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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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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트라의 본래 의미는 ‘문자’ ‘어휘’ 등의 뜻으로 종교적인 찬가 제사를 지낼 때 낭송하는 제사(祭詞)등을 뜻한다. 요가학파에서는 음성에 의한 수행법 곧 옴(aum)을 염송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주문을 부정하는 원시불교와 달리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긍정하는데 이때 주문을 만트라라고 한다. 만트라는 부처를 상징하는 문자나 찬탄하는 말 기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밀교에서 교리 및 수행체계 전반에서 진언이 강조되고 있는데 특히 진각종 진언종 총지종 등의 밀교계 신흥 불교종단은 그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 『밀교대사전』(밀교대사전재간행위원회 1969) 『가산불교대사림』(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2025-07-0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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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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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조선인의 이주로, 20세기의 만주 지역에는 다양한 종교 단체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 조선의 신종교로는 천도교(天道敎)·대종교(大倧敎)·원종교(元倧敎)·시천교(侍天敎)·청림교(靑林敎)·제우교(濟愚敎) 등이 있었다. 천도교는 1880년대에 천도교인의 이주로 전파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시기에 일진회가 벌인 활동도 천도교가 만주로 전파되는 계기가 였다. 1905년 12월에 출교된 이용구(李容九)등이 1906년에 시천교를 설립하면서 만주 지역의 천도교인도 분리되었다. 그 후, 천도교는 1906년에 연길현에 북간도교구를 설립하였고, 이후 교구를 확대하였다. 동시에 한명의숙, 동흥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재만한인의 구심점 ...

2025-07-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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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리쉬경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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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리쉬 마헤시는 초월명상(TM)을 서구에 널리 보급한 요기이다. 그는 인간의 몸에 본래 타고난 자연치유력이 존재하며 고대로부터 전해온 기법을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신체의 자연치유력이 활성화되면 내면의 행복과 평화를 누릴 뿐 아니라 뇌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초월명상 기법을 서구에 소개했다. 마하리쉬 초월명상의 의식기반 교육법을 토대로 1973년 캘리포니아에 마하리쉬국제대학교(MIU)가 설립되었다. 이후 1974년 아이오와주의 페어필드로 이전하여 1995년에는 마하리쉬경영대학교(Maharishi University of Management)로 명칭을 바꾸었다. 마하리쉬경영대학교에서는 인 ...

2025-07-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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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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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종교학 특히 원불교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종교학자 사상가.

2025-07-0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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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사전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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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를 비롯한 조선의 예제가 중국의 속국으로서 치르는 예의절차에 기반하고 있어 독립국가가 된 대한제국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이에 맞도록 『대한예전』을 새로이 편찬하여 독립국가와 황제의 위상에 부합하는 사전체제로 정비하였다. 『대한예전』에서는 왕·왕비·왕대비·왕세자 등을 황제·황후·황태후·황태자 등으로 고치고 근정전(勤政殿)을 태극전으로 전(箋)을 표(表)로 교서(敎書)를 조서(詔書)로 재계(齋戒)를 서계(誓戒)로 즉위식 의장과 관복에 있어서도 조선보다 크고 화려하게 황제의 위의를 갖추게 하었다. 국서의 형식도 속국의 임금으로 대국을 예우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형식을 제정하였으며 중국 ...

2025-07-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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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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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가 1942년에 전라남도 광산군동에서 창립한 증산계 신종교.

2025-07-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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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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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중빈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 추모 비석. 제명(題銘)은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竝序)’이다. 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과 구분하여 ‘성비’로 불린다.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안쪽의 대종사성탑 동남쪽에 위치하며 제1대 성업봉찬사업의 일환으로 1953년(원기38) 4월 26일 세워졌다. 성비의 총 높이는 583.7cm인데 전통비석과 마찬가지로 지대석(地臺石)을 포함한 기단부(基壇部)와 비신(碑身) 그리고 비갓(碑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기단부는 총 5단으로 제1단의 지대석 위에 제2단의 하대 제3단의 중대 제4단의 상대 제5단은 비신을 받는 수화(受花)이다. 성비의 비신 4면에 음각된 비 ...

2025-07-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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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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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성은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대전으로 이사하여 한약종상을 운영하면서도 친구였던 현시동(玄始東)과 더불어 대종교 중진 강용구(姜容九)를 빈번히 만나다가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그는 대전 시내에 거주하는 이필수(李弼秀)라는 사람이 대종교인도 아니면서 국조를 숭배하는 뜻으로 자신의 집 벽장에 단군의 영상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되어 1955년 사재와 동지들의 원조를 합하여 2층의 전각을 세우고 윗층에 천단(天壇)을 만들어 천진(天眞)을 모시고 아래층은 자신의 주택으로 하였다. 처음에는 대종교충남도본사의 간판을 걸고 있었으나 이민우(李敏雨)라는 도인을 본 단군전의 지도자로 받들면서 그가 신계(神啓)에 의 ...

2025-07-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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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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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단군에 대한 종교적 신앙은 김염백(金廉白)에 의한 대신교(大神敎)와 백봉(白峯)에 의한 단군교의 두 가지 갈래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대종교(大倧敎)에서는 1904년 백봉에 의한 단군교 포명이 근대기 가장 이른 단군신앙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보다 10년 앞선 김염백의 대신교가 최초라고 보기도 한다. 김염백은 평안남도 맹산(孟山)을 중심으로 단군신앙을 포교했으며 이후 백두산과 만주 길림성 일대에서는 백봉과 백전(伯佺)을 중심으로 한 33명이 단군교를 포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염백의 대신교가 단군교보다 15년 앞서서 단군신앙을 포교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대신교는 국조단군을 주신(主神)으 ...

2025-07-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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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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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대보송(大寶頌)은 이선평이 16세에 큰 공부를 하고자 중국으로 건너가려 할 때 평안도 순안군 적리 암치내라는 곳에서 머물던 중 허공에 ‘천하대보정진무외(天下大寶正眞無外) 무궁조화각재자기(無窮造化各在自己)’라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내용은 천하의 큰 보배는 정진 외에 따로 없으며 무궁한 조화가 모두 각각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선평은 이 주문을 받고 크게 깨친 바가 있어 중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구월산으로 들어가 수행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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