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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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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로 년을 표시하여 이루어지는 60년의 주기를 一甲이라 한다. 이 60년의 주기를 확대하여 180년 주기로 사용하는 방법을 쓰면, 각 60년씩을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으로 하여 후반부 60년을 하원 또는 하원갑이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원갑의 시작 기준이 언제인가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원갑의 기준이 되는 해를 세종 때 갑자년인 1444년으로 잡고 있다.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최수운이 도통한 해인 1860년 경신년은 상원갑이 끝나고 중원갑이 시작된 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용담유사』에서 자신이 살던 시대를 물리적 순환 시간과는 관계없이 ‘하원갑’으로 규정하였다. ...

2025-10-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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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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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사인여천은 천도교(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교조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보다 확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교리개념이다. 천도교(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는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사상에 따라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천도교(동학)을 창도한 직후 자신의 집안의 두 명의 여자 몸종을 하나는 수양딸로 다른 하나는 며느리로 삼았다. 이러한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을 계승한 해월 최시형은 사인여천의 개념으로 확대시켰다. 최시형은 1864년 10월 28일 스승 최제우의 탄신일을 맞아 경북 포항 검곡(劍谷)에 ...

2025-07-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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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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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받이’라고도 한다.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신을 청배하는 무가를 창할 때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 자체가 장단 명칭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만수받이’라 하고 함경도나 평안도·황해도 지방에서는 ‘만세받이’라고 한다. ‘받이’란 선무당[立巫]이 선창하면 앉은무당[座巫]이 복창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선무당이 부른 것을 받는다는 말이다. 같은 장단과 사설을 선후창의 반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만수받이장단은 굿거리장단이 원래의 박자인데 이것을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만수받이는 단조로운 무가의 구송 형식에 약간의 변형감을 준 것이며 또 듣는 이로 하여금 확실하게 들으면서 반복미를 맛보게 한다.

2025-07-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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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종교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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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및 해외 여러 종교들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로 1970년 1월 탁명환이 설립한 신흥종교문제연구소가 그 출발점이다. 1979년 5월 국제종교문제연구소로 확대되면서 해외종교들에 관한 연구도 시작하였다. 이 연구소는 신종교들에 대한 연구 이외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종교들에 대한 비판적 역할도 함께 수행해오고 있다. 1999년 1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으며 2013년 2월 연구소의 명칭을 ‘현대종교’로 바꾸면서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2015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공개학술강좌와 세미나를 실시하고 있으며 1982년 8월부터 월간 《현대종교》의 발행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신흥종교』 ...

2025-06-0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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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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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인내천은 천도교(동학)의 종지이지만 그 연원은 천도교(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이다. 시천주는 ‘사람은 모두 천주 즉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으로 평등주의를 내세웠다. 최제우의 시천주는 천도교(동학) 제2세 교주 최시형에 의해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사인여천은 ‘사람을 한울님과 같이 섬겨라’는 뜻으로 윤리적 덕목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를 천도교(동학) 제3세 교주인 손병희는 인내천(人乃天)으로 발전시키면서 천도교의 종지로 확립하였다. 손병희는 1905년을 전후하여 간행된 손병희의『대종정의설(大宗正義說)』에서 “대신사께서 일찍이 주문의 뜻을 풀어 가라사대, 모심이란 안으로 신령을 지니고 ...

2025-10-0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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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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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암 이승여는 1910년 강원도 금강산에서 충청도 계룡산으로 남천포덕을 하였다. 처음에는 관성신앙을 내세워 포덕을 하다가 최초로 이름을 내세운 것은 1922년 일본불교의 이름을 빌어 진종동붕교(眞宗同朋敎)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1926년에는 ‘관성교지부’ 간판을 걸고 관성제군의 소상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약 1년간 관성교지부로 있다가 1927년에 마침내 ‘금강도총본부’ 간판을 걸었다. ‘금강(金剛)’이라고 한 이유는 토암이 금강산에서 대도를 자각하여 처음부터 ‘금강도사(金剛道師)’라고 불렸기 때문이며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금강대도’로 개칭을 하게 된 것은 1962년 문교부의 종단 통합 지시에 의하여 단군계 ...

2025-06-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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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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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윤음은 구한말 사도(邪道)를 배척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척사귀정(斥邪歸正)의 명분으로 천주교를 금하기 위해 내린 왕의 유서(諭書)이다. 척사윤음은 구한말 척사론을 국가차원의 금령으로 강화시켜 전국에 배포한 것으로 1801년 신유박해 직후 관찬사료에 등장한 후, 병인박해 때까지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탄압하는 명분이자 수단이었다. 기해박해 직후 내려진 1839년 헌종의 척사윤음이 대표적이다. 헌종의 척사윤음은 기해박해를 주도한 검교제학(檢敎提學) 조인영(趙寅永)이 작성하였고, 하류층까지 널리 읽히고자 한문본과 언해본을 묶어냈다. 내용은 반포의 배경과 취지를 밝히고 천주교를 금하는 이유와 천주교 교리의 문제점을 조목별로 제 ...

2025-10-1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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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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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에서는 해방을 맞아 귀환한 전재동포(戰災同胞)들을 구호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재동포구호소를 설치하고 구호사업을 실시하던 중 부모 없는 고아들의 보호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구호소 부소장인 송도성(宋道性)이 1945년(원기30) 12월에 우선 18명의 고아들을 데려다가 황정신행(黃淨信行)의 소유 건물인 동대문병원에 수용했다. 1946년(원기31) 2월에 다시 고아들을 서울 한남동의 정각사(正覺寺)에 옮기고 ‘서울보화원’이라 이름했다. 보화원이라는 명칭은 보화당한약방(普和堂韓藥房)에서 유래한다. 송도성은 초기 18명 이외에 거리를 떠돌던 고아들을 모집하여 수용함으로써 교단 3대사업의 하나인 자선사업을 ...

2025-07-1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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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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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은 1970년 전태일의 분신과 유신체제에서 극에 대한 한국사회의 모순과 불의한 현실 속에서 고난받는 ‘민중’에 적극적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전개된 상황신학이자 실천신학으로 사회 기층에 위치한 민중의 고난에서 그리스도교의 고난을 보고 십자가를 민중 해방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1975년 복음의 민중적 성격을 주장한 안병무의 오클로스론 정치적 구원을 신학적 주제화한 서남동의 ‘민중의 신학’을 시작으로 1979년 한국에서 열린 CCA 신학협의회에서 ‘민중신학’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남미 해방신학과 더불어 한국적 상황신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70년대 1세대 민중신학이 권력의 관점을 정당화하는 정통신학을 비판하 ...

2025-07-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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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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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7월 서울 동작구 신대방2동에서 처음으로 개척예배를 하고 같은 해 10월 창립예배를 하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 1983년 같은 장소에 만민기도원을 설립한 뒤 1984년 동작구 대방동으로 교회와 기도원을 이전하였다. 이후 다시 신대방 2동을 거쳐 1991년 2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교회를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흔히 ‘만민중앙교회’로 불린다. 1990년대 들어 교세가 대폭 확장되었으며 1993년 2월 미국 <크리스챤 월드(The Christian World)>지(紙)에 세계 50대 교회로 발표되었다. 이재록은 직통계시에 의존한다. 하나님‧예수님‧선지자‧제자‧사도들의 모습을 보거나 전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나 ...

2025-07-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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