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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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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발한개천각

이유립은 1907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부친 관집과 모친 태인 백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를 불렀으며, 이기(李沂)가 창도한 단학회에서 주관하는 배달의숙(倍達義孰)에 입학하여 계연수(桂延壽)·최시흥(崔時興)·오동진(吳東振) 등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조선독립소년단의 단장이 되어 이름을 채영(采英)으로 바꾸었다. 이후 의민사(義民社)·천마산대(天摩山隊) 등 항일단체의 소년통신원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1924년 삭주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해 1927년에 졸업하였고, 한동안 만주에 머물다가 193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이기의 신교육종지를 실천하기 위해 삼육사(三育社 ...

2025-10-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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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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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

이복래는 이운규의 아들이며, 용래(用來:夫蓮)의 동생이며, 김항의 사위이다. 출생연대는 알 수 없다. 그의 호가 일수인 것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나, 그의 속명은 복래와 용신 등으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광화김처사법언록』 등에 따르면 이용래가 아버지 이운규로부터 도를 배워 김치인과 동생 이복래에게 전교하였다고 한다. 이용래에게 도를 배운 김치인은 어느 날 스승이 외유한 후 돌아오지 않고 대신 이복래가 찾아오자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이복래를 교주로 모시고 교단의 기초를 닦기 시작하여 1888년에 ‘오방불교’를 창립하였다고 한다. 이복래의 사상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

2025-10-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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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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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계

1860년 4월 5일 동학의 교조 최제우가 영감으로 한울님에게서 받았다는 천신(天神)을 그림으로 표상한 부도(符圖)이다. 최제우는 한울님으로부터 영부(靈符)를 받고 그것을 선약(仙藥)이요, 태극(太極)이요, 궁궁(弓弓)이라 표현했다. ‘오유영부기명선약 기형태극우형궁궁(吾有靈符其名仙藥其形太極又形弓弓)’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영부의 의미와 사용방식이 『동경대전』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들을 가르칠까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오 그 형상은 태극(太極)이오, 또 형상은 궁궁(弓弓)이니 나의 이 부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제하고, 나의 이 ...

2025-10-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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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무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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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의 창시자인 송철화는 김항의 제자가 아니며,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참혹한 현실에서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정역』을 알게 되어 연구하게 된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정역』을 해득하던 중 득도를 하게 되는데, 당시 일부계통의 신종교가 점점 쇠미해짐을 안타까워하면서 1960년 스스로 충남 논산시 두마면 향한리의 향적산 아래에 ‘허공산제당’을 짓고 사람을 모아 수련과 공부를 시키기 시작하였다. 주된 사상은 김항의 정역사상을 근간으로 하며 신앙의 대상은 상제, 천황, 지황, 인황, 미륵, 신령, 하나님, 천도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으나 직접적으로는 김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본교에서는 김항이 사후 은 ...

2025-10-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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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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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양한묵은 전남 해남 옥천출생으로 1894년 능주(화순)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임명되어 능주세무관으로 근무하였다. 동학농민혁명 때에는 많은 동학농민군을 죽음으로부터 구하였다. 1897년 사직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등지를 돌아보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정과 세계 대세를 살폈다. 1902년 일본에 망명중인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의 권유로 동학에 입도하였고, 귀국 후 보안회와 공진회 등 조직 활동을 하였다. 1905년 2월 공진회가 탄압으로 해산된 후 같은 해 5월 이준, 윤효정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헌정연구회가 또다시 탄압받자 윤효정 등과 함께 그 후신으로 ...

2025-10-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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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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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액(度厄)’ 혹은 ‘제액(除厄)’이라고도 한다. 액막이는 대개 정월에 하는데 액이 닥쳐오리라고 생각될 때에 비정기적으로 행하기도 한다. 정초에 삼재(三災)가 든 사람은 부적을 방문 위나 문설주에 붙인다. 그 해 신수가 나쁜 사람은 정월 열 나흗날 밤에 짚으로 오쟁이를 만들어 그 속에 모래나, 돌, 동전 몇 잎을 넣고 개천이나 징검다리 사이에 놓아 디딤 다리가 되게 하는데, 이를 ‘오쟁이 다리놓기’ 또는 ‘노두(路頭)’라고 한다. 나이에 따라 찾아와 재액을 주는 ‘제웅직성[羅睺直星]’이나 ‘해직성[日直星]’, ‘달직성[月直星]’, ‘물직성[水直星]’을 만나는 해에는 그에 따른 액막이를 한다. 액막이용 연날리기(방연 放 ...

2025-10-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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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발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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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신종교 발생이론은 일반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2015년 현재까지 국내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신종교 발생이론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주로 사회, 경제, 정치의 혼란으로 야기된 아노미적인 상황, 상대적인 박탈감, 전통적인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기성종교의 쇠퇴, 정신병리학적인 사회심리적 요인, 서구문화와의 접촉으로 인한 문화접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이 지니고 있는 한계가 없지 않다. 일부는 종교기능론적 설명과 종교발생이론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고, 일부는 이론을 배태시킨 문화권 이외 지역에서는 그와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러 이론의 문제점들은 결과론적 환원주의에 빠져 있어 그 이론 ...

2025-10-0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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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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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의 산악신앙에서 유래하여 가장 보편적인 신앙의례로 정착하였다. 환웅이 하늘로부터 수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하강한 곳이 산(태백산)고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린 단군왕검이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은 산악신앙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고대 이후 각 왕조에서는 오악 삼신산 등의 산에 공식적인 사전체제(祀典體制)로 제사를 지냈다. 오늘날에는 산신제가 지역 또는 마을 단위의 소규모 행사로 축소되면서 지역민 보호와 안녕 추구로 목적이 바뀌게 되었다. 산의 주인인 산신령은 산신 산신할아버지 산할아버지 할아버지 산신령님 신령님 산왕 산왕산신 산군 산령 산귀신 등으로 불린다. 산신도에는 호랑이의 변화신인 신선이 호랑이 등 위에 앉 ...

2025-07-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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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젠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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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련종(日蓮宗)

1859년(安政 6년) 에도[江戸]의 시모코오[下河]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사노[佐野] 가문에 양자로 입적되어 아라이 닛사쯔[新居日薩]에게 수학하였다. 1888년(明治 21년) 일련종의 조직개혁을 제안하였다가 실패하였다. 1910년(明治 43년) 종무총감(宗務総監)이 되어 조선에서의 일본불교 포교에 앞장섰다. 1912년(大正 1년) 54세로 사망하였다. 그가 조선불교사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1895년 일련종 관장대리의 자격으로 조선에 건너와 조선 승려의 도성출입금지 해제를 김홍집 내각에 건의하여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한 여파를 타고 조선에서 포교를 확장하는 데에 있었으나 당시 조선의 승 ...

2025-07-0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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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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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초기 교단의 역사에 1919년(원기4) 봄에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구인제자들에게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가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천지에 기도하라.”(《대종경》 서품13)하여 구인 제자 각자에게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고 일제히 기도를 올려 이해 음 3월 26일부터 음 7월 26일까지 매월 3ㆍ6일마다 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기도 중 (음 7월 26일) 제자들에게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는 최후증서에 백지장(白指章)을 찍고 ...

2025-07-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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