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탈세속화
1960년대 이후 많은 사회학자들이 현대사회의 세속화 경향을 지적하였으며, 극단적인 경우 합리화로 인한 종교의 소멸을 예견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이슬람 세계의 변화와 오순절계통의 기독교인의 증가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세속화 이론가였던 피터 버거는 1999년에 『세속화냐 탈세속화냐(The Desecularization of the World)』라는 저서에서 근대화로 인해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의식 차원에서 점차 종교가 쇠퇴한다는 세속화 이론의 오류를 시인하고, 근대화 이후 한편에서는 반세속화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개인의 삶의 차원에서 ...
2025-10-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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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제
용왕제는 바닷가 마을에서 행하는 의례이다. 지역과 마을에 따라 갯제, 용신제, 해신제, 풍어제 등으로 부르고 있다. 배나 어장을 가진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는 고사나 푸닥거리, 마을에서 무당을 불러서 하는 풍어굿과는 성격과 형식을 전혀 달리한다. 마을제사인 동제에 부수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고, 당산제와는 별도로 행해지는 곳도 있다. 용왕제는 지역에 따라 어부슴(어부심, 물고기 밥주기), 요왕제(유왕제, 유황제), 용왕먹이기(용왕멕이, 용왕밥주기), 용왕공(요왕공), 용왕치기, 물 위하기, 산신용왕제(용왕산제), 액막이, 삼신받이, 용궁칠성 등으로도 불린다. 대개 정월 열나흗날이나 대보름날 밤에 지내지만 지역과 가정에 ...
2025-10-0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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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무도교
김항은 생존 당시 많은 제자를 두었는데 대표적으로 40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이후 ‘대종교’를 창립하고 김항을 신격화하면서 윷판이론을 전개하며 포교하였는데, 교세가 확장되면서 다른 제자들과 교통을 둘러싼 분란이 일어나 교단이 분열된다. 이때 이희용도 자신을 따르는 제자 및 신도들을 모아 분파하여 독립적으로 교단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 따로 교단의 명칭을 내세운 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당시 이 교단을 다른 일부계 교단과 더불어 통칭 영가무도교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희용이 사망하게 되자 교단은 유야무야가 되었으며, 사실상 해체되고 ...
2025-10-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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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묵
천도교
양한묵은 전남 해남 옥천출생으로 1894년 능주(화순)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임명되어 능주세무관으로 근무하였다. 동학농민혁명 때에는 많은 동학농민군을 죽음으로부터 구하였다. 1897년 사직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등지를 돌아보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정과 세계 대세를 살폈다. 1902년 일본에 망명중인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의 권유로 동학에 입도하였고, 귀국 후 보안회와 공진회 등 조직 활동을 하였다. 1905년 2월 공진회가 탄압으로 해산된 후 같은 해 5월 이준, 윤효정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헌정연구회가 또다시 탄압받자 윤효정 등과 함께 그 후신으로 ...
2025-10-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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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운동
조선 말에 이르러 서구열강을 중심으로 한 외세의 침입이 잦아지고, 민족자주성이 결여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일부 민족지도자들은 민족주체사상을 기반으로 교단을 설립하고 단군을 신앙하고 받드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염백(金廉白)의 ‘신교운동(神敎運動)’과 백봉(白峰)의 ‘단군포명운동(檀君布明運動)’이라 할 수 있다. 김염백은 경상북도 영천 사람으로 함경도 묘향산에 들어가 단군신명께 천일기도를 올렸으며, 마침내 단군으로부터 성령을 받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인도정의(人道正義)로서 척사부정(斥邪扶正)을 주지(主旨)로 교법을 지도하였으며, 그 문도가 수천 명에 달하는 등 김염백의 신 ...
2025-10-0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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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신종교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부터 벗어나 불교계가 자율성을 회복하게 된 상징적 사건은 1895년 승려의 도성출입금지 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가 국가의 완전한 통제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은 1899년에 동대문 밖에 수사찰 원흥사를 건립하여 한국불교의 총 종무소로 삼고, 1902년에는 사찰령을 제정하여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게 된다. 더욱이 전국의 승려대표자가 모여 설립한 원종은 이회광에 의한 일본 조동종과의 연합 체결로 일본불교에 예속될 위기에 놓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11년 한용운을 주축으로 한국불교의 주체성 확립을 내걸고 임제종을 세운다. 불교계의 이러한 자립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는 ...
2025-07-0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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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방
신천지
신천지 신앙자를 위한 첫 교육 장소가 복음방이다. 교육이 가능한 어떤 형태의 장소도 복음방으로 활용된다. 심지어 기성 교회의 특정 공간을 활용하기도 하고, 교회 혹은 기도원을 만들어 복음방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최근은 전화를 활용한 복음방이 운영되고 있다. 매우 공격적인 복음방 포교 전략은 14만 4천 신자 확보와 포교에 따른 육신영생의 종교적 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25-07-0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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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집회
천도교
동학에 대한 탄압이 극을 달함에 제2교조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동학지도부는 삼례집회(1892년 11월)와 복합상소(1893년 2월)를 통해 교조신원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러나 오히려 탄압만 더욱 심할 뿐 아무 결실이 없자 해월 최시형은 각처에 발문하여 충청북도 보은 장내(帳內)로 도인들로 하여금 제회(齊會)케 하여 정부에 압력을 넣고자 하였다. 이에 13일부터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비롯해 강원도와 경기도 등 각지에서 장내로 속속 모여들어 도인 2만 3천여 명이 집결하니 해월 최시형은 대도소를 설치하고 각 포의 대접주로 하여금 포내를 통할케 하였다. 각 포에서는 포기(包旗)를 게양하고 일정한 대오(隊伍)를 정하 ...
2025-07-0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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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거
원불교
김대거는 11세에 원불교에 입문하고 16세에 출가하여 박중빈과 송규의 경륜과 포부를 받들어 실현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1962년에 정산종사가 열반하자 법통을 계승하여 2월 23일 49세에 종법사로 추대되었다. 김대거는 교도들의 법위향상을 위한 훈련강화 삼동윤리 실현을 위한 해외교화와 종교연합운동 전개를 강조했다. 또한 교화3대 목표운동(연원달기·교화단 불리기·연원교당 만들기)을 추진하여 원불교 교세를 2배 이상 신장시켰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한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하면서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1962년 10월 발표한 ‘신생활운동요강’은 새마을운동의 이념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
2025-06-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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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김처사법언록
오방불교
본 경전은 총 3권 1책이며 활자본으로 1923년 간행되었다. 제1권은 도교(道敎)·위인(爲人)·옥성(玉成)·정심(定心)·보은(報恩)·독신(篤信)·통서(統緖) 등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권은 덕행(德行)·효우(孝友)·수신(修身)·화복(禍福)·인과(因果)·도현(道現) 등 총 6장으로 되어 있다. 제3권은 오음(五音)·영신(永信)·예경(禮敬)·가도(歌蹈)·출처(出處)·입실(入室) 등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오방불교가 이운규(李雲圭)로부터 그의 아들인 부련(夫蓮)과 일수(一守) 등으로 이어지는 교단의 역사적 맥락을 다루면서 오방불교가 이운규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그 외에도 ...
2025-05-3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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