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대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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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서 신선이 거주하는 천상계를 33중천으로 구분하고 대라천을 최고의 천계라고 인식한다. 대라천 아래에는 사방으로 8개의 천계가 있어 대라천을 포함하면 33천이 된다. 32천은 음악천 성륜천 월행천 속행천 지혜천 사리천 선법당천 영조천 위덕언천 중분천 주륜천 청정천 상행천 탁사지천 친지천 산정천 주봉천 구탁천 광명천 주행지천 환희원천 파리수천 마니장천 친험안천 유흠지천 험안천 친장엄천 여의지천 미세행천 밀전중천 환영상천 도솔천 대범천이다. 이는 증산교에서 말하는 천계와 유사하다.

2025-07-0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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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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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관 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명성은 이선평이 사망한 후 ‘대각교’를 창립하여 독립한다. 장명성이 사망한 후에 ...

2025-07-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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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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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1책의 필사본. 사험결(沙驗訣)·주마육임정국(走馬六壬定局)·통천규첩법(通天窺捷法)·산도(山圖)·답산가·설심부(雪心賦)·마상시(馬上詩)·금낭시(錦囊詩)·지리종지(地理宗旨)·논산기(論山記)·수파법(水破法)·용호론(龍虎論)·수구론(水口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의 산세를 사방의 사신(四神 주작(朱雀)·현무(玄武)·청룡(靑龍)·백호(白虎))으로 구분하고 함경도 함관령(咸關嶺) 강원도 대관령(大關嶺) 평안도 자모산(子母山)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경기도 삼각산(三角山) 충청도 계룡산(鷄龍山) 경상도 도음산(禱陰山) 전라도 월출산(月出山)을 각 도의 주산(主山)으로 거론하였다. 이 주산들의 힘으로 각 지역의 산세가 뻗어나갔다 ...

2025-07-0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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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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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명

2025-07-0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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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포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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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중심으로 백봉에게 지도를 받던 33인의 비밀결사 조직 중 13인이 백두산 대숭전(大崇殿)에서 백봉신사를 배알하고 일심계(一心戒)를 받음과 함께 단군교(신교)의 포교를 맹세하고 단군교를 포명하는 ‘단군교포명서’를 작성하였다. 나철은 1908년 백봉의 문하인 두일백(杜一白)으로부터 단군교포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단군교포명서의 원문은 1971년에 간행된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홍암신형조천기』 1971년판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대종교 총본사 소장본은 인쇄본 형태로 독립기념관(자료번호 2-000513-000 가로 15.0 세로 21.5 면수 21) 전시자료에 공개되어 있다. 표지상 ‘종팔(倧八)’ ...

2025-07-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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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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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단군에 대한 종교적 신앙은 김염백(金廉白)에 의한 신교와 백봉(白峯)에 의한 단군교의 두 가지 갈래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김염백의 신교가 평안도 일대를 중심으로 포교할 무렵 백두산과 만주 길림성 일대에서는 백봉과 백전(伯佺)을 중심으로 한 33명이 단군교를 포명한다. 백봉의 실제 이름과 신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태백산(백두산)에 들어가 10년간 하늘에 기도한 끝에 단군신명의 묵시를 받고 백두산 석실(石室)에 비전(秘傳)되어 오던 단군의 교전(敎典) 『삼일신고』와 『단군실기』 등을 얻게 되어 단군교를 포명하였다고 한다. 1904년 10월 3일 태백산 대숭전(大崇殿) 동무(東廡) 고경각(古經 ...

2025-07-0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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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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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동대도

제화동대도(帝和東大道)의 교리사상. 제화동대도 신도들 평소 의복에 녹표(祿標)를 부착하는데 20세 이상은 가슴에 남좌(男左) 여우(女右)로 한다. 본교에서는 이를 불사약으로 생각한다.

2025-07-0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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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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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이규보는 「노무편(老巫篇)」 병서(幷序)에서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살았는데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들려 괴로워하던 차에 나라에서 명을 내려 모든 무당들로 하여금 멀리 옮겨가 서울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자 이를 기뻐하여 시를 지었다”라고 시를 지은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자무당과 남자무당을 각각 무당[巫]과 박수[覡]로 구분하였고 굿의 연행과 관련된 부분이 묘사되어 있다. 시에는 무당의 공수와 도무(跳舞) 굿당 제석거리 장면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을 그린 무신도 와고(瓦鼓)와 물동이[喧]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1 ...

2025-07-0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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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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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나운몽은 평안도 안주의 보광학교 고등과를 졸업 후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스스로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일본에서의 차별과 민족적 상황에 대한 큰 실망이 원인이었다. 미곡상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고향을 탈출한 후 주색(酒色)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어”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정처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합천 해인사에서 중이 되었지만 파문을 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새별산인 용문산에 입산하여 구도자의 길을 출발한 것은 1940년 5월 7일이었다. 1942년 어느 날 용문산 토굴에서 “네 마음을 정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의심스 ...

2025-07-0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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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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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김재경은 호는 심전(心田) 혹은 마추(馬秋)라고 하며 불아신궁 창립 후 단제성조불아신궁총관법사 불아교화회지도위원장 미륵종단총본산 법상가본부대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원래 각세도 서관을 담당하던 신태제의 수제자로였다. 신태제가 이선평 사후 각세도남관에서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립할 때에도 그는 함께 하였다. 특히 그는 영통자로서 영을 통해 내리는 말을 받아 교주 신태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4년 정도교 일대옥사를 계기로 교주가 사망하게 된 후 김재경은 황덕시와 분열하게 되고 그는 각세도 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여 ‘ ...

2025-06-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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