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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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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943년 윤세복이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어 목단강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기초하였고 1952년 완성하였다. 원제(原題)는 『수진삼법회통(修眞三法會通)』이다. 현재 『대종교요감』에 실려 있다. 책의 구성은 머리말과 제1장 삼법명(三法銘) 제2장 삼법약설(三法略說) 제3장 삼법회통(三法會通)으로 되어 있다. 삼법명에서는 삼법을 수행하는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지감은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탐함과 성냄과 싫어함을 그치는 것 조식은 김의 화평함을 주장하는 것 금촉은 소리와 빛을 경계하고 맛과 냄새를 잊어버리며 음탕함과 살닿음을 끊는 것이다. 삼법약설은 삼법을 수행하는 방법이며 삼법회통에서는 이 삼법이 서로 회통되는 원리에 ...

2025-07-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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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원성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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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삼대원성취가는 1946년 경 수운교 본부에 와서 공부하고 있던 해암 김두화(金斗和)씨가 작사하고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싸인'에 부쳐 부른 노래이다. 우리나라에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탄생하기 전 애국가의 곡으로서 널리 불린 바 있다. 우리말로 작별이라 번역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작사자 김두화씨는 『단기고사』를 번역한 분이기도하다. 삼대원성취가는 아래와 같이 4절로 되어 있고 후렴이 있다. 1)천도순환 돌아오니 용담의 봄이요/천단짓고 경배하니 금병의 빛일세/후렴/무궁조화 삼대원 성취하는 날/지상천국 분명하다 수운천사 만세 2)하날님덕 널리펴서 천하에 전 ...

2025-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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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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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당(付根堂)’ ‘부강당(富降堂)’ 등으로도 표기한다. 현재 부군당이라는 명칭은 다른 데서는 보이지 않고 서울에서 당산동·동빙고동·서빙고동·보광동·수유동·창전동·이태원동 부군당 등 10여 건이 조사 파악되었다. 부군당에 봉안된 부군신은 마을을 보호해 주는 무신적(武臣的) 성격과 함께 풍요신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본조 풍속에 도하 관부들에는 으레 수호신을 모신 한 작은 숲을 두고 그 사당에 지전(紙錢 : 종이돈)을 걸고 부군이라 일컫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부군’이란 본래 한(漢)나라 태수의 칭호였다고 하나 부군당이란 옛날 관청 내에 두던 사당의 이름인 듯하다. 부군당의 제의는 봄·가을에 마을 ...

2025-07-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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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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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조선 단학은 자생설과 전래설이 있다. 조선 중엽의 한무외(韓無畏)는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에서 단학의 원류가 중국이며 신라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 조여적(趙如籍)의 ≪청학집 靑鶴集≫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 등도 모두 이 설을 따른다. 이규경 역시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도교선서진경변증설’에서 최치원이 당 의 유학시절 환반(還反)의 학설을 배워 온 것을 우리나라 단학의 시조로 삼는다. 이에 반해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단군이 최초의 선도인이며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 역시 신선도에 있다고 한다. 단군시대의 신선사상 고구려와 신라의 선도 고려의 국선 조선의 단학은 시대에 따라 달리 표현된 것으로 보고 ...

2025-07-09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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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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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은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처음 보이나 이는 고대의 산신신앙이나 무속신앙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중기까지는 불교의 불사(佛事)나 도교의 제초(齋醮)로 행해진 제의란 의미로 사용되었고 고려 말에 와서는 무격이 담당하는 행사(巫堂之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말에 사용된 별기도(別祈禱)·산례(山禮)·발기(撥記) 등의 명칭도 별기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별기은이 행해지던 제장(祭場)은 고려시대에는 여덟 군데였고 조선 시기에는 덕적(德積)·감악(紺岳)·개성대정(開城大井) 외에 여러 곳에서 수시로 설행되었다. 음사(淫祀)를 배격하던 조선 시기에도 국가가 인정하는 무격의 국행제가 지속된 것은 무속의 전승에 ...

2025-07-0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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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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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초기 교단의 역사에 1919년(원기4) 봄에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구인제자들에게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가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천지에 기도하라.”(《대종경》 서품13)하여 구인 제자 각자에게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고 일제히 기도를 올려 이해 음 3월 26일부터 음 7월 26일까지 매월 3ㆍ6일마다 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기도 중 (음 7월 26일) 제자들에게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는 최후증서에 백지장(白指章)을 찍고 ...

2025-07-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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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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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박노철은 1922년 충남 대덕군 유성면 갑동의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모친을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한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26세 때 꿈 속에 어떤 신명이 나타났는데 오색찬란한 구름 속에서 검은 말 네 마리를 끌고 광야에 내려와 검무(劍舞)를 추면서 ‘내가 너를 기다렸다. 이 말 네 필을 줄테니 잘 길러라. 이 새끼말이 크면 세계평화가 올 것이니 그때 다시 만나자’하고 칼을 공중에 던지니 수만 조각으로 하늘에 흩어졌다고 한다. 한참 후 그 파편이 땅에 떨어지니 신명이 이를 다시 거두어 삼각도장을 만들더니 박노철의 손에 날인하면서 ‘이것이 해인(海印)이다. 나를 믿고 정성을 들이면 구제창생 ...

2025-07-0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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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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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묘(文廟)는 성균관(成均館)과 향교(鄕校)에 설치되어 있는 공자(孔子)의 사당을 말한다. 선성묘(先聖廟) 또는 문선왕묘(文宣王廟)라고도 한다. 신라 성덕왕 때 당(唐)으로부터 공자와 십철(十哲) 및 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國學)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문묘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국학인 국자감(國子監)에 문묘를 설치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및 전국 330여 개소의 향교에 문묘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의 문묘는 대성전(大成殿)에 공자를 주향(主享)으로 모시고 사성(四聖)·십철(十哲)과 송조(宋朝) 육현(六賢)을 배향(配享)하였으며 동무(東廡)·서무(西廡)에 우리나라 명 ...

2025-07-0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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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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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 중견간부였던 김찬호는 1940년(경진)과 1941년(신사) 양년 간에 모두 5차례에 걸쳐 강서(降書)를 받는다. 이 글을 하나로 묶어 『명운경』이라 한다. 그 제4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예언이 들어있다. 하나는 일제가 패망하여 해방이 된다는 내용과 다른 하나는 천지가 개벽한다는 내용이다. 김찬호는 강서를 받은 후인 1941년 9월부터 이 『명운경』을 가지고 일제가 패망하여 해방이 온다며 이를 동료 교인들에게 선전하고 기도를 봉행하였다. 화개소식의 화개는 또 화계(花鷄)이니 닭의 해(1945년 을유)에 해방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기도의 내용은 『용담유사』에 “개 같은 왜적 놈을 하날님께 조화 받아 일야(一 ...

2025-07-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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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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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필사본인 「정해지령회운가」 등이 들어있는 책과 「천지인」 등이 들어있는 또 한권의 책이 있다. 참고문헌 : 「함승국의 명부전」(김홍철 『원광』1990. 5.)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누리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류병덕 양은용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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