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김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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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교(天眞敎)

김연국(金演局)은 김시습의 13세손으로 1857년 2월 13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났다. 동학에 입도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시형이 영월·정선 쪽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1870년대에 이미 동학에 입도하여 있던 숙부 김병내의 영향으로 입도하였다. 최시형이 강원도 영월군 정선에 거주하는 김병내의 집에 왔을 때 김연국은 최시형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등과 함께 그의 3대 제자가 되어 교조신원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896년 1월에는 구암(龜菴)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1901년 5월 29일 공주 무성산에서 최시형의 제사를 준비하던 중 공주감영의 대장 이민직에게 체포되어 19 ...

2025-06-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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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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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도

김석열은 1912년 1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대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으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대전시 중구 오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였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말살되어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84년에 삼신도를 창립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였던 정근철과 손을 잡고 『일신경(一神經)』을 간행하는 등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근철과 함께 ‘하느님 명호도용 및 단군성조의 경칭 침해 배제 청구의 소’(92가합 71999호 사 ...

2025-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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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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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김방서는 1893년 동학교도가 보은 장내에 모여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을 때 봉성(鳳城 :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 대접주로 참가하였다. 그 뒤 금구의 접주로 활약하였는데 전라도의 북접(北接)이라고 불린다. 동학농민군이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 할 때 익산의 대접주로서 대도회소를 설치하였다. 장흥의 관군들이 전봉준의 남접군이 북상한 틈을 타 동학도를 토벌하기 시작하자 동학군 3000명을 이끌고 12월 3일 장흥성을 함락시키고 장흥부사를 죽였다. 그러나 곧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의 공격으로 동학군은 대패하였다. 전봉준·손화중(孫華仲) 등과 재기를 도모하다가 전라북도 순창 복흥산(福興山)에서 체포되었 ...

2025-06-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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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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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68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구포에서 부친 창희(昌熙)와 모친 풍양 조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 교단에서는 무원종사(茂園宗師)로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대종교 도사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였고 대표위원이 되어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에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일본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 신민 ...

2025-06-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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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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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김갑조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의 불우한 환경에서 광의국민학교와 구례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갱정유도에 입도하고 1951년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1954년 이른바 ‘대화중흥국(大和中興國)’ 사건으로 강대성이 사망한 뒤 교단 내부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시기에 김갑조는 순천시 장천동 오봉산 아래 자신의 집에서 첫 번째 15일 수련을 하였고 좀 더 조용한 순천시 용수동으로 수련장소를 옮겨 몇 차례 더 수련을 하였다. 그리고 1957년에는 광양군 백운산으로 입산하여 영대암(靈大庵)이라는 암자 터에 움집을 짓고 100일 수련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58년 2월 24일(음) 새벽에 갑자기 마당에 나와 동쪽을 ...

2025-06-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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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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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유교의 국가의례를 오례(五禮)라고 한다. 오례는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가례(嘉禮)·빈례(賓禮)의 다섯 가지 의례를 가리키는데 이 중 길례(吉禮)는 국가의 제례(祭禮)를 의미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시대 이전에도 이미 있었지만 이것이 유교의례로 체계적으로 정비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국가의례의 정비에 힘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편찬된 것이 성종 때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이다. 조선시대의 길례는 기본적으로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거행되었다.『국조오례의』에서는 길례에 해당하는 제사들을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

2025-06-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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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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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해 장재(張載)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은 형체가 있은 후에 갖게 되는 것으로 선천적 인간의 본성인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구분하였다.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관한 논의는 선악(善惡)이나 수양(修養)의 문제로 연결된다. 본연지성은 선하기만 하고 악함이 없지만 기질지성은 선함과 악함이 혼재되어있다고 규정한다. 기질의 변화를 통하여 악을 선으로 돌이킬 수 있다고 하는 ‘기질변화’의 수양론도 제기되었다. 한국에서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논의가 논쟁의 수준으로 심화되어 인물성(人物性)에 관한 동이(同異)논쟁을 일으켰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과 외암(巍巖) 이간(李柬)에 의해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으로 분리되 ...

2025-06-3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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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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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기도원 운동은 세계 기독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산물이다.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제시대부터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박한 형태의 산기도 모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 이미 ‘백두산산상기도회’ ‘금강산기도회’ ‘경주약수기도회’ ‘서울삼각산기도회’ 등이 알려져 있었고 개인이 산에 움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 소박한 형태의 기도처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기도원운동이 출현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1945년 강원도 철원에서 유재헌 목사에 의해 시작된 ‘대한수도원’이 한국 개신교 기도원의 효시로 간주된다. 유재헌 목사가 6.25전쟁 당시 납북되면서 이 ...

2025-06-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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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삼종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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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금강대도에서는 교육기관으로 1922년 계명학교(鷄鳴學校) 1929년 문창재(文昌齋) 1947년 금강고등공민학교 1952년 금강초등공민학교 1963년 금강재건생활학교를 설립한 바 있다. 1979년 삼종학원기성회를 조직하여 대학 설립을 시도하였고 1994년 금강삼종대학교육원을 두어 기초 교리 강좌를 시도하였고 2001년에는 교육원·금강삼종대학·대학원의 삼부체제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육원은 주로 기초교리 강좌 대학원은 심화 교리 강좌를 운영하며 대학원은 도직자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종시 총본원에 본교를 두고 서울 부산 대전 청주 거창 등에 분교가 있으며 정규 종합대학 및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2025-06-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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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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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배(金庸培 ?-1935)가 1895년경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서 세운 남학계 신종교. 오방불교(五方佛敎)의 김광화(金光華)가 사망한 후 김경배(金敬培 혹은 坦培)가 대를 잇자 이에 대항하여 김용배(본명은 明奉)가 분파를 일으켜 설립한 종교이다. 이 파는 뒤에 정도교 ․ 청림교 등을 규합하여 광화교로 개칭하였다. 1934년 당시 신자가 3천명에 달하는 교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신앙의 대상과 모든 사상은 오방불교와 같다. 다만 여러 곳에서 산제를 지냈는데 산제기도의 대상은 북두칠성(大聖北斗七元聖君)과 산왕(山王佛)을 주로 하여 광화교주자씨미륵존불(光華敎主慈氏彌勒尊佛) · 아미타불(阿彌陀佛) · 삼존천위(三尊天位) · ...

2025-06-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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