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치성단
천성도
천성도에서는 치성을 드리는 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드리는데 이를 치성단이라 한다. 치성단에는 신단(神壇)이나 도단(道壇) 등이 있다. 또한 치성단에는 도장(道章)을 붙이는데, 그 중 도단에 붙이는 도장의 내용을 보면, ‘천성도’의 세 글자가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는 태양진군(太陽眞君)과 태음진군(太陰眞君)이 있으며, 그 상하에는 충(忠)과 효(孝), 좌우에는 덕(德)과 화(和)가 쓰여 있다. 또한 네 모서리 구석에는 심외무신(心外無神), 신외무심(神外無心), 도외무성(道外無誠), 성외무도(誠外無道)가 쓰여 있다. 이러한 도장의 의미는, 천성도의 천성이 곧 도(道)이며, 도의 근원이 바로 태양진군인 햇님과 태음진군인 달님 ...
2025-10-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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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강강서
대전단군전
대전단군전은 이남성(李南星)이 창립하였으나, 주요 교리와 사상에 있어서는 이민우(李敏雨)를 지도자로 모셨다. 이민우는 자신이 신명(神明)을 받아서 썼다고 하는 『춘강강서(春岡降書)』를 토대로 기존과 다른 독특한 사상을 전개한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십자원전도(十字○田圖)’, ‘오판도(午板圖)’, ‘운도이론(運度理論)’, ‘삼신신선론(三神神仙論)’등이며, 이를 기반으로 신행가 수련을 행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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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천도교
최린은 양반 집안에 태어나 13세 때 밀양 박씨와 결혼했고, 1896년에 함경남도 관찰부 집사가 되었다. 1902년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유학생들의 비밀결사로 정부개혁의 쿠데타를 음모한 일심회(一心會)에 가담했다가 계획이 발각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손병희를 만났다. 1904년 황실특파유학생으로 뽑혀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고, 1906년 메이지대학 법과에 진학했다. 1907년 3월 30일 와세다 대학에서 개최된 모의국회에서 학생들이 한국의 왕을 일본 황족으로 하자는 안을 제출하자 이에 학장을 만나 항의하고 학생들의 퇴학을 요청하였다. 1908년 대한학회 회장, 1909년 대한흥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메이지 대학을 ...
2025-10-1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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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등대
김백룡은 서울 용산에 있는 경용암과 도봉산 삼성전에 출입하면서 단군신앙을 하였고, 1958년 3월 20일 새벽 명상 도중에 단군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신선도의 주역이 되어 후천 완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니,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위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주력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아울러 이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식생활·성생활·호흡법 등을 개혁하는 수련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또한 1966년 그는 도봉산 삼성전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단군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청심등대’를 건립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따라서 그는 1967년 10월 3일 대전 보문산 국립공원에서 ‘청심등대원방각수도탑(淸心燈臺圓方角修道塔)’·‘청 ...
2025-10-1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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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난경
금강대도
『청난경(淸難經)』은 토암 이승여(土庵 李承如)에 의해 1927(개도54)년에 여섯 번째로 반포된 경으로 전1권 3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략 25,900여 자로 되어있다. 이 경의 목차에는 ‘우(友)’가 13번이나 드러나는데 ‘우’는 금강대도의 스승을 비유하여 밝힌 것으로, 건곤으로 삼불성인이 출세함을 밝히고 있다.(以乾으로 爲道하니 道之坤이 釋哉인저. 正一爲之하니 如一如三之夫를 酷水而觀之면 悟友成洛哉-ㄴ저. 是故로 君子之三孚故는 無始有終也니라(「釋友章 第一」)) 또한 경의 명칭에서 드러나는 ‘청난(淸難)’은 금강대도에서 수도하는 제자들은 청(淸: 청결·청정·청백·청렴 등)해야 하고, 금강대도에서 수도하여 군자 ...
2025-10-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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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단군국교
김일포는 14때에 보천교에 입교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생업인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자택에 구천상제하감지위(九天上帝下鑑之位), 옥황상제(玉皇上帝)하감지위, 칠성군응(七星君應))하감지위라고 하는 삼위신위(三位神位)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서울시 종로2가 낙원동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의 중간에 모셔놓고 매월 초삼일에 천제를 지냈다. 천제를 지낼 때에는 『천부경』을 사용했으며, 그 때마다 축문을 지어서 봉독하였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이 조직의 목적은 일심상생거병해원(一心相生劫病解寃)이었고, 시대강령으로 영천(影天)·명덕(明德)·정편 ...
2025-10-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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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교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 한 후, 교세가 확대되자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네 사람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였다. 초기의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이 사망하기 이전에 이미 교단명칭을 ‘천인교’로 바꾸어 독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도주는 이선평에 의해 장명성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김해제는 천인교를 포교하다가 사망하게 되고, 한계택(韓啓澤)이 그 뒤를 잇게 되며, 다시 한백우가 교단을 이끌었으나 교세가 미미하여 마침내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 ...
2025-10-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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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연합회
천도교
3·1운동 이후 천도교 지도자들이 대부분 감옥에 갇히자 천도교 청년들은 지도자로 나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 첫 걸음이 1919년 9월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결성이었다. 청년들은 1920년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바꾸어 조직을 확대하면서 문화운동을 표방했다. 그러나 천도교 내부는 지도부간의 노선갈등이 일어나 1차 신·구파로 분화되었다. 구파는 천도교청년회가 중심이 되고 신파는 혁신파로서 아래로부터의 평등을 주장하고, 지방분권과 중의제(衆議制)를 촉구하는 등 천도교 내부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의암 손병희가 환원한 후 양파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혁신파는 천도교단으로부터 일탈하여 천도교연합회를 설립하였다. 천도교연합회의 중 ...
2025-10-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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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대교당
천도교
천도교 중앙총부에서는 대교당 신축과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3·1운동의 전 해인 1918(포덕59)년 4월 4일 부구총회(部區總會)에서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 건물을 신축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각 연원을 통해 매 교호당 10원 이상씩의 건축특성금을 10월 28일 대신사 탄신기념일까지 내도록 하였다. 모금이 시작되자 총독부는 기부행위금지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한성은행(漢城銀行)에 3만 원, 상업은행(商業銀行)에 3만 원, 한일은행(韓一銀行)에 6천 6백 원 등 모두 6만 6천 6백 원의 예금을 동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방해를 무릅쓰고 많은 교인들은 논밭과 황소 등을 팔아 성금을 냈다. 각종 어려움 끝에 교당건축성금 ...
2025-10-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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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신고
국조단군성전천진전, 환중교
국조단군성전천진전에서는 경전으로 『천경신고』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경전 속에는 『천부경』·『삼일신고』·『개벽경』·『천지부모경』·『삼진경(三眞經)』 등이 들어 있고, 이들 경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군계 경전들을 종합하고, 그에 해설을 추가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환중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은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칠성경』·『산신경』·『용왕경』·『천경신고』 등이 있다. 따라서 환중교의 『천경신고』는 『천부경』이나 『삼일신고』 등이 포함되지 않은 독립된 경전이라는 점에서 국조단군성전천진전의 『천경신고』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 ...
2025-10-1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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