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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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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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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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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교

임무교(壬戊敎)를 창립한 김종렬(金鍾烈 1899-1966)은 1899년 8월 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종부리에서 김진국(金鎭國)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7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신앙하였고 이상호의 대법사(大法社)에도 적극 가담하여 중앙통제위원(中央統制委員) 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4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쌍룡리 자기 집에서 임무교를 창립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 사망했다. 증산 강일순을 옥황상제로 신앙하였고 특별한 독자적인 사상이나 주장은 없었다. 참고문헌 :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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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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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 환조교 선덕학회

김정희는 1944년에 출생하였으며 호는 달선(達仙)이다. 1982년 3월 신철호 등 21명과 함께 태백산 기도를 가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태백산 제천당에서 기도를 드렸으며 이후 신철호와 함께 마리천산 제천단에서 세계종교를 중창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1989년 세계종교를 창립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1995년 강화도 강화읍 신문리 175-2(갑곳)로 교단을 옮겨 교명을 ‘환조교(桓祖敎)’라고 하여 활동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단군마니숭조회의 창립자인 황우연과 손잡고 ‘선덕학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 ...

2025-06-3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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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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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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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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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황전

단황전의 창립자 김정숙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어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굴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불서기가 몸으로 내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게 된다. 그 뒤 그녀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점을 쳐주고 병을 치료해 주면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단황님께 제수를 올리고 천하통일을 위한 평화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1982년에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天人合發)을 위한 법시(法施: 천제)를 하였는데 이때 쌀 5백 가마니 소금 1천 가마니 등 2천여만 원에 상당하는 제물을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한다. 천인합발이 이루어졌으므로 앞으 ...

2025-06-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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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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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김재경은 호는 심전(心田) 혹은 마추(馬秋)라고 하며 불아신궁 창립 후 단제성조불아신궁총관법사 불아교화회지도위원장 미륵종단총본산 법상가본부대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원래 각세도 서관을 담당하던 신태제의 수제자로였다. 신태제가 이선평 사후 각세도남관에서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립할 때에도 그는 함께 하였다. 특히 그는 영통자로서 영을 통해 내리는 말을 받아 교주 신태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4년 정도교 일대옥사를 계기로 교주가 사망하게 된 후 김재경은 황덕시와 분열하게 되고 그는 각세도 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여 ‘ ...

2025-06-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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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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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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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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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단군국교

김일포는 1903년 전북 정읍군 정우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에는 보천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삼위신위(三位神位)의 위패를 자택에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에는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 위패의 중간에 모셔놓고 천제를 지냈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였으며 1948년에는 국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김일포는 1949년 5월 3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발생한 국민계몽회 주도의 유성갑(柳聖甲)의원 폭행사건에서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당시 국민계몽협회는 1949년 5월 24일 국회 ...

2025-06-3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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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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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이 창립한 화랑정신선양회에서는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고 홍익인간 사상을 널리 보급시키며 단군사상의 결정체인 화랑정신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화랑정신의 표상인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사업을 중시한다. 따라서 본회에서 설립한 사당인 홍덕전 안에는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춘계대제(3월 27일)와 추계대제(9월 27일) 김유신장군 탄일(10월 5일) 등에 향례를 올린다. 춘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이 단석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비법을 얻었고 그 후 석실에서 7년간 고행하여 대각한 날을 기리기 위함이고 추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추계향배라는 점에서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행하고 ...

2025-06-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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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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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의 창종자 혜선(慧宣) 김운운(金云雲)은 1904년 10월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를 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보내다가 1934년경 불문에 귀의한다. 1939년 신행회 본화회(本化會) 등을 만들어 법화운동을 펼쳤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친형인 김정운(金正雲)과 함께 대승불교법화회를 창설하였다. 1946년 2월 대승불교법화종을 창종하고 교령으로 추대되었다. 1960년 8월 13일 종단명을 한국불교법화종으로 개칭하고 재단법인 한국불교법화종유지재단을 설립하였다. 한국불교법화종은 1999년 한국불교법화본종으로 종단명이 다시 변경된다. → 한국불교법화본종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 ...

2025-06-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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