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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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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교

여처자(1887-1954)는 여본주(余本主)라고도 불렀다. 1887년 3월 19일 경상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동에서 태어났다. 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영천에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전혀 말을 하지 않아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일곱 살 때 말문이 터지면서 가끔 신기한 말을 하곤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년하여 혼담이 오고 갔으나 완강히 거절하여 독신으로 일생을 마쳤다. 차경석이 부부의 연을 맺으려 했으나 이도 거절했다. 1937년 겨울 전남 나주 사람 서상섭(徐相燮, 일명 正一)이 신명의 계시를 받고 여처자를 찾아와 그를 받들기 시작하자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어 이때부터 여처자를 중심으로 한 ...

2025-10-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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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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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한국 민간신앙에서 인간의 삶은 다양한 신적 존재와 함께 하는 삶이고, 인간과 신은 상호영향을 주고받는다. 신과 인간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 삶은 신과의 관계에서 설명되고 삶의 문제 역시 신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해결된다.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영향을 미치는 신은 일정한 영역을 담당하는 신들과 영역과 무관한 신들로 나뉜다. 전자는 산신이나 마을신, 가신(家神; 조왕, 성주, 터주, 삼신 등)들처럼 일정한 삶의 공간이나 자연공간에 존재하면서 그 영역과 그 영역 안에 존재하는 사람, 동물, 사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후자는 어느 한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신들이다. 이 신들은 사람이 죽어서 신이 된 존재 ...

2025-10-0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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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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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

원정(苑淨) 손정우(孫禎佑)는 1907년 1월 29일 경남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속명은 대련(大鍊)이며, 총지종의 창종과 함께 정우로 개명하였다. 유년시절 한학을 수학하였고, 현대 고등교육을 마치고 한 때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불교에 뜻을 두고 전국과 만주, 중국 등을 유력하였다. 1950년 6.25 직후 진각종의 창종자 회당 손규상(孫珪祥)을 만나고, 진각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1963년 손규상이 입적하자, 같은 해 10월 16일 총인(總印)을 맡아 진각종을 이끌며 『용화성전』, 『총지법장』 등을 편찬하여 진각종의 교리 및 행정 기반을 확립한다. 그 ...

2025-10-0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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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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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 신자였던 이민제는 교리연구와 도각(道覺)을 위하여 입산수도 끝에 1923년 득도하여 『삼역대경(三易大經)』을 저술하고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성도교를 창립하였다. 당시 신자는 한때 1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 뒤 수제자였던 이응종(李應鍾)이 교맥을 이어 포교를 계속하였다. 성도교의 신앙대상은 삼천상제(三天上帝)로서의 한울님인 천주를 믿으며 이를 삼황천주(三皇天主)라 하였다. 수운 최제우를 도주로 이민제를 태극도주로 받들었다. 교리는 동학사상에 이민제의 삼역교리를 혼합한 것으로 심학(心學)을 근본으로 하여 도명덕화(道明德化)하고 포덕천하 · 보국안민 · 광제창생 하여 죄악이 없는 이상세계를 만드는 것이 본 ...

2025-07-1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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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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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를 설립한 최위석(崔偉錫 ?-1963)은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여 보천교 6임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보천교를 탈퇴하고 서울에서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 이상호(李詳昊)ㆍ이정립(李正立) 형제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최위석의 집)에서 대법사를 만들 때 이에 적극 가담하여 기획부장이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상호 형제가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로 피난 갔다가 거기에서 대법사(증산교본부) 간판을 걸자 자기도 서울에서 서울대법사로 간판을 걸고 분립하였다. 그러나 그가 1963년 사망하게 되자 와해되어 버렸다. 서울대법사의 신앙의 대상과 사상은 대법사(증산교본부)와 ...

2025-07-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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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재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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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북한 단독정부수립으로 남북분단이 고착되어 가자, 천도교인들이 1948년 3.1절을 계기로 남북통일정부수립을 촉구하기 위해 벌인 운동을 삼일재현운동이라고 한다. 천도교지도부는 통일정부수립을 염원하는 선언문과 5개항의 공약을 만들고 천도교중앙총부 도령 김완규(金完圭)의 명의로 2월 14일 북한 천도교회와 천도교 청우단에 지령을 내렸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대중운동은 결렬되었다. 그러자 천도교 연원회의 김덕린이 연원제를 기반으로 비밀지령을 내려 계획을 강행하였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기미를 알아채 3월 1일 기념행사를 전면 중지시키고 천도교 간부 1만 7000여 명을 체포, 수감했으나, 영변 ...

2025-07-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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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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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이 제자 공공진인(空空眞人:1807-1910)에게 도를 전하였고 공공진인은 구한말의 암울한 시기를 당하여 국운이 쇠함을 보고 제자 한빛선사(大光仙師:1860-1945)에게 삼성(三聖)의 위패와 능운검을 포함한 세 자루의 보검을 전하였다. 한빛선사는 다시 제자 낙천선사(樂天仙師:1902-1984)에게 위패와 보검을 전하였고 낙천선사는 박달평전에 삼성의 위패를 모시는 삼성사(三聖祠)를 짓고 평생 삼법수행과 만행으로 일관하며 정진하였다. 한빛선사의 문하에 출가한 한풀선사(大氣仙師)는 스승으로부터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비롯하여 삼륜(三倫)·오계(五戒)·팔조(八條)·구 ...

2025-07-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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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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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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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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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은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처음 보이나 이는 고대의 산신신앙이나 무속신앙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중기까지는 불교의 불사(佛事)나 도교의 제초(齋醮)로 행해진 제의란 의미로 사용되었고 고려 말에 와서는 무격이 담당하는 행사(巫堂之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말에 사용된 별기도(別祈禱)·산례(山禮)·발기(撥記) 등의 명칭도 별기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별기은이 행해지던 제장(祭場)은 고려시대에는 여덟 군데였고 조선 시기에는 덕적(德積)·감악(紺岳)·개성대정(開城大井) 외에 여러 곳에서 수시로 설행되었다. 음사(淫祀)를 배격하던 조선 시기에도 국가가 인정하는 무격의 국행제가 지속된 것은 무속의 전승에 ...

2025-07-0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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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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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종(日蓮宗)

중국의 천태종을 일본화한 조사는 고대의 사이초(最澄)였다. 당시에는 종합불교적인 입장에서 『법화경』만이 아니라 타종의 경전이나 교의에 대해서도 연구와 수행이 이루어졌다. 고대말기가 되자 승려와 귀족 간에는 법화8강(法華八講) 법화직담(法華直談)이라고 하는 『법화경』 단독의 강독이나 강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세에 선택과 집중의 종파불교가 확립되는 와중에 『법화경』 자체에 신앙성을 부여한 조사는 니치렌(日蓮)이다. 그는 나무묘법연화경 7자를 외는 창제(唱題)를 일련종의 교의로써 확립하였다. 한편 선 염불 진언 율 등 타종을 배타적 시각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일본 법화신앙은 니치렌을 ...

2025-07-0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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