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70건
김성도
김성도(金成道)는 1882년 음력 7월 17일에 태어나 17세 때 27세 연상인 정항준(鄭恒俊)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906년 첫째 아들 정석천을 낳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때 노권사라는 전도부인이 예수를 믿어야 낳는다고 하여 그때부터 김성도는 교회를 나가게 된다. 3개월이 지나자 그의 병이 완치되고 특히 첫 아들의 병이 그녀의 기도로 완치되자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졌다. 1923년부터는 입신하여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신비체험을 하고 계시를 받게 되었다. 계시의 주요 내용은 죄의 뿌리는 음란이라는 것 지상의 인간들의 불신 때문에 예수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 교회당에서 십자가를 떼어내는 운동을 전개하라는 것 ...
2025-06-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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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덕협회
1951년 개별적으로 활동해 오던 중국계 신종교 일관도(一貫道)가 도덕초기회(道德礎基會)라는 명칭으로 통합되는데 이 과정에서 교단의 주도권 갈등으로 인해 도덕회(道德會) 대한도덕회(大韓道德會) 국제도덕협회(國際道德協會) 등의 분파가 성립한다. 이 중에서도 현재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국제도덕협회이다. 본회의 설립자 김복당은 조선 시대 중국 청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간 경주 김씨의 13대손으로써 22세인 1936년 일관도에 입신하였다. 1947년 일관도 제18대 조사인 장천연의 명으로 김은선(金恩善) 등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1948년 서울 충무로에 도덕사(道德社)를 개설하는데 이곳은 ...
2025-06-0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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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신앙
선도계
공자가 유교의 시조로서 닫힌 체계로 한국에 받아들여진 반면 관우는 도교의 신으로서 개방적인 신격을 띠고 한국에 수용되었다. 이는 한국에서 공자와 관우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데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중국의 관제신앙이 도교화된 체계 속에서 관우를 신격으로 받들어 숭앙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의 관제신앙은 독립적 체계와 포괄적 체계로 이원화(二元化) 되어 있다. 독립적 체계는 관우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반면 포괄적 체계는 여러 신을 모시면서 그 안에 관우를 포함해 숭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관제신앙이 도입된 시기는 정유재란(1597) 시기이며 이는 타의적으로 강요된 신앙이었기에 위정자들조차 신봉하지 않았었다. 그 후 국 ...
2025-05-2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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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고
칠성교
칠성교는 1923년 칠성각을 건립하고 볏짚으로 커다란 북을 만들어 그것을 보물로 간직하면 반드시 개운(開運) 할 것이라는 김달봉(金達鵬)의 유언에 따라 1924년 칠성각에 고태고(藁太鼓)를 안치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이 북이 울릴 때에는 진인(眞人)이 출현하여 새 세상이 열리며 이 북을 지키는 자는 장차 조선의 주교(主敎)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5-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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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혁명맹서(해인영출)
광명도
2025-05-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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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출진
원불교
원불교의 재가교도로서 공부와 사업에 노력하여 교단의 발전에 공헌한 사람. 진흙속의 연꽃처럼 세간속의 불보살처럼 몸은 비록 세속에 처해 있으나 마음은 항상 청정법계에 자재하고 생활은 비록 한 가정에 머물러 있으나 늘 공도사업에 앞장선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이다. 일반적으로는 높은 도덕과 학식을 가졌으면서도 세상의 부귀공명에 탐착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원불교 초기에는 재가ㆍ출가 구분 없이 함께 공동생활하며 교리를 공부하였다. 그러나 원불교 발전 과정에서 출가 교역자가 교화 및 행정에 관한 주요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거진출진은 일반 교도가 되었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그 본래 재가 출가 차별없는 정신을 ...
2025-05-2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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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대제
갱정유도
갱정유도에서는 매년 음력 4월 8일과 10월 8일 그리고 8월 16일에 대제치성을 봉행한다. 음력 4월 8일과 10월 8일은 각각 음과 양이 가장 성한 때이므로 천지의 은혜에 감사를 올리는 대제를 봉행한다. 음력 8월 16일 대제는 갱정유도의 도조 영신당주 강대성의 선화일로 갱정유도인들은 매년 이를 추모하는 대제를 봉행한다. 대제치성에는 초헌·아헌·종헌을 비롯한 제관들이 미리 정해지고 제관들은 대제 7일 전에 갱정유도의 본부인 성당에 모여 7일간 재계를 함으로써 심신을 정결하게 하여 임한다. 대제에 참석하는 일반 도인들 역시 각자 3일간의 재계를 하고 대제에 참석하게 된다. 대제치성 당일 새벽 인시(새벽 3시)가 되면 ...
2025-05-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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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여단군제단
한말 역학자(易學者) 이후영은 새로운 역리(易理)를 내세워 김일부(金一夫)에 비견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생활을 지배할 최고의 역리라고 주장하면서 1951년 자신의 주거지인 부여군 은산면 옥가리에 소규모의 제단을 설치하고 개천절에 제향을 올리다가 1958년에 사망하였다. 이후영의 유지를 계승한 강화(姜和)는 1964년 부소산(扶蘇山)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에 소규모의 단군제단을 설치하고 동지 약 50여 명을 규합하여 개천절 제향을 올렸으며 이후 부소산에 단군전을 세우고 역학대학(易學大學)을 만들고자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는 ‘부여’와 ‘부소산’의 이름이 단군천황의 둘째아들인 ‘부소천황(扶蘇天皇)’과 셋째아들인 ‘부 ...
2025-05-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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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전태성)
각세도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고 제자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여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선평의 생존 당시부터 각세도는 각 관을 중심으로 분란이 있었으며 당시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천인교’를 만들어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선평에 의해 천암(天庵)이라는 도호를 받은 장명성(張名聲)이 남도주로 바뀌게 된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남도주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장명성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여 독자적인 교단 ...
2025-05-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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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사
동학
가섭사는 최시형이 1884년 손병희 박인호 송보여를 대동하고 1884년 음력 10월 1일부터 49일간 특별수련을 진행한 곳이다. 최시형은 49일 동안 여섯 차례의 강서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가섭사에서 제61회 최제우 탄신일에 재례규범으로 목욕재계 예복환착 고천(심고) 초학주문 3회 강령주문 3회 본주문 3회 축문 고천의 순으로 정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동학의 교화조직인 육임제를 창설하였다. 참고문헌 : 「동학의 문화유적 순례Ⅲ(충청지역)」(『동학연구』11 2002)
2025-04-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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