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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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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를 창립한 전주이씨[保護盛女]는 1885년 전북 남원시 요촌동에서 태어나 혼인하고 그곳 솔개바위 위에서 득남하기 위하여 요천천의 용왕에게 1개월에 3회(1회 3일간)씩 10년간을 기도드렸다. 이후 득남을 하여 용왕의 영감을 받아 창해수교를 창교했다고 한다. 김현덕(용화할머니, 1892~1980)은 창교자 이씨의 손녀로써 24세시에 입교한 이래 3대교주가 되었으며, 1935년경에 전주시 덕진으로 이전하였다. 그녀는 교주가 된 이후 20여 년간 구도 끝에 용왕의 현몽으로 덕진 연못가에 법당인 천문각(天門閣)을 지었다. 덕진 연못에 사람이 너무 많이 빠져죽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이 집을 지었고 그 뒤로는 신통하게도 ...

2025-10-1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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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인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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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인암파(甑山敎仁菴派)를 창립한 박공우(朴公又, 1876~1940, 仁菴)는 1876년 태어났다. 고창에서 기독교를 믿었고, 동학에 들어가 열성 있는 신도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강일순을 만나 그의 수제자 중 한사람이 되고 강일순의 천지공사에 적극 협력하였다. 『대순전경』에는 박공우에 대한 기록이 5~6차례 나타나 있다. 1909년 강일순이 사망하고 난후 김경학이 상제에게 치성을 올려 큰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청수를 올리고 자기에게도 기운을 내려 줄 것을 증산상제에게 기원하여 신력(神力)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4년 전라북도 정읍군 흥덕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신도수가 많을 때는 200명이 넘 ...

2025-10-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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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왕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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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왕양이는 일왕의 고대적 권위를 복원하려던 ‘천황숭배’관념과 일본과 통상을 요구하던 외세를 배격하고자 한 양이론(攘夷論)이 결합된 사상이다. 본래 춘추시대 주왕(周王)을 천자로 받들고 사방 이민족들을 물리쳐 중원의 평화와 질서를 수호한다는 패자의 표어였는데, 막번(幕藩)체제의 모순이 첨예화하고 외세의 압력으로 외국과의 통상이 불가피해진 에도 말기 국학자들이 이를 유용하여 존왕론과 양이론을 결합하는 사상조류를 형성하였다. 1857년 막부의 고위 관료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천황의 칙허도 없이 1858년 미국 등 여러 나라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자, 천황을 지지하고 외세를 배격한다는 ‘존왕양이’를 슬로건으로 규합한 막부 ...

2025-10-0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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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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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잡지 『제일선(第一線)』은 1931년 5월 20일 창간하여 1933년 3월 15일 종간하였다. 크기는 4·6배판, 쪽수는 130쪽 안팎으로 판매가는 32전이었다. 당시 편집 및 발행인은 차상찬이 맡았고, 월간종합지의 성격으로서 종합잡지 『혜성(彗星)』에서 『제일선(第一線)』으로 이름을 바꾸어 펴낸 것이다. 『제일선』은 창간호 권두언에서 “대중과 한가지로 제일선에 나서서 그 여론을 위하여, 문화의 계몽과 향상을 위하여, 그리고 특히 침체된 문예의 진흥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려 하는 바”라고 하여 그 발행 목적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일제의 언론탄압의 가중 속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려웠고, 잦은 검열에 걸려 수준 있는 ...

2025-10-0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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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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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제왕운기』는 상·하 2권 1책으로, 1287년(충렬왕 13)에 출간되었고, 1360년(공민왕 9)과 1413년(태종 13)에 각각 중간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려는 무신의 난과 30여 년간에 걸친 몽고와의 항쟁으로 왕권이 약화되어가고 있었고, 정치기강마저 해이해지던 때에 이승휴는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제왕운기』를 저술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의 상권에는 중국 역사를 삼황오제(三皇五帝), 하(夏)·은(殷)·주(周)의 3대와 진(秦)·한(漢) 등을 거쳐 원(元)의 흥기에 이르기까지 칠언고시 264구로 읊어놓았고, 하권은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내용으로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 ...

2025-10-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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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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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미륵불교

태인미륵불교(泰仁彌勒佛敎)를 창립한 정인표(鄭寅杓, 1897~1955, 호 秀山)는 1897년 12월 23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석가 멸후 3천년이 지나면 미륵불이 출세한다는 말을 듣고 도통입명(道通立命)의 뜻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간중리 미륵산 산제당에 들어가 제단을 마련하고 오주(五呪) 주문을 외우며 치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정성으로 치성을 시작한지 3일 만인 1934년 1월 10일 이른 아침 그는 오주지음(五呪之音)으로 본체를 체득하고 선관으로부터 도통을 계시 받아 후세의 당래불인 미륵불의 성령이 자기에게 의부되어 자신은 인불(人佛)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

2025-10-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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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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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는 오랜 종교전쟁을 겪은 서유럽에서 16, 17세기에 형성된 원리로,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하여 권력과 종교를 결부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국가는 국민의 현세적 공적 생활에만 관여하고 국민 내면의 사적 신앙생활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종교단체도 정치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서구적 근대성에 기반을 둔 많은 현대국가들이 이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헌법 제20조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로 정교분리는 현실에 대한 종교적 관심을 차단하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가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한 정치성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

2025-10-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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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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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1915년 송도한영서원에 입학한 뒤 민족의식에 눈떴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뒤 1923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을 했고, 그로 인해 거의 3년여에 걸친 옥살이를 하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1916년 기독교 신앙의 세계로 들어갔고, 1919년 6월 4일 송봉애(宋鳳愛)와 결혼했다. 그 뒤 큰아들 영철(永哲)을 포함해 모두 오남매를 두었으나 영철을 제외한 넷은 일찍 사망했다. 이용도는 주체적 종교성에 입각해 자주적 삶을 살아가려면 기독교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서 1924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그가 본 것은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던 미국 선교사들의 친일적 행보 ...

2025-10-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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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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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 일하다가 경찰 생활에 회의를 느껴 사표를 내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차경석은 그가 건의 하는 대로 많은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고 보천교가 문을 닫게 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대법사 조직에 참여했고, 1954년 총무직을 맡아 일했다. 대법사에서 나온 그는 1959년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하게 되었다. 100간부조직에 착수하여 ...

2025-10-0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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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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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은 1978년에 고향 통일교회에 입교하였다. 통일교회의 기관인 국제승공연합의 강사로서 2년간 활동하다가 1980년 3월에 통일교회를 떠났다. 그는 서울 신촌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서 정명석, 안구현, 김형만, 김기희, 서인순 등 ‘신촌 5형제’를 중심으로 『애천 교회』를 조직하였다. 1983년 11월 26일에 예수교대한감리회에서 핵심 간부들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들은 대학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여 포교활동을 벌였다. 초신자는 2-4주일간 정명석이 만든 『30개론』을 교육받고서 문답 시험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통과하면 MS회원(애천교회 교인)이 된다. 정명석이 쓴 30개론은 통일교회 교리를 많이 인용하고 있고 ...

2025-10-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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