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018건
김호연
증산도
김호연(1897-1992)은 아주 어릴 적 증산 강일순의 사랑을 받으며 그의 천지공사에도 관여된 인물이다. 호연이 너댓 살 때부터 증산이 업고 다니며 귀여워하던 여자이다. ‘호연이를 상제님이 키웠다고 하대요 상제님이 바지 속에다 넣고 댕기고 똥 싸면 냇가에 가서 털고 빨고 그랬다고 하대요 우리 어머니가.’ ‘원평장에 가서 떡 사다 먹였다고 하대요. 호연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줬다고 하면 상제님이 사다 줬대요’(차봉수 증언). 또 증산이 출타할 때는 말에 태워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증산은 호연에게 선매숭자(仙媒崇子) 도수를 붙이기도 했다. 호연이 9세 되던해 125일간 수도를 시키고 후천인간 영성개벽의 모델로 ...
2025-07-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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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
미륵불교
김형렬(金亨烈 1862-1932)의 호는 태운(太雲)이다. 1862년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현 김제군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여 일찍이 한문사숙 선생을 지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서울을 향하여 진군할 때 청주 근처에서 강일순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1902년 4월에 도를 이룬 강일순을 다시 만나 그의 첫번째 종도가 되었다. 그 뒤부터 강일순은 형렬의 집에 머무르며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면서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주어 신명의 회산(會散)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 후 강일순이 사망할 때까지 그를 성심껏 시종하였으며 딸을 강일순에게 수부(首婦)로 ...
2025-06-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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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제화동대도
김형규는 1891년 3월 29일 경남 합천군 쌍벽면 안계리에서 출생했다. 27세때 보천교에 입교하여 치성 절차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보천교의 타락과 신풍운동이 일어나 대립된 양상을 보고 보천교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양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1947년 해인사에서 보화교 교주였던 김환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녁 치성 중 ‘백의초상관음불(白衣肖像觀音佛)’이란 소리가 크게 울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있는 부처가 바로 김환옥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김환옥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보화교에 입도하게 되었고 김환옥에게서 ‘대봉’이라는 호를 받게 된다. 1954년에 김환옥이 사망하고 1959년에 원평 보화교 ...
2025-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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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범
→무극대도교참조.
2025-06-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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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제
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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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단군교본부
김해경은 1950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에서 부친 재만(在萬)과 모친 윤금자(尹金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군복무 후에는 미용사 약탕기장사 물장사 인테리어 조경사업 등의 일을 했고 ‘목련의 향기’ 등 유행가 작사도 했다. 26세 되던 1975년 6월 어느 날 단군신령(檀君神靈)의 인도에 따라 아차산으로 이끌려 가 그곳에서 단군성령의 명에 따라 3일간 약수만 마시며 눕지도 자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2일째 되는 날 한 스님이 올라와서 홑이불과 옥수그릇을 주면서 정성드리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후 49일간 물만 마시며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를 시작하고 1주일째 되는 날 단군성령이 ...
2025-06-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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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
김일부의 생애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광산김씨경력공파족보(光山金氏經歷公派族譜)』 「대역서(大易序)」 가운데 ‘일부사실(一夫事實)’ 및 ‘일부사적(一夫事蹟)’ 그리고 김황현(金黃鉉) 등 김일부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과 김일부의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다. 김항은 1826년 순조 26년(丙戌) 10월(己亥) 28일(丙子)에 현재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서 탄생하였다. 가보와 연보를 근거로 하여 알아보면 김항은 26세 된 부친 김공(金公)과 23세 된 모친 서씨(徐氏)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그 후 계속하여 5세 연하인 동생(辛卯生 後에 崔泂奭에게 出家)과 10세 연하인 ...
2025-06-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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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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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순
천지대안도
김태순(金泰順 1927-?)은 1927년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금정리에서 탄생 18세에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고 독신으로 살았다. 27세 되던 해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중 부경순을 만나 찬물치료법으로 효험을 보고 본교에 입도 여러 제자 중 제일먼저 백일단식기도를 성공하고 부경순의 신임제자로 활동하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가 되었다. 그녀는 입교 후 수도에 성심성의를 다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 냉수목욕 후 기도생활을 하였으며 때로 단식기도와 생식기도를 계속하였다. 1954년 처음으로 100일 단식기도를 성공한 이래 그녀의 단식기도는 매년 계속되었고 1966년 4월에는 법질서를 세우기 위한 555일 생식 기도를 ...
2025-06-3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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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인
오방불교
김치인은 1855년 7월 19일(혹은 18일)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이다. 치인은 초명이며 개명은 광제(廣濟) 호는 광화(光華)이다. 1874년에 이운규(李雲圭)의 아들인 부련(夫蓮) 이용래(李龍來)를 만나 남학(南學)을 접하였고 그로부터 구령주 등을 전해 받아 1931년 3월 전북 완주군 고산에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였다. 김치인이 이운규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신뢰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때 그는 이후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는 하상역과 함께 수련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치인은 1888년 천지의 운행도수를 깨우치고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오방불교(五 ...
2025-06-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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