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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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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김좌진은 1889년 1월 24일 충남 홍성에서 형규(衡奎)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김옥균이 그의 백부이다. 3세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으며 1904년 서울로 간 형을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맡았을 때는 노비문서를 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2천 석의 농토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05년 서울로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7년 고향으로 돌아가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자기 집을 학사로 제공하였으며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운영비로 썼다. 1911년 북간도에 독립사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자금조달을 하다 발각되어 2년 6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에 ...

2025-06-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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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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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교

동천교(東天敎)의 창시자.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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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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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교

임무교(壬戊敎)를 창립한 김종렬(金鍾烈 1899-1966)은 1899년 8월 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종부리에서 김진국(金鎭國)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7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신앙하였고 이상호의 대법사(大法社)에도 적극 가담하여 중앙통제위원(中央統制委員) 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4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쌍룡리 자기 집에서 임무교를 창립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 사망했다. 증산 강일순을 옥황상제로 신앙하였고 특별한 독자적인 사상이나 주장은 없었다. 참고문헌 :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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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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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이 창립한 화랑정신선양회에서는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고 홍익인간 사상을 널리 보급시키며 단군사상의 결정체인 화랑정신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화랑정신의 표상인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사업을 중시한다. 따라서 본회에서 설립한 사당인 홍덕전 안에는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춘계대제(3월 27일)와 추계대제(9월 27일) 김유신장군 탄일(10월 5일) 등에 향례를 올린다. 춘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이 단석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비법을 얻었고 그 후 석실에서 7년간 고행하여 대각한 날을 기리기 위함이고 추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추계향배라는 점에서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행하고 ...

2025-06-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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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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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통일신라 혜공왕 때의 관리이자 방술가(方術家)·병술가(兵術家)이다.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윤중(允中)의 서손(庶孫)이다. 일찍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천문(天文)·지리(地理)·역수(曆數)와 음양학(陰陽學)·점복술(占卜術)을 배웠으며 ‘둔갑입성법(遁甲立成法)’을 창안하여 은형술(隱形術)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는 귀국 후 천문·역수의 일을 담당하는 사천박사(司天博士)가 되었고 뒤에는 양주(良州:지금의 양산) 강주(康州:지금의 진주) 한주(漢州:지금의 경기도 광주) 등지의 태수를 지냈다. 병법에도 능해 패강진(浿江鎭)의 두상(頭上)으로 있을 때 농민들에게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가르쳤으며 술법(術法)으로 메뚜기 ...

2025-06-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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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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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연합도관

광화연합도관(光華聯合道觀)의 창시자.

2025-06-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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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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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도교(道敎: 봉남계)를 창립한 김덕태(金德泰)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영도에 거주할 때 병이 있어 김봉남의 부인 박씨에게서 물법치료를 받고 효험이 있은 후로 봉남의 신자가 되었다. 봉남이 사망한 뒤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환자들을 시술하면서 천지의 어머니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자기에게 강림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그래서 신자들은 김덕태를 ‘천지어머니’라 신봉하였으며 한때 수백 명의 신도가 있었다. 법단에는 천지어머니라고 하는 노고(老姑)의 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상은 김덕태의 얼굴과 흡사했다. 수련은 태상노군을 주송하면서 단식을 했고 이런 수련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했다. 참고문헌 : 『 ...

2025-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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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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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김덕명은 1895년 금구 용계에서 태어났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고 그 해 10월 11일 경상도 상주의 화령 근처에 있는 전성촌으로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도를 받았다. 1887년에는 원평에 동학의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고 포교에 힘썼다. 그는 교조신원운동 과정에서 원평집회의 주역이였으며 1894년 4월 무장봉기 이후 원평지역 농민봉기 황토현 전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원평 전투의 패전으로 동학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김덕명은 이후 금산면 장흥리 안정사동에 약 1개월간 숨어 있다가 붙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고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손화중·최경선·성두환(成斗煥)과 함께 처형되었다.

2025-06-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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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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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법회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포교사로서 1925년 중앙포교원(中央布敎院 당시 경성부 이화동 1)에 부임한 김기선(金基瑄)은 매월 24일 관음제일에 모인 신자들을 중심으로 감로법회를 조직하였다. → 감로법회 참조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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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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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법회

925년 감로법회를 창교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포교사였다고 하며 동사의 중앙포교소(당시 경성부 이화동 소재)에 재임 중에 매월 24일 관음제일에 모인 부인들을 주축으로 감로법회를 조직하였다. 이외에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감로법회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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