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보절
각세도
각세도 도조인 이선평이 처음 계시를 받은 8월 15일
2025-07-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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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당산나무는 그 자체로 신목(神木)으로서 제당(祭堂) 역할을 하며 동시에 회의 공간 휴식공간으로도 기능한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격은 이외에도 산신각 장승 솟대 등이 있다. 당산목은 솟대(짐대)와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산나무는 주로 느티나무나 팽나무 떡갈나무 등 장수목(長壽木)이며 은행은 열매 냄새 때문에 수호목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이외에 감나무나 모과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등도 드물게 여겨진다. 마을 입향조(入鄕祖)가 심은 수백 년 된 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당산제 등의 마을굿의 치제 대상이며 개인적으로 길흉사를 점치거나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2025-07-0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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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1895년 고종 32년 김홍집 내각이 문명개화의 일환으로 백성들에게 상투를 자르게 한 명령.
2025-07-0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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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천조광명도덕보본원
1947년 정요순이 창립한 광명도의 별칭 중 하나.
2025-07-0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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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연구회
세계종교
신철호는 1989년 10월 5일 밤에 하느님으로부터 결재천문(決裁天文)을 받아 서울 도봉구에서 김정희와 함께 세계종교를 창립했다. 또한 그는 한때 ‘단군연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단군연구회는 우주종교진리회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철호가 종교활동을 겸하면서 본회의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단군연구회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신철호가 단군정수회의 이춘상과 손을 잡고 1965년부터 『정수회보』를 간행하였으며 『한국근대민중종교사상』에 「단군사상과 대종교」를 주제로 논고를 싣기도 하는 등 저작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점을 통해 볼 때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된 것이 단군연구회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
2025-07-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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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령회중앙본부
단군숭령회
단군숭령회의 초기 명칭.
2025-07-0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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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떠오르기
아봐타 프로그램의 창시자인 해리 팔머(Harry Palmer)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의식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펴낸 책이다. 원제는 Resurfacing: Techniques for Exploring Consciousness이며 1997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청사진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의지를 깨우고 주의를 단련해서 스스로의 의식을 확장하고 결국에는 온전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봐타 프로그램의 기초 과정에 해당하는 연습 과정이 제시된 워크북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출판되었고 아봐타 의식 개발 프로그램의 연습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2025-07-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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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님
국제도덕협회
국제도덕협회 일관도의 신앙 대상으로 우주의 최고 주재자로서 하나님 조물주 창조주 천주 등으로 불린다. 만물을 낳은 모체로 본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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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유서
대종교
나철은 1916년 8월 4일에 구월산 삼성사(三聖祀)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대종교의 도통을 김교헌에게 전수한다는 내용을 남기고 오전 11시 폐기법(閉氣法)으로 별세하였다. 이때 그는 유서를 남기는데 유서는 ①순명삼조(殉命三條) ②유훈(遺訓:密諭) ③전수도통(傳授道通) ④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 ⑤가중유서(家中遺書) ⑥별봉유서(別封遺書) ⑦이세가(離世歌)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별봉(別封)한 유서가 63편이 있었고 중광가(重光歌) 54장(章)이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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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제화동대도
김형규는 1891년 3월 29일 경남 합천군 쌍벽면 안계리에서 출생했다. 27세때 보천교에 입교하여 치성 절차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보천교의 타락과 신풍운동이 일어나 대립된 양상을 보고 보천교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양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1947년 해인사에서 보화교 교주였던 김환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녁 치성 중 ‘백의초상관음불(白衣肖像觀音佛)’이란 소리가 크게 울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있는 부처가 바로 김환옥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김환옥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보화교에 입도하게 되었고 김환옥에게서 ‘대봉’이라는 호를 받게 된다. 1954년에 김환옥이 사망하고 1959년에 원평 보화교 ...
2025-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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