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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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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에는 두 가지 기도법이 있다. 하나는 주문 등으로 주력(呪力)공부하는 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 명호를 반복적으로 송하는 염불(念佛)기도가 있다. 법일예식 중에는 정근을 하는데, 염불로 정근을 한다. 즉 ‘남무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남무구품도사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7회)를 연속적으로 송한다. 모두 21회를 칭명(稱名) 염불로 정근 한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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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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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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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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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임하유고』는 부안지역 유생 김방선이 서술한 일기 자료로서 내제(內題)로는 「갑오구월일제행일기(甲午九月日濟行日記)」로 되어 있다. 김방선의 자는 익원(益元)이고, 호는 임하(林下)이다. 주된 내용은 고부민란의 전개상황과 해산, 그리고 해산 이후 전봉준이 손화중이 있는 무장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게 되는 과정 및 황토현 전투와 전주성 공방전 등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전봉준이 혁명 발발당시 2차 집결지로서 무장 임내(林內)로 정할 때 “무장 인천(人川)으로부터 동학의 무리 5∼6천 명을 불러 모았다.”고 김방선을 말하고 있다. 또한 줄포가 조선시대에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연 ...

2025-10-0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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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불교현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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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가 모체가 되어 1965년 대한불교불입종이 만들어지고, 1988년 대한불교관음종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5-10-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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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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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부를 상제로 모신다는 의미.

2025-10-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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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책임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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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원리강론』에 따르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소생기(蘇生期), 장성기(長成期), 완성기(完成期)의 질서적 3단계의 성장기간을 거쳐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다. 피조물은 그 성장기간 동안 원리 자체의 주관성(主觀性) 또는 자율성(自律性)에 의해 성장하도록 되어 있고, 하나님은 이 기간 동안 피조물이 원리에 의하여 성장하는 결과만을 보아서 간접적인 주관을 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는 원리 자체의 주관성, 자율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책임을 다하면서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 17)’고 한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 시조가 그들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수행했어야 했던 인간책임분 ...

2025-10-0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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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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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통일본부

이창환은 1919년 5월 2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교동초등학교, 경기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건축업과 자동차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1953년 서울에서 자신 삶의 임무를 ‘세계통일의 사명자’로 자각하고 진리 탐구에 매진하는 중 자신의 심리를 텅 빈 상태에 두게 되면 우주신과의 교령이 가능했고, 그때마다 세계통일의 진리와 그 방법을 영감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계천재구락부 창립, 세계초능력자구락부 창립, 인류조상전 건립, 세계종교박물관 건립, 영적 UN기구 창립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지구에 안착하는 방법과 그 시 ...

2025-10-0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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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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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재유는 1878년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풍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백람(白嵐)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10년 동안 한문사숙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3년 동안 활약하였다. 192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하였고, 북일도시교원(北一道施敎員)과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등을 역임 하였으며,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와 천전건립주비회(天殿建立籌備會)에도 헌신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 때에 일경에 체포 ...

2025-10-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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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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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천지원리교

이성재는 1921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삶의 목적과 의의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스승을 찾았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피난을 갔던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각세도 도주인 이선평의 아들 이동주를 만나 각세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세도에 입문한 후 도조 이선평을 찾아가 2년여에 걸쳐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된 그는 서울로 가서 김월정(金月正)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두 부부는 함께 각세도 신앙과 수련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선평이 사망한지 20년 되던 1975년 부인 김월정이 ...

2025-10-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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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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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임도, 각세도동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교단을 설립 후 포교가 확대되자 사관제도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사관제도는 동서남북 네 방면에 관(觀)을 두고, 자신의 10대 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네 사람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관리,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각세도 동관의 도주로 임명된 것이 이상제이다. 이상제는 동관의 도주로서 전권을 위임받아 포교활동에 주력하다가,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 ‘귀임도’로 교단명칭을 변경하고 독자적인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상제 사후 원제상 등이 후계를 이어받아 교단을 운영하였으나, 교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

2025-10-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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