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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천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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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관의 교리는 천옥찬의 계시서 『천국의 열쇠』라는 소책자에 잘 나타나 있다. 핵심교리는 “지상천국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진리의 성령이 올 때 성경 70권을 독파하면 하나님의 비밀 말씀이 완전히 드러난다고 한다. 이때 모든 교파의 교주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다”이다. 화목한 가정과 부부애를 주요 신앙생활로 포함하고 있으며 신비체험보다 말씀 은사를 강조한다. 이 교단의 출발은 전도관이지만 일정 부분 통일교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현재의 교세는 극히 미미하다.

2025-07-0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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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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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대원사(大院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학천곡 모악산 동쪽 기슭 해발 420m에 자리 잡고 있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인 보덕(普德)의 제자 일승(一乘)ㆍ정심(心正)ㆍ대원(大原) 등이 창건하였으며 1866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ㆍ명부전ㆍ산신각ㆍ객실 등이 있다. 일찍이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이 절에 거처한 바가 있었다. 특히 증산 강일순과는 인연이 깊은 절이다. 증산은 1901년 5월 중순부터 대원사에 가서 그 절 주지승 박금곡(朴錦谷)에게 조용한 방 한 간을 치우게 하고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불식의 공부를 계속하니 금곡 ...

2025-07-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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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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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은 1861년 이운규로부터 받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화두를 연마한 끝에 1879년에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뜻을 안 이후에도 정진을 계속하던 중 이상한 괘획(卦劃)이 눈앞에 아른거리다가 이내 또렷해지므로 그것을 그리니 팔괘도(八卦圖)가 되었다고 한다. 이 팔괘도가 바로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와는 다른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이다. 그 뒤 그는 1881년에 「대역서(大易序)」를 지었으며 1884년에는 『정역』의 상편인 ‘십오일언(十五一言)’에서 ‘무위시(无位詩)’까지 저술하였고 1885년에 다시 ‘정역시(正易詩)’와 ‘포도시(布圖詩)’를 비롯하여 『정역』의 하편인 ‘십일일언(十一一言)’ 까지 저술 ...

2025-07-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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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법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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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에 심취하며 자신의 병고를 극복하고 묘법을 얻은 승려 김정운(金正雲 1989-1947)은 1927년 자신의 고향이었던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우고 정진한다. 그러다가 일본 승려 야스다[安田 本門佛立講]와 우에다[上田 本門法華宗]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법화경』 독송을 우리말로 하는 등 독자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스다 등과 결별하고 1940년대 초반부터 법화신앙단체의 조직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12월 결성된 것이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이다. 이 회에는 교령에 김정운 부교령 겸 교무부장 김혜선(金慧宣) 차장 김정혜(金精慧) 총무부장 예혜교(芮慧敎) 차장 이홍선(李泓宣) ...

2025-07-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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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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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하(趙衡夏)가 유교진흥의 목적으로 1923년 11월 본회 창립총회를 열어 창립된 유교계 신종교.

2025-07-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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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는 담담한 물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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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성훈통고』는 이토암 선생의 핵심적 가르침이 나타나 있어서 중요한 전적이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완역(完譯) 하지 않고 토암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추려 내어 총 15장 342절로 편역(編譯)해 내었다. 제1장 도성보(道聖寶) 제2장 의성(義誠) 신앙 제3장 도덕 제4장 수도 제5장 대겁운의 임박 제6장 구원관 제7장 포교-시행방편(時行方便) 제8장 충・효・성경 제9장 가화 제10장 청결 제11장 언행중여산(言行重如山) 제12장 남녀평등 제13장 예법 제14장 약사여래 제15장 대지명당(大地明堂)이다. 너무 요점만 추려내다 보니 방대한 자료가 ...

2025-07-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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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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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관 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명성은 이선평이 사망한 후 ‘대각교’를 창립하여 독립한다. 장명성이 사망한 후에 ...

2025-07-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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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개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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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에서 정하여 시행하는 경축일은 신정절(1월 1일) 대각개교절(4월 28일) 석존성탄절(음 4월 8일) 법인절(8월 21일) 등 4대 경절이 있으며 대각개교절은 그 중 가장 큰 경절이다. 대각개교절은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이 대각을 이루어 원불교가 개교한 날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이 날을 원불교 교도들의 공동생일로 정하고 모두가 이를 축하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박중빈은 1891년 5월 5일(음3월 27일)에 탄생했으며 1916년 4월 28일(음3월 26일)에 대각을 이루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교조의 탄생일을 가장 큰 경절로 경축하는데 비해 원불교에서는 교조가 깨달음을 이룬 날을 가장 큰 경축일로 정하였 ...

2025-07-0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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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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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유래에 대해서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임금 13년에 후단군조 사절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과 단군실기를 임금께 드렸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이암(李嵒)이 저술했다고 하는 『단군세기』에서는 『단군실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의 강세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을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근대기 백봉(白峯)이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고 단군신명으로부터 묵시를 받은 후 백두산 석실에서 『신단실기』와 『단군실기』를 얻었으며 이후 제자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

2025-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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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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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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