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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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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1858년부터 가톨릭이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1900년 전후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부임하면서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때 강봉헌이 제주도 봉세관으로 부임하면서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였고, 이 일에 가톨릭 교도들을 채용하였다. 또한 교회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신목(神木), 신당(神堂)을 없애는 등 제주도민의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도민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었다. 이에 대정군수(大靜郡守) 채구석과 유림(儒林) 오대현은 ‘상무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봉세관과 교회에 대항하였다. 관노 이재수 등과 도민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입수한 무기로 무장하여 민란을 일으켰다. 제주성이 함락되었고 가톨릭 교 ...

2025-10-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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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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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출가한 승려가 먹는 식사 일반을 공양이라고 한다. 음식·옷 등을 불·법·승 삼보와 부모·스승·망자(亡者) 영혼 등에게 공급하여 자양(資養)한다는 뜻도 있다.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을 마지(摩旨)라고 하는데, 사시마지(巳時摩旨)라 하여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공양은 수행자가 육신을 유지하고 청정한 정신을 유지하는 생활의 방도였는데 점차 남에게 베푸는 공덕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더 나아가 삼보와 부모, 망자 영혼에 이르기까지 음식뿐 아니라 의복 등 다양한 물건을 봉양하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생겨났다. 발우를 사용하여 식사하는 발우공양, 경전 등을 올리는 법공양, 향·등·꽃·과일·차·쌀 ...

2025-10-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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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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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는 1913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하였고, 연세대 국어국문과,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충남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0년 충남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었는데, 4·19혁명 직후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이병도가 주재한 교수회의에서 민선으로 선출된 첫 총장이었다. 이정호는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에 근거해 훈민정음 창제원리가 역학에 기반한 것임을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김항의 정역사상을 연구하여 음양의 대립이 아닌 조화를 강조하는 세계관이 근대 한국철학으로 등장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주요저서로 『국문 영문 해설역주 훈민정음』·『훈민정음의 구조원리』·『정역연구』 등이 있다. 『정역 ...

2025-10-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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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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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범석은 1900년 12월 12일, 부친 문하(文夏)와 모친 연안 이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철기(鐵驥)이다. 1913년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15년 여운형을 만나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6년 운남성 육군강무당(陸軍講武堂)에 입학하였고, 1918년 수석졸업하였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장교직을 사직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찾았으며, 독립군을 양성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고 신흥무관학교 교원이 되었다. 1920년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과 김좌진의 요청으로 북로군정서로 옮겨 사관훈련과 보병부대를 조직했으며, 그 ...

2025-10-0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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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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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교

189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어의동학교와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본래 기독교 신자였지만 불교로 개종하여 조선중앙불교학교와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오상순은 1921년 바하이 선교사인 미국인 아그네스 알렉산더가 내한했을 때 모임을 주선해서 바하이교가 전래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YMCA회관에서 가진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공동명의로 바하이교의 지도자인 압둘바하에게 인사를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이 서신을 받은 압둘바하는 사망하기 직전에 한국인들에게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문인으로서 오상순의 대표작으로는 「시대고와 그 희생」, 「힘의 비애」, 「아시아 ...

2025-10-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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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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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도

광명도의 창립자 정요순은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정치의 좌우세력을 합일시키며, 종교와 종파를 귀일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삼대 불행인 전쟁, 질고(疾苦), 기한(飢寒)을 없애기 위해 ‘인류광명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출판부를 설치하여 많은 책을 출판하게 되는데 『신지』는 『인류독본』 등과 함께 이때 출판된 문헌으로 보인다. 주된 내용은 인류광명화운동을 강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정요순의 광명도」(김홍철, 『圓光』, 원광사, 1990)

2025-10-0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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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연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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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신종교연합으로는 증산계 여러 종파들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위해 만든 증산종단연합회(甑山宗團聯合會)와 민족종교들 간의 유대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성된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들 수 있다. 먼저, 증산계 초종파 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이상호(李祥昊) 등이 발의하여 증산계 여러 종파들의 상호 협력을 위해 8개 파로 구성된 팔파연합회(八派聯合會)로 시작되었다. 이후 1949년에 유동열(柳東悅)의 주도하에 17개 교파로 구성된 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이 결성된 이래, 1955년에 13개 교파로 된 증산대도회(甑山大道會)가, 1960년에 동학계까지 참여한 민족신앙총연맹(民族信仰總聯盟)이, 1961년에 동학 ...

2025-10-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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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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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천부경』·『삼일신고』가 주로 단군신앙의 기본교리를 밝힌 것이라면, 본서는 한배검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순한문체로 되어 있으며, 서문과 발문이 없고 작자도 밝혀져 있지 않다. 대종교에서는 1906년 1월 제1대 교주인 나철이 구국운동을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가 백전(佰佺)이라는 인물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백봉이 전했다는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그리고 본서를 전해 받았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나철은 이를 토대로 대종교를 중광하였다. 1923년 봄 제2대 교주 김교헌이 만주에서 대종교시교회(大倧敎施敎會)의 명의로 간행하였으며, 그 뒤 제3대 교주 윤세복이 한글로 번역하여 『한얼일적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검바른길 ...

2025-10-0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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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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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신규식은 1879년 1월 13일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부친 용우(龍雨)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895년 서울로 유학하여 1898년 관립 한어학교(漢語學校)에 입학하였다. 2년 뒤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임관되어 참위(參尉)·부위(副尉)까지 진급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에는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등 애국계몽단체에 참가하였으며, 중동학교·청동학교·문동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09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광산경영도 하였다. 1910년 망국의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을 기도하였으나 나철에 의해 구조되었고, 이때 오른쪽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1911년 지교(知敎) ...

2025-10-0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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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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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Ⅱ(이재헌, 미래문화사, 2010)

2025-08-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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