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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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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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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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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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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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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854년 수운 최제우는 10년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가가 있는 울산 여시바윗골로 이사했다. 여기서 최제우는 1855년 금강산 유점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라는 책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최제우는 3일을 두고 그 뜻을 생각하여 진의를 파악하고 이후로 결심한 바 있어 더욱 수도에 힘썼다. 그는 그 이듬해 1856년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 들어가 49일을 작정하고 견성공부(見性工夫)에 힘썼다. 그러나 47일 만에 문득 마음에 생각되기를 “이제 숙부가 환원하였으니 가히 공부를 마치지 못하리라” 하고 산을 내려와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에 ...

2025-07-0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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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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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해월 최시형은 조선 가부장적 유가 전통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차별대우의 문제점을 느끼고 여성의 일상생활에서의 수도를 통해 여성의 동학적 영성을 회복시키고자하였다. 주된 항목은 ①부모로부터 남편 자식 며느리 하인 그리고 육축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경하고 사랑하며 아끼고 나무라도 생순을 꺾지 말며 어린아이를 치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임을 알아 만물의 한울님을 극진히 공경하라는 것. ②땅에 물이나 가래침 코 등을 멀리 버리거나 뱉는 것은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 ③잘 때에 “잡니다” 일어날 때에 “일어납니다” 물 길러 갈 때에 “물 길러 갑니다” 쌀 그릇에 쌀을 넣을 때에 “쌀 몇 말 몇 되 넣습니다 ...

2025-07-0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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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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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했다가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1958년 계룡산에 주택을 세우고 동쪽 산 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경비 부족으로 중도에 중단하였다. 이것을 광명도의 창립자인 정요순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내부시설과 외부환경을 정리해 주어 1964년 3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도의 정요순이 이곳을 거점으로 광명화운동을 전개한다고 단군 앞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염파방송을 하자 이를 물리쳐 버렸다. 따로 신도를 ...

2025-07-0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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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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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삼성전

김흥인은 1924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11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데 이때부터 어떤 신명(神明)이 접하여 모든 것을 지시해 주었다고 한다. 25세에 그 신명의 지시에 따라 개성에 있는 사직단에 삼성각을 짓고 화공(畵工)을 불러 신상(神像)을 그려 모셨는데 어느 날 대종교인이 찾아와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신명이 단군신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천에서 한약종상을 경영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영적 능력에 의한 치유에 의해 무당으로 더 유명해져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56년 10월에 서울 도봉산 암석 아래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

2025-07-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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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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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신앙(祈子信仰)은 자식이 없는 집안에서 자식 낳기를 기원하며 행하는 여러 형태의 신앙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좁은 의미로는 자식 중에서도 특히 아들을 얻기를 기원하는 신앙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이 강하여 기자신앙이 특히 발달했는데 주로 부녀자들이 행하였다. 절에 다니면서 부처의 영험을 의지하거나 굿과 같은 무속의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인간을 잉태시켜준다고 믿는 삼신할미나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칠성(七星) 그리고 용신(龍神)과 산신(山神) 등에게 비는 행위도 흔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자신앙의 가장 광범위한 신앙대상은 기자석(祈子石)이다. 2개의 바위가 서로 포옹하듯이 엉켜있거나 ...

2025-06-3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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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남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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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목사는 1979년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에 소속되어 성락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이단 시비에 연루되었다. 1982년에는 김기동 목사의 마귀론을 문제삼아 교단의 일부 목사들에 의해서 각서제출을 요구받았고 당시 요구받은 각서의 내용은 보통의 침례교단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귀신 불신자 사후존재설과 아담 이전 사람 선재설 등을 전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6년 현대종교 3월호에 또 귀신론을 문제 삼는 글이 실리면서 파장이 생기자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제 77차 연차총회에서 교단 탈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기독교남침례회’라는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기독교남침례회’는 ...

2025-06-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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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사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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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미륵선종

한국불교미륵선종 산하의 승려 교육기관.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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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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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신종교 가운데 단군교종무청 단군조선종천교 삼신교 천상환인미륵대도 등에서는 『천부경(天符經)』을 조화경(造化經)·『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교화경·『참전계경(參佺戒經)』 혹은 『팔리훈(八理訓)』을 치화경(治化經)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 교단에서는 조화경을 한인(桓因) 교화경을 한웅(桓雄) 치화경을 단군(檀君)에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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