모셔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알기 쉽게 도해한 책자이다.” 이상의 의도에 따라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1.강세(降世)와 유년시절(幼年時節) 2.광구천하(匡救 ...

2025-07-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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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는 담담한 물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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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성훈통고』는 이토암 선생의 핵심적 가르침이 나타나 있어서 중요한 전적이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완역(完譯) 하지 않고 토암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추려 내어 총 15장 342절로 편역(編譯)해 내었다. 제1장 도성보(道聖寶) 제2장 의성(義誠) 신앙 제3장 도덕 제4장 수도 제5장 대겁운의 임박 제6장 구원관 제7장 포교-시행방편(時行方便) 제8장 충・효・성경 제9장 가화 제10장 청결 제11장 언행중여산(言行重如山) 제12장 남녀평등 제13장 예법 제14장 약사여래 제15장 대지명당(大地明堂)이다. 너무 요점만 추려내다 보니 방대한 자료가 ...

2025-07-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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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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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丹學)은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고대 중국의 신선술(神仙術)에서 기원하며 ‘단’(丹)은 일차적으로 불로장생약을 의미한다. 단학은 크게 외단학(外丹學)과 내단학(內丹學)으로 구분되는데 불로장생약을 제조 복용하여 신선이 되려는 것이 외단학이며 내단학은 수련을 통해 천지의 법칙에 따라 몸 안에 음양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몸에 단을 생성하여 신선이 되고자 한다. 이러한 단학이 한국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80년대로 이것이 한민족 고유의 수련법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여기에는 선도(仙道)의 큰 스승으로 알려진 권태훈(1900~1994)을 모델로 한 베스트셀러 소설『丹』(1984)이 한 몫을 하였다. 이 책은 한국 ...

2025-07-0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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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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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체는 이담이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양양할 목적으로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1958년 단군전봉공회를 단군숭령회로 명칭 변경하여 문교부의 인가를 얻었으며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1961년에는 본 단체 산하에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달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新蘇生運動)’을 벌였다. 1966년에 조경한(趙擎漢)이 회장에 취임하여 전국의 무격단체(巫覡團體)까지 포섭하여 한때는 150여 개 지부에 수십만 명의 회원을 두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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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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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주교(檀君聖主敎)를 창립한 강승태(姜昇泰 1895-1960 호 龍剛 靈山天師)는 1895년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보천교에 들어가 수도했다. 1924년 영강(靈降)한 증산 강일순으로부터 천지대도를 전수받아 1930년에 기도(起道)하고 1931년에 통운(運通)하고 1932년에 입도(立道)하고 1934년에 개운(開運)함으로서 1936년부터 포교를 시작했다. 처음에 무극대도(無極大道)라 했다. 1937년 일황불경(日皇不敬)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구속되어 복역하다가 해방 후에 나왔다. 1953년 9월에는 북제주군 애월읍 명덕도동으로 옮겨 도명을 단군성주교로 고치고 많은 예언을 하며 교단을 이끌다가 ...

2025-07-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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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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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명

2025-07-0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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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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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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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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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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