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군대황전
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16
단군교
한명윤이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의 초기 이름.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02
16
누석단
우리나라 서낭당(성황당)의 대표적인 한 형태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 등에 원추형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 형태이며 그 주변에 신목(神木)이나 장승 등이 세워져 있다. 이곳을 지날 때는 돌무더기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전해지기도 한다. 누석단이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또는 석전(石戰)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민간 차원의 종교적 의미가 강하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2025-07-01 02:09
16
내원암
천도교
1854년 수운 최제우는 10년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가가 있는 울산 여시바윗골로 이사했다. 여기서 최제우는 1855년 금강산 유점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라는 책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최제우는 3일을 두고 그 뜻을 생각하여 진의를 파악하고 이후로 결심한 바 있어 더욱 수도에 힘썼다. 그는 그 이듬해 1856년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 들어가 49일을 작정하고 견성공부(見性工夫)에 힘썼다. 그러나 47일 만에 문득 마음에 생각되기를 “이제 숙부가 환원하였으니 가히 공부를 마치지 못하리라” 하고 산을 내려와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에 ...
2025-07-01 01:47
16
남조선신앙
기층신앙
최남선의 저서인 『조선의 상식문답』에 처음으로 거론이 되면서 일반화가 된 구성개념이다. 그 연원이 대체로 조선후기에 사회적 변혁을 기대하는 민중의 대망이 우러나온 낙원 동경의 이상이 결부 된 소박한 관념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남조선신앙의 증후로 간주가 되는 어휘로서 南 혹은 南海라는 문구가 인조 연간 이후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삼남 각처에서 농민반란이 발흥하는 가운데 흉흉한 인심에 편승해서 기한(飢寒)에 시달리는 현실을 탈피하려고 하는 민초들의 심의(心意)에 자리 잡았던 이상향에 대한 희구의 염원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북창(鄭北窓)의 「金山寺歌』에도 “만국활계 남조선은 청풍명월 금산사라. 여보시오 세상사람 ...
2025-07-01 01:27
16
남산종
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16
낙원정사
본 단체의 1960년 조용승(趙鏞丞)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본 단체에서는 천지만물과 화해하면 천지만물이 한편이 되고 무엇으로부터도 상해를 입거나 병균이나 악귀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화해와 감사를 강조하다. 그러한 감사의 생각 속에서 신과 불의 모습을 보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신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곧 신이고 부처라고 하여 신앙의 대상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특별한 경전은 없다. 그리고 국은(國恩) 부모 아내․남편 자식 부리는 사람 모든 사람 천지만물에 감사하라고 강조하고 그러한 감사생활은 만병과 재앙을 물리친다고 가르친다. 1945년에 조용승이 종래 믿었던 가톨릭으로부터 나 ...
2025-07-01 00:55
16
김백룡
청심등대
김백문의 1917년 양력 10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 448번지에서 김광조와 문아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령파였던 김남조 여인를 만나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남주와 인연이 되었다. 백남주를 보필하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남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같이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백문은 1937년과 1946년에 걸쳐 두 번의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193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신비체험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고 1946년의 체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
2025-06-30 15:59
16
기자교
한태리는 서울에 있던 기자교(언제 누가 창립했는지 알 수 없음)의 황해도 지부장에 임명되어 황해도 해주군 대차면 수동리에 지부를 설치하고 신도 5백 명을 얻게 되었는데 서울의 기자교가 소멸되자 이곳이 기자교 본부가 된 것이다. 기자교의 교지는 기자를 숭상하여 덕화를 받는 다는데 있었다. 신도들은 음력 매월 1일과 15일을 예배일 정하여 기자전(성전)에 모여 예배를 한다.
2025-06-30 01:18
16
금구해도
보화교
구해도(金龜海圖)는 보화교(普化敎)의 3대교주 김명환(金明煥)이 교주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의 유지를 받아 하도(河圖) 낙서(洛書) 이후 김일부(金一夫)가 새로 발견한 역(易)의 도판을 완성한 것이라 한다. 김일부는 아이들이 ‘삼각산 제1봉에 봉황이 날아 춤을 추고 한강수 깊은 물에 용마하도(龍馬河圖)가 다시 나네’ 라고 동요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한강에 가보니 거북 등처럼 생긴 평판(平板)의 돌에 환영적(幻影的) 점이 음각처럼 나타나있었다. 일부는 이것을 보고 득리(得理)하여 마침내 낙서(洛書) 이후에 어떤 신리(新理)의 세계가 올 것을 예지하였고 또 연구 끝에 낙서에 있어서 인월세수(寅月歲首)를 묘 ...
2025-06-03 17:42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