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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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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1934년 11월 이토암 대성사부가 타계하자 처음에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신촌리에 양례(襄禮)하였는데 1946년에 연기군 금남면 영대리 삼태봉으로 이장하였다가 2001년 충남 논산군 노성산의 훈풍로심(薰風露心; 향내음 바람에 꽃 마음이 드러난 것)혈로 다시 이장하였다. 이곳은 토암 자신이 “만고에 신령스런 지경의 천연성지로다…이곳은 네 선생과 팔사(八士)의 몸이 거처할 땅이니라.”할 정도로 명당대지로 알려져 일찍부터 성지로 꼽혀왔으며 수 십 년간 종단의 숙원사업이었다. 노성산은 일매팔지(一梅八枝)의 형국으로 옥룡자(玉龍子)가 보고 “鷄鳴九曲天將曉하니 馬路春風北麓肥라. 天下名山何處在오. 舞童山下亂花飛”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

2025-07-0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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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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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韓山)에서 출생하여 예산(禮山)에서 성장하였다.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山寺)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했는데 계룡산에서 기도 중에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남선리(南仙里) 석각골에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1958년 그녀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건평 10여 평으로 된 목조 와가를 설계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겨우 상량을 해 놓고 중단한 채 4년을 방치하였다. 1963년 경작답을 매각하고 청양 사람 조병호(趙柄鎬)의 도움으로 다시 착공했으나 경비부족으로 완전한 내부 ...

2025-07-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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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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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사회단체의 보천교 박멸운동에 이어 내부의 혁신운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차경석이 1926년 2월에 60방주 전원을 해직하고 대신에 전국의 교인 조직을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이라는 이름으로 양분하였다. 당시에 북선을 ‘선북교인연합회’라 하고 그 책임자를 임치삼(林致三)으로 남선은 ‘보천교남선총무소’라 하고 그 책임자를 김정곤(金正坤)으로 임명하였다. 남·북선 체제는 같은 해 5월경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폐지되었다. 1927년 6월에 60방주제가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민중과 유토피아』( ...

2025-07-0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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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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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에서 격년으로 행하는 남북통일기원법회.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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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기원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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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갱정유도는 도조 영신당주 강대성이 ‘대화중흥국’을 주창하고 2세 교주인 계도선사 김갑조가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선언 4대 항목’을 선포하는 등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적 실천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연장선상에서 갱정유도는 1984년 3월 20일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 인근 임진각에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기원대제를 봉행했다. 갱정유도인 600여 명과 내외귀빈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기원대제는 ‘천황상제존위(天皇上帝尊位)’를 모신 제단에서 갱정유도의 전통적 종교의식에 따라 봉행되었다. 기원대제가 끝난 뒤에는 대통령과 남북한동포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각각 채택되었다. 참고문헌 ...

2025-07-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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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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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본부

김해경은 1950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에서 부친 재만(在萬)과 모친 윤금자(尹金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군복무 후에는 미용사 약탕기장사 물장사 인테리어 조경사업 등의 일을 했고 ‘목련의 향기’ 등 유행가 작사도 했다. 26세 되던 1975년 6월 어느 날 단군신령(檀君神靈)의 인도에 따라 아차산으로 이끌려 가 그곳에서 단군성령의 명에 따라 3일간 약수만 마시며 눕지도 자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2일째 되는 날 한 스님이 올라와서 홑이불과 옥수그릇을 주면서 정성드리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후 49일간 물만 마시며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를 시작하고 1주일째 되는 날 단군성령이 ...

2025-06-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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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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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동학교

상주동학교의 창립자.

2025-06-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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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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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

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시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경상남도 기장으로 나와 숙부가 지도하는 물법수련 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김봉남 사망 후 김해 교인들을 모아 자기 집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한 때 수백 명의 신도를 얻었으나 제주도로 돌아가 불승(佛僧)이 되었다. 아미타불과 봉남을 신앙하였다. 그는 봉남교를 불교적으로 만들어 포교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봉남이 가르친 물법치료와 주송수련은 그대로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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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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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현원교

그는 원래 임제종의 신자였으며 1929년 불법대회(佛法大會)라는 불교조직을 만들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원각현원교를 창립하였다. → 원각현원교 참조.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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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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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중앙대종교의 창립자 김청탄의 본명.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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