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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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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는 상(象)과 수(數)와 이(理)의 세 가지가 내재되어 있다. 『주역』의 괘상(卦象)과 수리(數理)를 중시하여 연구하는 방법이 상수학에 속한다. 상수학은 『주역』에서 “성인이 상(象)을 세워 뜻을 다한다.”라고 말한 것이나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상을 정한다.”하는 등 상수적 입장을 강조한 것에서 연원한다. 상수학은 이후 시대를 거치며 체계화되었다. 한 대에는 상수학이 자연철학을 중시하면서 괘기설과 재이설이 강조되었고 송대에는 새로운 관점에서 철학성을 부여하면서 체계화하고 심화시켰다. 상수학은 상과 수를 사용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도·낙서나 64괘등을 비롯한 각종 도상(圖象)과 연결되었다.

2025-07-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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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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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립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숙부 김봉남을 따라 기장에 숙부가 지도하는 수련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그는 물법수련을 하면서도 불교에도 흥미를 가져 범어사에서 백일수도를 마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봉남의 물법신앙까지도 불교적인 면에서 이해하였다. 1950년 김봉남이 사망하자 경상남도 김해 대동면 수안리에 이사하여 봉남의 영위를 봉안하고 있으면서 봉남교단 설치운동에 앞장섰다. 1953년 봉남교를 불교적인 면에서 포교하기로 뜻을 세우고 부산 아미동에 강기춘과 함께 용화사라는 간판을 걸고 총무직을 맡았 ...

2025-07-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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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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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신천지 신앙자를 위한 첫 교육 장소가 복음방이다. 교육이 가능한 어떤 형태의 장소도 복음방으로 활용된다. 심지어 기성 교회의 특정 공간을 활용하기도 하고, 교회 혹은 기도원을 만들어 복음방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최근은 전화를 활용한 복음방이 운영되고 있다. 매우 공격적인 복음방 포교 전략은 14만 4천 신자 확보와 포교에 따른 육신영생의 종교적 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25-07-0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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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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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법사라는 용어는 본래 불교의 승려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즉 독경(讀經)의 전승이 우세한 충청도와 강원도 일대에서는 법사를 경객(經客) 정각 등으로도 불렀는데 천한 칭호라 하여 불교에서 쓰는 법사라는 말을 차용하였다.

2025-07-0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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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내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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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내사클럽은 현재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1996년 1월 취산을 주축으로 대덕 연구단지의 일부 과학자들과 의식개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설립하였다. 미내사 창립에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 단체가 기존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비판하고 문명전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신과학을 주창하고 있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신과학’(New Science)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형성된 ‘뉴에이지 과학’(New Age Science)에서 따온 용어로 뉴에이지의 문명비판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즉 신과학 추종자들은 현대 사회의 문제가 서구 근대 과학의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심신이원론적 분석주의적 기계주의적 사고체계에서 기 ...

2025-07-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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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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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문공신파

증산교문공신파(甑山敎文公信派)를 창립한 文公信(1879-1954 호 瀛祥)은 1879년 7월 13일 전라북도 정읍군 계동(태인면 궁사리라는 설도 있음)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용남(用南)이요 커서는 공신이라 했다. 증산 강일순의 종도가 된 후로 증산으로부터 영상이란 호를 받았다. 그는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았고 동학에 가담하여 흥덕과 부안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06년 증산을 만나 종도가 되었다. 문공신은 증산의 종도가 된 후로 400여석 하던 재산을 모두 증산의 수종을 드는데 썼다고 한다. 특히 증산의 천지공사에 적극협력 하였다. 증산이 1909년에 사망하자 그는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덕 ...

2025-07-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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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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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은 태을교를 신봉하다가 태을교의 중요간부가 자기의 사복을 채우는데에 실망하여 태을교를 탈교 동지들과 함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교리에서 삼신교라는 교명으로 새로운 종교를 창립했다. 1927년에 교명을 대세교로 바꾸고 열심히 포교한 결과 1928년에는 1천2백여명의 신자로 크게 불어났다. 그러나 1929년 교주 강훈과 중요간부의 사망으로 교세가 갑자기 쇠퇴하였다. 이 교는 유불선(儒佛仙) 삼교사상에 입각하여 우리 고유의 도덕을 존중하며 인륜을 밝히고 양민의 양성과 개인의 행복을 꾀하는 교지로 되어있었다. 참고문헌 : 村山智順 『朝鮮의 類似宗敎』 朝鮮總督府 1935.

2025-07-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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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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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으로 경상북도 울진에서 출생했다.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1509년~1571년 설과 1501년~1571년 설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가까이 하며 몸소 실천하였다. 1564년(명종 19년)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사직서(社稷署) 참봉(參奉)에 제수되었고 말년에는 종6품인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를 지냈다. 역학(易學)·천문(天文)·풍수(風水)·복서(卜筮)·관상(觀相) 등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며 도술을 부리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그의 신이(神異)한 행적에 대한 설화가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동야휘집(東野彙輯)』· ...

2025-07-0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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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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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등대

김백문의 1917년 양력 10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 448번지에서 김광조와 문아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령파였던 김남조 여인를 만나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남주와 인연이 되었다. 백남주를 보필하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남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같이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백문은 1937년과 1946년에 걸쳐 두 번의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193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신비체험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고 1946년의 체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

2025-06-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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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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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김경학(金京學 1862-1947 본명 演相 호는 市隱)은 1862년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김형태와 모친 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종도가 되고 그의 천지공사에 적극 참여했다. 증산이 백암리 그의 집에 있을 때 ‘물 한 그릇 떠오라’ 하여 그 물을 문 밖에 품었다. 이때 경상도 해인사에 큰 불이 났었는데 그것을 껐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대순전경』·『전경』·『증산도도전』등에는 김경학에 대한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 또한 김경학은 1920년 순천도를 창립한 장기준이 개학치성(開學致誠)을 드릴 때 그 법식에 참여 그의 연원이 되어 장기준에게 증산의 도를 전하기도 했다. 집안이 부유하여 그의 큰형은 2천 ...

2025-06-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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