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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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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박태선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기독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16세에 공부를 위해 동경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은 계속되었으며, 많은 임종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은 자기 신앙생활의 정도에 따라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1944년, 28세에 귀국하였고, 김치선 목사의 남대문 장로교회에 출석하며 모범적인 기독교 신앙을 이어갔다. 성결교회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서 강렬한 ‘불의 성신 역사’를 체험한 후 스스로를 특별한 사명자로 인식하였다. 1948년 말 경, 박태선은 기독교 조사인 이태윤의 소개로 50대 초반의 신령한 한 여성을 소개 받았는데, 그녀가 바로 정득은 ...

2025-07-0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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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대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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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대도상전(無量大道祥傳)≫과 ≪무량대도전(無量大道典)≫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신앙촌락의 구성과 인간관계』(장철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1976)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편 한국종교학회 1985) 『한국의 신흥종교』(노길명 가톨릭신문사 1989) 『한국신흥종교』(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류병덕·양은용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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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GI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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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학회의 한국 내의 유입은 1960년에 가황사 주지 박소암이 일련정종으로 개종·입신하게 된 것, 1962년 대구·부산 지역의 사업가 최규원의 창가학회 입신, 1963년 재일동포 나카이 준코(中井順子, 한국명 이순자)가 내한하여 창가학회 지부결성을 위한 활동을 한 것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내 일련정종과 창가학회와의 관계가 한국 내에도 반영되어 양자는 통일된 조직을 갖출 수 없었다. 1975년 국제창가학회(SGI)가 결성되자 마침내 같은 해에 한국에서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중앙사무국을 설치하고, 18개 총합본부, 77개 지역본부로 구성된 통합조직으로 출발하였다. 1991년에 창가학회가 일련정종과의 관계를 청산한 ...

2025-10-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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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상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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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1971년 발족된 통일사상연구원은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으로 종교, 과학 및 여러 사상의 통일을 도모해서 하나님의 복귀섭리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 요소가 되고 있던 공산주의를 극복하며, 나아가서 하나의 통일된 중화문명(中和文明) 세계를 창조하고, 그 터 위에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 운영되었다. 이상헌 원장을 중심하고 다각적인 연구와 분석의 결과로써 1973년에 『통일사상요강』 초판이 발행되었고, 1993년 4월에 증보된 『통일사상요강』이 발행되었다. 주요 내용은 신관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고찰을 한 원상론(原相論)과 존재론, 인간관을 함의한 본성론, 가치론, 교육론, 윤리론, 예술론, 역사론, ...

2025-10-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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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건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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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불교

천화불교를 창종한 이숙봉(李淑峰)․이정봉(李貞峰)․이희수(李喜秀)는 단군의 계시로 사직공원 안에 단군성전과 사직기념관의 건립을 발원한다. 1960년 사직공원에 있던 무허가 건물을 사들여 천관암(天官庵)이라고 명명하고 1962년 숙원이던 단군성상(檀君聖像)과 사직신(社稷神)을 봉안하였으며 역대창업주와 선열의 위패를 봉안한 뒤 국운회태백일기도(國運回泰百日祈禱)를 드린다. 1963년에는 가건물을 천막으로 위장하고 비밀리에 높게 개축하여 다시 단군신강과 사직신상을 9척으로 재조성한다. 그리고 매년 3월 15일과 10월 3일에 단군사직대제(檀君社稷大祭)를 봉행한다. 1966년에는 사단법인 단군숭모회(檀君崇慕會)와 함께 단군성전을 ...

2025-07-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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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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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氣天)은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던 산중무예를 박대양(1952~)이 당대 최고의 도인이었다는 원혜(元慧)로부터 전수받고 70년대 초 하산하여 이를 가르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초 그의 수제자들이 서울에 수련원을 세워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습을 시작하고 90년대 중반이후 대학동아리나 직장인들 사이에서부터 퍼져나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기천의 수련과정은 정적인 정공수련(靜功修練)과 동적인 동공수련(動功修練)을 거쳐 최고의 단계인 마음을 닦는 심법(心法)이 있다. 그러나 심법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도장에선 정공과 동공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

2025-06-3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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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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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이란 천지가 처음으로 새로 생김(天開地闢), 어지러운 세상이 뒤집혀 다시 평화로워짐(治亂太平)의 의미로 동양 고대에서부터 사용되던 개념이다. 이 말은 일찍이 중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여러 역사책 속에서 그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천지개벽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을 선천, 그 이후를 후천이라 한다. 이와 같은 개벽과 선후천이라는 개념이 한국 신종교 창시자들에 의해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살았던 시점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선천, 그 이후를 후천으로 보고 선천의 특징은 묵은 세상, 낡은 세상으로 불평등·불합리·부조리한 세상이었으나 후천의 개벽된 세상은 ...

2025-10-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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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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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동경대전(東經大全)』·『용담유사(龍潭遺詞)』·『시의경교(是儀經敎)』·『현각정요(玄覺正要)』·『교해심서(敎海心書)』·『시천교전(侍天敎典)』·『정리대전(正理大全)』·『수도전서(修道典書)』·『대도진원(大道眞元)』·『무극진리(無極眞理)』 등이 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의 유사종교』(村山智順, 1935)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동학의 교단 분열과 한국 신흥종교」(오병무, 『신종교연구』2, 2000)

2025-10-1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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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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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손병희를 비롯한 오세창 권동진 양한묵 등의 천도교 문명파는 국권회복을 위한 문명개화운동을 벌여 나가고자 입헌국가건설을 위한 단체 결성 신문출판운동 국민계몽운동에 주력했다. 그들은 특히 신문을 세계문명의 최급선무이자 국민계몽교육의 수단으로 인식하여 1906년 6월 『만세보』를 창간하였다. 창간목적은 “인민의 지식계발에 의한 국가문명의 진보”에 두었고 구체적으로 “학문증진 식산발달(殖産發達) 국위국광(國威國光)을 목표로 삼았다. 사장은 『한성주보』(188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신문) 주사(主事)였던 오세창이 맡았고 발행 겸 편집에 신광희 총무 겸 주필에 이인직이 배치되었다. 만세보는 「천도교전(천도교전)」 「현기문 ...

2025-07-0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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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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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경(地符經)』은 『천부경(天符經)』·『인부경(人符經)』과 함께 우리민족에게 고대로 부터 구전해 오던 경전으로 주장되고 있다. 『천부경』은 많이 알려졌으나 이 경은 이름만 전해지다가 최근에 원문이 발견 되었다. 이 경 역시 『천부경』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구전되다가 녹도문(鹿圖文)으로 되었을 것이나 뒤에 누군가에 의해 100자의 한문으로 풀어써져 전해져온다고 한다. 『지부경』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십종유종십 정구포일 일구백굉 동십생일 절화삼삼 천일관오칠 지일관사팔 인일관육구 신구부구오 극도본 칠팔화상 행삼팔정 건곤배합 통약구육 육육대화 십십이기 삼십육궁 십삼월국 신인백팔 십십행도 대신기 누진일구 굉동화십 십시유시 ...

2025-10-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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