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44건
금강불교
김치인은 1888년 이용래와 함께 ‘오방불교’를 설립하여 종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1895년 동학농민혁명을 따라 오방불교 내에서 봉기를 계획하였던 남학운동이 문제가 되어 김치인과 김복래 등 교단 간부들이 처형을 당하게 된다. 김치인이 사망한 후 그동안 후천개벽의 사명을 가진 구세주로 여겨졌던 교주의 사망은 신도들에게 큰 충격이 되었으나 김경배(金敬培 혹은 坦培)가 오방불교를 계승하고 김선기(金善基) 김용배(金庸培) 김영집(金永執) 장인근(張寅根) 등의 계속된 포교로 김치인의 죽음은 교도들의 전체적인 횡액을 구제하기 위한 거룩한 순교로 숭앙받게 된다. 더불어 교세도 성장하여 용담·무주·진안·임실·고산·전주 ...
2025-06-03 17:20

2
금강대학교
대한불교천태종
본교는 충청남도 논산군 상월면 상월로 522에 위치한다. 본교는 불교정신과 천태종의 중창이념 아래 참된 인간성 전문적 지식 창조적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여 자신을 완성하고 국가와 세계의 발전에 공헌하게 함으로써 지혜와 자비가 차별 없이 모두에게 충만한 이상세계의 실현함을 건학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른 교육 목표는 첫째 자신의 참 성품을 찾아 사회를 선도․봉사하는 유능한 지도자 양성 둘째 정보 활용 능력을 갖추고 창의적인 안목과 열정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전문인의 양성 셋째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국제적 소양을 겸비한 세계인 양성이다. 2002년 11월 7일에 개교하여 동년 11월 16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대학설립 ...
2025-06-03 17:15

2
금강대신
보화교
보화교 창립자인 김환옥(金煥玉)이 신력(神力)을 얻어 도통한 후 스스로 자신을 지칭한 말.
2025-06-03 17:13

2
금강경
기타
본경의 범어명은 바즈라체디까 쁘라즈냐빠라미따 수뜨라(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인데 ‘금강저(金剛杵)와 같이 번뇌․집착을 재단하는 지혜의 완성[般若波羅蜜]의 경전’이라는 뜻이다. 이 경전은 법회인연분(法會因緣分)에서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까지 총 32분(分)으로 구성되며 내용의 핵심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운용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 중앙아시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지에 보급되어 크게 유행하여 팔백여가(八百餘家)의 주석서가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논서들이 만들어 졌다. 특히 선종(禪宗)의 제6 ...
2025-06-03 17:01

2
금강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에서 1985년 1월 1일부터 발행하고 있는 월간지.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3 17:00

2
극원철학
원종교
김중건은 스스로 자신의 사유을 ‘극원철학’이 라고 사용했다. 특히 극원(極元)은 주렴계가 태극도 설에서 말한 태극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김중건의 극 원철학은 유(儒)
2025-06-03 16:58

2
귀화절
각세도
각세도 도조인 이선평의 사망일인 1월 17일
2025-06-03 16:52

2
귀임도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각 관에 수제자 4명을 도주로 임명하여 이를 관리하도록 하였고 자신은 본부에서 각 관을 통솔하였다. 그러나 당시 각세도 내부에는 많은 분란이 있었으며 이선평 생전에도 분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귀임도는 이선평의 사후 당시 동관의 도주였던 이상제가 설립한 분파이다. 이에 대해 김홍철은 당시의 동도주가 이상제였다고 밝힌데 대해 이강오는 동도주를 이성환 혹은 이상제 등으로 혼재하여 사용하고 있다. 동관 내부에서 도주의 교체 등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 각세도 내부의 분열이 다양한 양태로 표출되었던 것이 도주에 대한 인식 혼란의 원인인 것 ...
2025-06-03 16:52

2
귀명원불
천화불교(天華佛敎)
천화불교(天華佛敎)에서 석가모니불을 부르는 말.
2025-06-03 16:29

2
권중석
대종교
권중석은 1889년 4월 23일 경상남도 밀양군 북면 위양리에서 출생했다. 1911년 관립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4년간 토지조사국과 군서기 등에 종사하였으며 안양고등공민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1945년까지 교육계에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시흥 원예협회장 시흥군 선거구 선거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일찍이 대종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1949년에 참교(參敎)가 되었다. 1950년 지교(知敎)가 되고 삼일원 대덕에 피선되었다. 1953년에 상교(尙敎)가 되었으며 이듬해 안선시교당(安善施敎堂) 전무(典務)가 되었다. 1959년 정교(正敎)로 승진되면서 대형(大兄) 호를 받았고 같은 해 종사편집부(倧史編輯部) ...
2025-06-03 16: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