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주
국제도덕협회(일관도)
국제도덕협회(일관도)에서 구도를 한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수행을 쌓아 청구계(淸口戒)를 올린 사람을 단주라고 부른다. 법단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불규를 철저히 지키고 법단 내의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참고문헌 : 국제도덕협회(일관도) 홈페이지(http://www.ilgwando.org/)
2025-07-02 00:41
12
단군숭봉회
선불유야각의 창립자 계월주는 근대 이후 신종교 중 각세도계 증산계 단군계 등의 교단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군계 신종교인 무법대의 창립자 김구연과 만나 각세도남관에는 원방각단군탑을 세웠으며 1966년에는 증산교계 인물인 성조영을 만나 선불유야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녀는 1967년 증산교계 교단인 정읍의 진동학제화교와 연합하여 단군숭봉회를 세웠다. 따라서 단군숭봉회는 단군계 신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성격면에서 증산계와 관련성도 밀접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8
12
남익순
대한불교천태종
남익순(南益淳)은 1925년 음력 12월 5일 충북 단양의 소백산 구봉팔문(九峰八門) 아래 여의생(如意生)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양양 남씨로 아버지 명진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의 독자였다. 법명은 대충(大忠)이다. 21세에 대한불교천태종의 창종자 상월 박준동(1911-1974)을 은사로 출가한다. 그는 박준동의 상수제자로서 스승을 지성으로 공경하고 시봉하는 한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투철하게 수행하여 1960년 36세 되던 해 박준동으로부터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인증을 받는다. 또한 1967년 동안거 때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는다. 1974년 7월 2일 박준동에 이어 대한불교 천태종의 제2대 종정에 취임한다. ...
2025-07-01 01:25
12
나정련
대종교
나정련은 1882년 9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염재(念齋).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가업에 종사하다가 1905년 경성 초동으로 이사하였다. 1910년 부친이 대종교를 중광하자 입교하였고 부친을 시봉하였다. 1911년 영계(靈戒)와 참교(參敎)를 받았다. 1914년 만주 연길현 의란구로 이주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6년 지교(知敎)를 받았다. 1920년에는 구룡(九龍)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1941년에는 당시 대종교총본사가 있던 옛 발해수도 영안현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했으며 경의원 참의(參議)에 피임되었다. 1942년 ...
2025-07-01 00:42
12
김지한
개천경조회
김지한은 1934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옥곡동에서 출생하였다. 개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무역대학원을 수료하였으나 일찍부터 기(氣) 수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새한국문화교육원’이라는 수련도장을 열고 회원을 모아 수련을 시키며 기를 통한 질병치료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 민족이 지나치게 외래사상에 물들어가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단군신앙과 사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83년에 대구시 서구 평리에서 개천경조회를 설립하였다. 1997년에는 교단을 대구시 북구 조야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신도들에게 단전호흡에 의한 기수련과 실천조항 등을 가르쳤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행보를 보였는데 한국국사찾기 ...
2025-06-30 23:34
12
김준
대종교
인물
2025-06-30 23:33
12
김일포
천조단군국교
김일포는 1903년 전북 정읍군 정우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에는 보천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삼위신위(三位神位)의 위패를 자택에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에는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 위패의 중간에 모셔놓고 천제를 지냈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였으며 1948년에는 국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김일포는 1949년 5월 3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발생한 국민계몽회 주도의 유성갑(柳聖甲)의원 폭행사건에서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당시 국민계몽협회는 1949년 5월 24일 국회 ...
2025-06-30 23:18
12
김병철
증산법종교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 2대 교주(초대회장)인 김병철(金炳徹 1905-1970 호 鳩岩)은 1905년 12월 3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철제의 무극도에 입도하여 수도해온 수도인 이다. 1937년 9월 이리시 목천포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강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증산의 도를 이어갈 동지로 결의하고 함께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다가 1941년 11월 전주 노송동에 포교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경상도 의성 장곡대로 이전했으며 1945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구릿골로 다시 1949년에는 금사면 오리알터로 본부를 옮겨 다니며 강순임을 도와 증산법종교를 발전시켰다. 195 ...
2025-06-30 16:00
12
김기동
베뢰아파
1987년 ‘기독교남침례회’라는 이름으로 베뢰아파라는 종파를 창시한 인물. 생애 및 활동 : 그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예산 감리교회에 출석하여 기독교신앙에 입문하게 되며 평신도 부흥사로 1963년 예산 근처의 비봉교회에서 목회 책임을 맡았다. 이후 1969년 11월 30일 개척교인 7명과 함께 성락교회를 설립하고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게 된다. 1973년에는 베뢰아 아카데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신학생 토요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모임은 1978년에 베뢰아아카데미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김기동 목사 자신이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
2025-06-30 15:40
12
기자교
한태리는 서울에 있던 기자교(언제 누가 창립했는지 알 수 없음)의 황해도 지부장에 임명되어 황해도 해주군 대차면 수동리에 지부를 설치하고 신도 5백 명을 얻게 되었는데 서울의 기자교가 소멸되자 이곳이 기자교 본부가 된 것이다. 기자교의 교지는 기자를 숭상하여 덕화를 받는 다는데 있었다. 신도들은 음력 매월 1일과 15일을 예배일 정하여 기자전(성전)에 모여 예배를 한다.
2025-06-30 01:18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