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028건
남학운동
오방불교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을 계기로 발의한 남학의 총궐기 계획.
2025-07-0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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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
남학(南學)에 대해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서 ‘동학(東學)과 같은 시기에 호서(湖西)지역(충남도)에서 처음 창도되었고 이운규가 1세교주 김항(金恒: 호 일부 충청도 연산군 남면 담곡리 사람)이 2세교주 권일청(權一淸)이 3세교주’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남학은 1860년대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종교운동의 한 양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운규가 실제로 종교운동을 펼쳤는지는 의문이며 당시 남학이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학의 최제우(崔濟愚)가 자신의 교법을 단지 ‘무극대도(無極大道)’라고 하였으며 김항도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의 교법을 ‘무극대도’라고 하였다는 점 등 ...
2025-07-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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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포덕
금강대도
토암은 부인 서자암(徐慈庵)과 제자 백련(白蓮) 정태용(鄭泰鎔 1880~1932) 부자(父子)와 더불어 1910년 제자의 인연을 찾아 남쪽 지방인 충청도로 거주지를 옮겨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남천포덕(南遷布德)’이라고 한다. 남천포덕을 결행하기 전에 토암은 직접 수천인의 성명을 한 책에 써놓고는 “내 장차 남방에 가서 이 사람들을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리라.”고 하고는 곧 불살라 버리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쳐 길을 떴다가 되돌아오곤 하던 토암은 마침내 37세 되던 1910년 3월15일 가족과 제자 30여인을 데리고 길을 떠나 4월8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白岩洞)에 도착하게 되었다 ...
2025-07-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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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
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韓山)에서 출생하여 예산(禮山)에서 성장하였다.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山寺)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했는데 계룡산에서 기도 중에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남선리(南仙里) 석각골에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1958년 그녀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건평 10여 평으로 된 목조 와가를 설계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겨우 상량을 해 놓고 중단한 채 4년을 방치하였다. 1963년 경작답을 매각하고 청양 사람 조병호(趙柄鎬)의 도움으로 다시 착공했으나 경비부족으로 완전한 내부 ...
2025-07-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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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신앙
기층신앙
최남선의 저서인 『조선의 상식문답』에 처음으로 거론이 되면서 일반화가 된 구성개념이다. 그 연원이 대체로 조선후기에 사회적 변혁을 기대하는 민중의 대망이 우러나온 낙원 동경의 이상이 결부 된 소박한 관념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남조선신앙의 증후로 간주가 되는 어휘로서 南 혹은 南海라는 문구가 인조 연간 이후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삼남 각처에서 농민반란이 발흥하는 가운데 흉흉한 인심에 편승해서 기한(飢寒)에 시달리는 현실을 탈피하려고 하는 민초들의 심의(心意)에 자리 잡았던 이상향에 대한 희구의 염원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북창(鄭北窓)의 「金山寺歌』에도 “만국활계 남조선은 청풍명월 금산사라. 여보시오 세상사람 ...
2025-07-0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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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청림교
청림교(靑林敎)의 창시자. 본명은 남한준(南韓駿) 호는 청림(靑林).
2025-07-0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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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익순
대한불교천태종
남익순(南益淳)은 1925년 음력 12월 5일 충북 단양의 소백산 구봉팔문(九峰八門) 아래 여의생(如意生)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양양 남씨로 아버지 명진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의 독자였다. 법명은 대충(大忠)이다. 21세에 대한불교천태종의 창종자 상월 박준동(1911-1974)을 은사로 출가한다. 그는 박준동의 상수제자로서 스승을 지성으로 공경하고 시봉하는 한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투철하게 수행하여 1960년 36세 되던 해 박준동으로부터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인증을 받는다. 또한 1967년 동안거 때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는다. 1974년 7월 2일 박준동에 이어 대한불교 천태종의 제2대 종정에 취임한다. ...
2025-07-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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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북선
보천교
사회단체의 보천교 박멸운동에 이어 내부의 혁신운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차경석이 1926년 2월에 60방주 전원을 해직하고 대신에 전국의 교인 조직을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이라는 이름으로 양분하였다. 당시에 북선을 ‘선북교인연합회’라 하고 그 책임자를 임치삼(林致三)으로 남선은 ‘보천교남선총무소’라 하고 그 책임자를 김정곤(金正坤)으로 임명하였다. 남·북선 체제는 같은 해 5월경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폐지되었다. 1927년 6월에 60방주제가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민중과 유토피아』( ...
2025-07-0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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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했다가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1958년 계룡산에 주택을 세우고 동쪽 산 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경비 부족으로 중도에 중단하였다. 이것을 광명도의 창립자인 정요순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내부시설과 외부환경을 정리해 주어 1964년 3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도의 정요순이 이곳을 거점으로 광명화운동을 전개한다고 단군 앞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염파방송을 하자 이를 물리쳐 버렸다. 따로 신도를 ...
2025-07-0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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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종
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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