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대일각

|

대종교

대종교 총본사는 대일각과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며 그 산하에 도본사 시교당 및 수도원을 두고 있다. 대일각은 대종교의 모든 교정을 통솔하는 최고기관으로 총전교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전교가 한 뜻으로 천진전을 수호하며 수도청사를 하는 집무기관이다. 참고문헌 : 대종교 홍범 제37조

2025-07-03 17:30

17

대동학연구원

|

천진교 제 2대 교주인 해심 김덕경의 장남 김 진묵(金振黙)이 1983년 충남 6.20사업으로 받은 이 전보상금으로 대전시 중구 민영동에 설립한 분파.

2025-07-02 01:23

17

대관장단(First Presidenc)

|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15사도들의 통치를 받는다. 그들은 예언자 선지자 계시자 등으로 간주되는데 사도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사도직에 있던 자가 교회의 대관장직을 맡는다. 대관장은 영감에 의지해서 자기를 도울 두 명의 사도들을 보좌관으로 선출한다. 이들로 구성된 것이 대관장단(the First Presidency)이다. 대관장단은 교회의 최고 통치기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과 교육 지역 교회의 설립과 지원 그리고 교회 안팎의 복지 등에 관한 교회 전체의 일을 관장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대관장단은 제일회장단으로 불린다.

2025-07-02 01:07

17

단군연구회

|

세계종교

신철호는 1989년 10월 5일 밤에 하느님으로부터 결재천문(決裁天文)을 받아 서울 도봉구에서 김정희와 함께 세계종교를 창립했다. 또한 그는 한때 ‘단군연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단군연구회는 우주종교진리회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철호가 종교활동을 겸하면서 본회의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단군연구회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신철호가 단군정수회의 이춘상과 손을 잡고 1965년부터 『정수회보』를 간행하였으며 『한국근대민중종교사상』에 「단군사상과 대종교」를 주제로 논고를 싣기도 하는 등 저작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점을 통해 볼 때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된 것이 단군연구회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

2025-07-01 23:10

17

단군성조숭봉회

|

단군계 신종교 새종교원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0

17

녹표

|

제화동대도

제화동대도(帝和東大道)의 교리사상. 제화동대도 신도들 평소 의복에 녹표(祿標)를 부착하는데 20세 이상은 가슴에 남좌(男左) 여우(女右)로 한다. 본교에서는 이를 불사약으로 생각한다.

2025-07-01 01:59

17

남도본사

|

대종교

대종교에서는 창립 후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도본사를 두도록 하였다.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담당: 강우)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담당: 서일) 서도본사를 상해(담당: 신규식 이동녕)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담당: 이상설)에 설치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한을 관할하는 남도본사만이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대종교에서는 남1도 남2도 남3도 남4도로 구역을 나누어 각 곳에 도본사를 설치하였고 부여와 성주 부산 광주 밀양 상주 공주 등에 지사(支司)를 두었으며 각지에 시교당을 두고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5-07-01 00:58

17

나철유서

|

대종교

나철은 1916년 8월 4일에 구월산 삼성사(三聖祀)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대종교의 도통을 김교헌에게 전수한다는 내용을 남기고 오전 11시 폐기법(閉氣法)으로 별세하였다. 이때 그는 유서를 남기는데 유서는 ①순명삼조(殉命三條) ②유훈(遺訓:密諭) ③전수도통(傳授道通) ④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 ⑤가중유서(家中遺書) ⑥별봉유서(別封遺書) ⑦이세가(離世歌)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별봉(別封)한 유서가 63편이 있었고 중광가(重光歌) 54장(章)이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00:51

17

김지한

|

개천경조회

김지한은 1934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옥곡동에서 출생하였다. 개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무역대학원을 수료하였으나 일찍부터 기(氣) 수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새한국문화교육원’이라는 수련도장을 열고 회원을 모아 수련을 시키며 기를 통한 질병치료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 민족이 지나치게 외래사상에 물들어가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단군신앙과 사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83년에 대구시 서구 평리에서 개천경조회를 설립하였다. 1997년에는 교단을 대구시 북구 조야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신도들에게 단전호흡에 의한 기수련과 실천조항 등을 가르쳤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행보를 보였는데 한국국사찾기 ...

2025-06-30 23:34

17

김장호

|

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17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