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

김광화

|

오방불교

오방불교의 창시자

2025-06-30 15:33

0

김광영

|

삼천일지개태도광사

김광영은 1883년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세에 연산군 천호리의 유씨 집안에 출가하였다. 천호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립했다고 하는 개태사의 절터가 있었는데 김광영은 43세 되던 1926년에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계시에 의해 개태사 터에 묻혀있는 석불 세 구를 발굴하였다. 이듬해에는 남편의 도움으로 매몰되었던 석불을 원래 위치에 복구하고 불당을 지어 자신이 주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가 주문을 외우고 안수(按手)를 하면 사람들의 질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녀를 도인으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45년 해방 후 김광영은 신도들을 모아 용화회를 조직하고 본전에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 ...

2025-06-30 15:32

0

김광선

|

김광선은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7세 때는 음양복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12세 연하인 박중빈과 의형제를 맺고 수도정진하는 박중빈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16년 4월 박중빈이 26세로 대각(大覺)을 얻자 첫 제자가 되었다.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한 그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받은 3천여원의 채권증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그는 박중빈이 경륜을 펴는데 대소사의 모든 일을 함께 했는데 당시 불러주는 글과 시가(詩歌)를 받아 적어 편집한 것이 《법의대전(法義大全)》ㆍ《백일소(白日蕭)》ㆍ《심적편(心迹篇)》 등으로 그 일부가 《대종경》 전망품 1장 등에 전한다. 1917년(원기2)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 태방(兌方 ...

2025-06-30 15:31

0

김계주

|

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을 창립한 김계주(金桂朱 1896-1950 호 洪原)는 1896년 9월 2일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신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공부를 시작했고 17세시부터 경신사상(敬神思想)에 몰두 국왕산에 올라가 산제와 불공생활을 계속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다가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풍암리 운리동에 장소를 옮겨 더욱 수도에 정진하던 중 무성제군戊聖帝君: 甑山)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42년 9월 9일이었다. 이후 교명을 무교(戊敎)라 하고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곧 잘 예언도 했다. 1946년 교명을 무을교(戊乙敎) ...

2025-06-30 15:29

0

김경학

|

증산교

김경학(金京學 1862-1947 본명 演相 호는 市隱)은 1862년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김형태와 모친 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종도가 되고 그의 천지공사에 적극 참여했다. 증산이 백암리 그의 집에 있을 때 ‘물 한 그릇 떠오라’ 하여 그 물을 문 밖에 품었다. 이때 경상도 해인사에 큰 불이 났었는데 그것을 껐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대순전경』·『전경』·『증산도도전』등에는 김경학에 대한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 또한 김경학은 1920년 순천도를 창립한 장기준이 개학치성(開學致誠)을 드릴 때 그 법식에 참여 그의 연원이 되어 장기준에게 증산의 도를 전하기도 했다. 집안이 부유하여 그의 큰형은 2천 ...

2025-06-30 15:28

0

김개남

|

동학

1890년경에 동학에 입도한 후 1891년부터 태인 동학의 중심인물로 활동했으며 1893년 초 보은집회 무렵에는 태인대접주의 위치에 올랐다. 1894년 초 전봉준이 선봉에 서서 고부민란(古阜民亂)을 일으키자 손화중과 함께 동학군을 일으켜 4월에는 백산(白山)에 동학운동 본부인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설치하고 전봉준을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한 뒤 총관령(總管領) 직을 맡았다. 참고문헌 : 「김개남과 동학농민전쟁」 (이진영「한국근현대사연구」 2 1995)

2025-06-30 15:26

0

김갑조

|

갱정유도

김갑조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의 불우한 환경에서 광의국민학교와 구례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갱정유도에 입도하고 1951년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1954년 이른바 ‘대화중흥국(大和中興國)’ 사건으로 강대성이 사망한 뒤 교단 내부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시기에 김갑조는 순천시 장천동 오봉산 아래 자신의 집에서 첫 번째 15일 수련을 하였고 좀 더 조용한 순천시 용수동으로 수련장소를 옮겨 몇 차례 더 수련을 하였다. 그리고 1957년에는 광양군 백운산으로 입산하여 영대암(靈大庵)이라는 암자 터에 움집을 짓고 100일 수련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58년 2월 24일(음) 새벽에 갑자기 마당에 나와 동쪽을 ...

2025-06-30 15:25

0

김갑열

|

대한불교법화종

1946년 5월 10일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하고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하는 법화도량 무량사(無量寺)를 서울 성북동에 창건하였고 대한불교법화종을 창종한 인물이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15:23

0

김가기

|

도교

자는 사원(士元) 호는 일구당(一丘堂)으로 통일신라 문성왕 때 사람이다. 신라의 숙위학생(宿衛學生)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신라로 귀국하지 않고 당나라에서 벼슬하여 화주참군(華洲參軍)과 장안위(長安慰)를 지냈다. 일찍이 신선술(神仙術)을 익혀서 중국에서 이름이 높았다. 본래 그는 성품이 고요하고 도(道)를 탐구하기 좋아하여 종남산(終南山) 자오곡(子午谷)에 살면서 선경(仙經)과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복기법(服氣法)을 수련하였다. 858년 갑자기 소(疏)를 올려 자기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이듬해 2월 15일에 승천(昇天)할 것이라 하므로 당나라 선종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과연 그 ...

2025-06-30 15:22

0

길상화

|

길상도(吉祥圖)라고도 한다. 생일 축수용이나 세화(歲畵) 등의 선물용 병풍 그림 등의 장식용으로 많이 그려졌다. 연꽃 모란 작약 국화 당초 초화(草花) 등의 꽃이 널리 애용되었고 화조(花鳥)와 동물 어해(魚蟹) 식물 등의 화목(畵目)도 대부분 길상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산수나 신선도(神仙圖)를 비롯한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도 길상도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고분벽화 공예화 등에 각종 영수(靈獸)와 서화(瑞花)가 길상의 소재로서 다루어지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 출현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진 민화류들은 거의 대부분이 길상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2025-06-30 15:20

0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