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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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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국선도연맹

세계국선도연맹에서는 국선도의 도맥을 이은 최고지도자의 직위를 도종사라고 한다. 국선도 계열의 단체들은 스승이 제자에게 수련법을 계승하는 내림도법으로 선도가 이어져왔다고 보는데 도맥을 누가 이어받았는가에 대한 견해차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세계국선도연맹에서는 9700여년 전 천기도인으로부터 무운도인 청운도인 청산도인을 거쳐서 현재의 도운선사 허경무에게 도맥이 이어진다고 본다. 1999년에 도운 허경무가 세계국선도연맹을 창설하여 도종사의 직위에 취임하였다.

2025-07-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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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생활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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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위한 사회 각 분야 포교교육 사회봉사 복지사업 국민윤리 선양 청소년선도 교육 등을 목적으로 1964년 1월 3일 김근용에 의해 불교생활연구소로서 설립되었다. 1965년 12월 20일 불교생활연구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1971년 12월 21일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는다. 1972년 6월 1일 부설 불교병원을 개원하고 1994년 3월 3일 제3대 회장으로 김덕수가 취임 부설 선문화대학 및 불교미술대학을 개원한다. 2002년 9월 1일부터 부평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운영 2007년 4월 13일부터는 속초 금강복지재단 사이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본회의 주요사업으로는 불교포교 및 교육사업 사 ...

2025-07-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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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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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에 대해 대종교에서는 1904년 백두산을 중심으로 단군교를 포명한 백봉이라고 하였으나 일부에서는 1890년 평안남도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한 김염백의 신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염백의 신교가 이후 정통의 맥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나 김염백의 신교에 입교한 사람 중에 한명윤(韓明允)이 자신의 집에 교단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주가 되어 포교하였다. 한명윤은 신도들과 더불어 3월 15일 단군어천절과 10월 3일 단군개천절에 제사를 올리고 매 일요일마다 예배를 하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을 의절(儀節)로 삼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단을 무교(巫敎)라고 비판하였으므로 한명윤은 1916 ...

2025-07-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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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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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 선도사였던 강천봉(姜天奉)이 1964년 계룡산 신도안에 있는 ‘계룡천진전(鷄龍天眞殿)’ 내에 국조 단군사상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를 연구하고 발양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문화원이다. 그러나 약간의 논지를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강천봉이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에는 실제적으로 특별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채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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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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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뉴에이지’ 보다 ‘뉴에이지 음악’(New Age Music)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며 후자에 대하여 기독교 측이 (사탄 혹은 악마의 음악이라며) 부정적인 대중적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음악계에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스위스의 안드레아스 폴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가 최초로 최우수 뉴에이지 연주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뉴에이지 음악이 대중음악에 흡수되면서 초기의 뉴에이지적(명상적 신비주의적) 특징이 많이 희석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음악 장르와의 지속적인 크로스오버(cross ...

2025-07-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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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중의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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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조계종삼화불교

본교는 중국 남경에 위치한 중의약(中醫藥) 대학으로서 1995년 8월 불교조계종의 삼화불교대학과 분교를 채결한 이후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손영모)이 한국총장을 맡고 있다. 참고문헌 : 불교조계종 홈페이지 http://www.shbuddhism.or.kr/

2025-07-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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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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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평안남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도적 인물.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인물. 생애 및 활동 : 나인협은 1890년 동학에 입교하여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나용환과 함께 평안도 지역의 동학 도인들을 이끌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하였다. 동학혁명 후에는 손병희의 문명개화운동에 찬동하여 동학광고문을 내 문명개화와 정부개혁을 주장했고 포교소를 33개소로 넓혀 농민계몽에 힘썼다. 1919년 2월 25일에는 경성부에서 평안도 지역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을 만나 3·1 운동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2월 27일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에 서명했으며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 ...

2025-07-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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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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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김재경은 호는 심전(心田) 혹은 마추(馬秋)라고 하며 불아신궁 창립 후 단제성조불아신궁총관법사 불아교화회지도위원장 미륵종단총본산 법상가본부대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원래 각세도 서관을 담당하던 신태제의 수제자로였다. 신태제가 이선평 사후 각세도남관에서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립할 때에도 그는 함께 하였다. 특히 그는 영통자로서 영을 통해 내리는 말을 받아 교주 신태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4년 정도교 일대옥사를 계기로 교주가 사망하게 된 후 김재경은 황덕시와 분열하게 되고 그는 각세도 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여 ‘ ...

2025-06-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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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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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일지개태도광사

김광영은 1883년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세에 연산군 천호리의 유씨 집안에 출가하였다. 천호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립했다고 하는 개태사의 절터가 있었는데 김광영은 43세 되던 1926년에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계시에 의해 개태사 터에 묻혀있는 석불 세 구를 발굴하였다. 이듬해에는 남편의 도움으로 매몰되었던 석불을 원래 위치에 복구하고 불당을 지어 자신이 주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가 주문을 외우고 안수(按手)를 하면 사람들의 질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녀를 도인으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45년 해방 후 김광영은 신도들을 모아 용화회를 조직하고 본전에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 ...

2025-06-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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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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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해 장재(張載)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은 형체가 있은 후에 갖게 되는 것으로 선천적 인간의 본성인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구분하였다.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관한 논의는 선악(善惡)이나 수양(修養)의 문제로 연결된다. 본연지성은 선하기만 하고 악함이 없지만 기질지성은 선함과 악함이 혼재되어있다고 규정한다. 기질의 변화를 통하여 악을 선으로 돌이킬 수 있다고 하는 ‘기질변화’의 수양론도 제기되었다. 한국에서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논의가 논쟁의 수준으로 심화되어 인물성(人物性)에 관한 동이(同異)논쟁을 일으켰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과 외암(巍巖) 이간(李柬)에 의해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으로 분리되 ...

2025-06-3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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