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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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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의미인 개천절(開天節)은 환웅(桓雄)의 아들 단군(檀君)이 서기전 2333년 즉 단군기원 원년 고조선을 건국했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로 원래는 음력 10월 3일에 해당된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일 년 농사가 마무리되면 햇곡식으로 상을 차려놓고 제천행사를 지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고려의 팔관제(八關祭)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강화도 마니산(摩尼山)과 구월산 삼성사(三聖祠) 등에서도 민간신앙과 풍습이 결합된 다양한 제천행사를 지냈다. 이러한 민간신앙과 풍습은 현재에도 10월이 되면 전국의 마을과 산에서 진행되는 곳이 있다. 대종교에서 ...

2025-05-1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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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민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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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학회(開天學會)의 다른 이름.

2025-05-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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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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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개벽이라는 용어는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준말로서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다’는 태초의 현상을 묘사한 것이다. 천지가 처음으로 창조되어 열리는 순간은 그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강증산의 천지공사를 통해 새롭게 맞이하는 세계는 신천지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큰 변화를 동반하므로 개벽이라고 말한다. 『전경』에 의하면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 ...

2025-05-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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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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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강철구는 1894년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강우(석기)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11년 강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교 보습과를 1년 반 수학한 뒤 18세에 조선총독부 순사보가 되어 흥산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3년만에 사직하고 상경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기술자 및 사무원 양성소를 수료하고 토지조사국 기수로 종사하다가 그만두고 1917년 1월 만주 철령 소재 육영학교에 입학하여 중국어를 습득한 후 9월에 간도로 가서 부친이 설립한 ‘천영(天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강철구는 1919년 말경 서일(徐一)을 만나 그의 권유로 대한정의단에 가입하였고 이듬해 3월 대한 ...

2025-05-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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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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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강용구는 1896년 충남 부여에서 강우(석기)의 삼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단야(檀野)이다. 사립 천흥(天興)학교를 거쳐 1915년에 군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곧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지점에 취직하였으나 1916년 사직하고 홍산공립보통학교 촉탁 교원이 되었다. 1918년 부형이 있는 북간도로 건너가 잡화상을 운영하다가 1920년에 귀국하여 서울에서 숙박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형 강철구가 군자금 모금을 위해 강용구의 집을 거점으로 삼았으며 또한 그를 연락책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강용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하여 1921년 참교가 된 이래 1922년 남일도본사 계리감정(計理監正) 1923년 계선시교당(桂善 ...

2025-05-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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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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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중부 이북지방의 무당이 강신무 유형에 속하며 남부지방의 무당은 세습무(世襲巫) 유형에 속한다. 신병은 무병(巫病)이라고 하는데 환상과 환영·질병 등 일정한 정신적·육체적 증세를 통해서 일어나는 종교적 체험이며 이것을 신에 의한 무업(巫業)에의 소명 지시라고 해석하여 무당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내림굿을 치르게 된다. 강신무는 굿을 집전하기 위해서는 무가(巫歌)를 비롯한 제반 사항을 학습해야 하지만 강신무가 가지는 권능은 빙신(憑神 : 신지핌)에서 비롯된다. 강신무는 신의 뜻을 전하는 공수를 한다. 공수는 신이 무당의 입을 빌려 말을 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무당과 신이 서로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는 ...

2025-05-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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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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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어릴 때 이름은 향수(香秀)이며 후일 대성으로 개명. 호는 영신당(迎新堂). 1890년 9월 17일 부친 덕진(德津)과 모친 정(丁)씨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20년대 초부터 수도생활을 시작하여 종교체험을 하였으며 1929년 7월 깨달음을 얻은 이후 갱정유도를 창립하여 도조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강대성은 5세부터 부친에게 글을 배우고 익혔지만 9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글 배우기를 싫어하고 20여세가 지나서는 천리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29세에 문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용학(龍鶴)이라고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항일투쟁에 참가하였다가 검거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1922년 ...

2025-05-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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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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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삼덕도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를 창시한 강기춘(姜基春 1903-?)은 1903년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 법한리에서 태어나 16세에 강탁임(姜卓任)과 결혼하였다. 25세에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가서 공장을 경영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여 부산시 아미동에서 살았다. 아들이 병에 걸려 김봉남(金奉南)의 물법치료를 받고 낫게 되자 그녀는 봉남을 믿고 따르며 그의 신임 받는 제자가 되었다. 1950년 봉남이 사망하자 그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교단본부를 자기가 주도적으로 설치하고 교단발전을 위해서는 불교적인 색채를 가미하자는 주장에 따라 불교적인 교체를 세워 포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952년 12월 자기 집에 법단을 차리고 미륵불상과 ...

2025-05-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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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사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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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등대중앙교회

김풍일은 자신을 ‘감람나무’라고 주장한 전도관 박태선의 영향을 받아 1982년에 발간한 『생명나무』에서 박태선을 이은 말세의 구세주로서 자신을 ‘가지사명자’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가지’는 바로 박태선을 상징하는 ‘감람나무’의 ‘가지’를 의미한다. 김풍일뿐만이 아니라 전도관 박태선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 이현석 등 일부 신종교 창교자들은 자신을 감람나무 즉 박태선의 가지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누군가가 세상을 구제하는 사명자가 되려면 사명자의 혈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5-05-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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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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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문헌

2025-04-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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