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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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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대도소는 동학에서 1893년 교조신원운동 이전에 교단조직으로 출발하였으나 동학혁명 시기에는 집강소(執綱所)의 일반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조직의 성격을 지녔다. 동학의 조직은 교도들의 무리를 포(包:布)라 하고 그 모이는 곳을 접(接)이라 했다. 여기의 우두머리를 대접주(大接主)라 하였으며 그 아래 수접주(首接主) ․ 접주(接主)를 두었다. 교도들이 집중되어 있는 각 고을 마다 접을 설치하였는데 이를 대도소라 하였다. 최시형이 대도소를 설치한 사실은 전국에 걸쳐 동학의 교세가 커졌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처음에는 접의 다른 호칭이었다. 그러다가 동학혁명 시기 집강소 설치 이후에는 대도소가 접의 상급기관으로 역할 했던 것 같다 ...

2025-07-0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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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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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파

1987년 ‘기독교남침례회’라는 이름으로 베뢰아파라는 종파를 창시한 인물. 생애 및 활동 : 그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예산 감리교회에 출석하여 기독교신앙에 입문하게 되며 평신도 부흥사로 1963년 예산 근처의 비봉교회에서 목회 책임을 맡았다. 이후 1969년 11월 30일 개척교인 7명과 함께 성락교회를 설립하고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게 된다. 1973년에는 베뢰아 아카데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신학생 토요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모임은 1978년에 베뢰아아카데미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김기동 목사 자신이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

2025-06-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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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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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용이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무교회주의를 역설하며 귀국한 후 1925년에 잡지 『천래지성』(天來之聲)을 창간하고 의식이나 전례 그리고 교회건물 등의 교회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성서만을 강조하고 구원은 신앙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천래지성』은 4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간되고 1929년에는 『영과 진리』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그는 줄곧 신앙은 복음적이며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사람 자신의 교회이어야 함을 역설하며 새로운 교회의 창설이 시급하다고 선언하며 1935년 2월 ‘기독교조선복음교회’(基督敎朝鮮福音敎會)라고 이름 짓고 최태용 자신이 초 ...

2025-06-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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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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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거리·군웅장수거리·장수굿·놋동이굿’이라고도 한다. 군웅은 ‘구능’·‘구릉(丘陵)’·‘군웅(軍雄)’이라고도 표기되며 제액(除厄:재앙을 막음)·수호(守護)의 기능을 한다. 군웅신의 성격은 확실하지 않으나 서울·경기지방에서는 길 특히 뱃길의 신이라고 하는가 하면 씨조신(氏祖神)·가업수호신(家業守護神)이라고도 한다. 경상도 및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장군신의 하나로 인식되며 이 굿에서 가축의 번식을 빈다고도 한다. 『무당내력 (巫堂來歷)』에 의하면 “명대(明代)에는 사신이 수로를 이용하여 왕래하였기 때문에 사신의 출발 때마다 모화관(慕華館) 밖 사신서낭당(使臣城隍堂)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굿을 행하였다. 그 때부터 ...

2025-06-0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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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단군성전천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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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단군성전천진전은 1945년 해방 후 대구시민들이 안호상을 중심으로 달성공원 내에 있던 신사(神社)에 단군영정을 모시고 ‘국조전’이라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66년 공원 복원공사로 인해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에 건물을 짓고 단군영정을 모셔와 ‘국조단군성전천진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979년부터 대구시 노인회장을 지낸 이우백이 관리하였고 1980년에는 장병규·김병옥 등이 훼손된 천진전을 사재로 수리하고 안호상·김재완을 비롯한 대구의 기관장들이 주관하여 홍익인간 숭조사상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다. 1981년에는 안호상의 주선으로 단군동상을 조성하고 봉안식을 거행하였고 이후 조직적인 관리와 활동을 위해 회장 제도를 ...

2025-06-0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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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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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공부(工夫)’는 종단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고유한 행사이자 특수한 의미를 가진 수도의 주요 항목이다. 『전경』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공부는 하나의 의례적인 특성을 지니며 또한 목적달성과 직결되어 있는 가치 지향적 활동 그 자체를 말한다. 종교의례로 보면 일정한 장소에서 지정된 방법으로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주문을 송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실천적인 활동을 말하고 있다. 『전경』에 의하면 이러한 공부는 조정산 도주의 시대에 이미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형이 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주께서 이해 十一월에 도인들의 수도공부의 설석을 명령하고 공부는 시학(侍學) 시법(侍法)으로 구분 ...

2025-05-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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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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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전도관(천부교)가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은 규모가 작지 않으며, 지금까지 전도관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 전도관 신앙자들에게 신앙촌 제품(한일물산 제품)을 소비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신앙생활이었다. 전도관 초기에는 주로 행상을 했지만, 현재는 여자 신도들이 전국에 시온센타를 통한 체인망의 소비조합 형태로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6·25이후 형성된 기독교계 여러 신종교들은 이와 같이 종교와 경제가 결합된 생활공동체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2025-10-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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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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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교(太極敎)는 공자를 숭배하고 유교정신을 이어받아 도법예의(道法禮儀) 생활의 실천을 교지로 송병화(宋炳華)가 창립하였다. 태극교는 창립 당시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었지만, 함경북도에 설치한 성진지부·길주군지부·함경북도총지부와 함경남도의 단천지부만 교세를 유지하였다. 태극교 입교자는 봄·가을에 개최되는 공자제(孔子祭)에 참석하여야 하며, 이날 강회(講會)에서 한문 실력을 시험하여 성적이 우수한 자는 교단 임원인 유사(有司) 또는 도유사(都有司)로 임명되었다. 또한 1년마다 열리는 임원선거총회에서는 교단 발전에 공이 있거나 덕망이 있는 사람을 뽑아 교장(敎長)·장의(掌議)·도유사·교감(敎監) 등에 임명하였다. 당시 태극 ...

2025-10-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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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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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종교인들은 조선의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항일 활동을 벌이거나 조선의 근대화를 준비하는 활동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말엽에 가게 되면 조선총독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본인의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건, 일제의 조선 지배와 아시아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종교인들이 등장하였다. 불교와 유교 등 전통종교들이나 천도교와 같은 이른바 민족종교들에 속한 종교인 가운데에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인종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여 백인종 중심의 세계사를 반대하고 대아시아주의를 부르짖음으로써 일제의 논리에 동화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또한 개신교 진영에서도 1930년대 교단 개혁 문제와 함께 ...

2025-10-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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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척지다’는 서로 원한을 품게 되다, ‘척짓다’는 서로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원래는 척(隻)이었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 민사와 관련된 소송이 벌어질 때 피고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소송을 걸어 싸우게 되면 서로 원망하는 사이가 되므로 원수지간이 된다는 뜻으로 발전하면서 척(戚: 慼)으로 되었다. 증산 강일순은 척(慼)·척신(慼神)에 대한 많은 교설을 하고 있다.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온다.’, ‘대장이 삼군을 통솔하여 적진에 쳐들어감이 장쾌하고 영귀하다 할지라도 인명을 사지에 몰고 많은 ...

2025-10-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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