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정대오

|

영세종주도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를 창립한 정대오(丁大午, 1930~?)는 1930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 대양리 내화촌에서 출생하여 녹동에서 성장했다. 19세시 순천도를 알고 도를 찾아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 남양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살았다. 전봉래 연원으로 류춘래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혹독한 수련을 하였다. 금구면 개전리에 수련소를 짓고 8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아니한 채 수련을 했다. 그러던 중 1964년 12월 26일 『현무경(玄武經)』을 읽다가 새로운 후천역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일생 해야 할 일을 ‘십상성도(十相成道)’로 표현했다.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다. 수 ...

2025-10-09 17:03

15

정각주

|

각세도

각세도계 종파에서는 신도들이 수련할 때 도조 이선평이 수행을 시작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대보송, 깨달음을 얻은 후 하늘로부터 받은 원각주와 더불어 정각주, 정도령신주, 후천주, 탈각주, 보신주 등을 외우게 한다. 정각주는 ‘아아천지(我我天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정각삼세(正覺三世) 동귀영계(同歸靈界)’로 되어 있다. 내용을 풀이하면, 내가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면 무궁한 조화가 바로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되며, 이렇게 삼세의 이치를 바르게 깨닫게 되면 함께 신령스러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각세도천지원리교에서는 정각주의 교리를 해석하여 상생정도(相生正道)로 요약하기도 한다. 곧 양이 음에게 빛을 주 ...

2025-10-09 16:49

15

젊은 합창

|

기독교,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은 1981년 서울 용산구 삼각지 서울교회당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문공부에 등록하며 본격적인 교단의 형태를 갖춘다. 유병언은 목회와 사업을 병행하여 운영하였다. 세간에서는 구원파로 불린다.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회개 후 예수영접을 가르치는 것과 달리, 이미 예수의 보혈로 인간의 죄가 일시에 영원히 용서받았음을 주장하며 제도와 의례 위주의 유형교회를 거부하고 무형교회를 강조한다. 해외포교에 주력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젊은 합창』은 이 교회에서 간행하는 기관지이다. 이 밖에도 월간지인 『새길』, 『만나』, 『코너 스톤(Corner Stone)』 등과 연간지인 『새순』이 정기 발행되며, ...

2025-10-09 16:39

15

전판철

|

인불도

전판철은 190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법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위장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40세에 병세가 악화되어 절명상태에 빠졌는데, 꿈에 자기가 용이 되어 천상으로 오르다 떨어지면서 소생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도 며칠 사이에 두 번 절명하였는데, 천상의 옥황상제와 선녀, 단군할아버지를 보고 깨어났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연발하였는데, ‘네가 어찌 천명을 반대하느냐’는 신설(神說)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방 안에서 눈 감고 있어도 밖의 사물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비롯한 신명들도 보였다고 한다. 때로는 악마들이 나타나 해를 ...

2025-10-09 16:35

15

전연운

|

백도교

전연운은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했다. 처음 동학에 입도하였지만 스스로 득도한 후 동학의 교리를 고쳐 1899년 백도교를 창립하였다. 그는 스스로 후천선계를 개벽한 천부님이고 대원님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믿어야만 미래의 삼재팔란을 면하고 선계(仙界)에 참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백백 의의의 적적적(白白白 衣衣衣 赤赤赤)’이라는 ‘백의적주문(白衣赤呪文)’과 ‘백마주문(白魔呪文)’, ‘백을적궁주문(白乙赤弓呪文)’등을 신도들에게 외우게 했다.

2025-10-09 16:19

15

자아도

|

자아도(自我道)를 창립한 안두승(安斗承, 1906~1985)은 정읍에서 태어났다. 한학과 한의학을 익혀 일찍이 한의업에 종사했다. 1947년 물법교를 창립한 김봉남(金奉南)의 일행이 정읍군 입암면 접지리 용화사에서 물법 포교를 할 때 김봉남의 시술법(施術法)에 감복되어 마침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봉남은 안두승에게 이 지방의 포교를 위촉하고 경남지방으로 떠났다. 그런데 김봉남이 이곳을 떠난지 2년 만에 사망하고 봉남의 제자들이 각기 별도의 교단을 형성해 버렸기 때문에 안두승도 찬물교의 교주가 되어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교명을 ‘청수교(淸水敎)’라 했다가 뒤에 ‘자아도’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조직적인 활동이나 ...

2025-10-09 15:06

15

임도봉

|

중앙대종교

김항이 사망한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대종교’를 창립하고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영곤은 하상역과 함께 대종교를 창립해 활동하였으나, 대종교의 교세가 커지자 이로부터 분립하여 독자적으로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단명칭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김항 당시에 사용하였던 ‘무극대도’의 교단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 임도봉이 도통을 계승하였다. 임도봉의 출생 및 교단 내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강오에 따르면 그녀는 김영곤의 교문에서 수도하던 여신도로 자신이 김항의 정역에 의한 천도명령(天度命令)을 받았다고 하면서 스스로 교주가 되어 교단명칭을 ‘중앙대종 ...

2025-10-09 00:22

15

인천도

|

인천도(人天道)를 창립한 정용은(鄭鏞殷, 1930~1994)은 1930년 경상북도 안동군 진안면 현하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증산교를 알게 된 후 전국의 심산유곡을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다가 1971년에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서 밀교(密敎)를 설립했고, 1972년에 문공부에 등록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의 종교 활동은 전국에 알려져 서울·부산·안동 등지에서 신자들이 찾아오곤 했다. 일시 사회변화에 따라 현실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무고죄로 수감되어 재판을 받은 일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하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보낸 것이 무고죄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활동하다가 1994년에 사망했다 ...

2025-10-08 23:18

15

인천교

|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한 한병수(韓丙洙)는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12임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신도(神道)에 통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태을진인(太乙眞人)이라 하며 서울 필운동에 인천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 이덕제(李德帝)가 계승하여 한국전쟁 이후로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3:17

15

인왕도량

|

인왕도량은 『인왕경(仁王經)』의 내용에 의거하여 설행된다. 『인왕경』은 인왕(仁王)이 16대국의 국왕에게 교시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제왕들을 대상으로 국토의 안일을 위하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 蜜)의 심법(深法)을 설한 경전이다. 『인왕경』의 호국품(護國品)은 여래가 국왕을 향하여 국토를 보호하는 방법을 설한 것으로, 백불상(百佛像)·백보살상(百菩薩像)·백나한상(百羅漢像)을 모시고 100명의 법사를 청하여 백등(百燈)을 켜고 백향(百香)을 사르고 100가지의 꽃을 공양하며, 하루에 두번 『인왕경』을 강독하고 그에 대한 공덕을 설하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인왕도량은 이에 따라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고 100명의 ...

2025-10-08 23:08

15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