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종운
대순진리회
종운의 전문(全文)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성(鐘聲)명(鳴)혜(兮)여 우주(宇宙)경응(警應)이로다. 제일(第一)명(鳴)혜(兮)여 천기(天氣)하강(下降)하고 제이(第二)명(鳴)혜(兮)여 지기(地氣)상승(上昇)하고 제삼(第三)명(鳴)혜(兮)여 인도(人道)중정(中正)하고 제사(第四)명(鳴)혜(兮)여 조화(造化)시정(始定)하니 만유(萬有)구비(具備)로다. 종성(鐘聲)이 기하(幾何)오 십오(十五)상속(相續)이라 기리(其理)여하(如何)오 팔괘(八卦)상탕(相盪)하고 구궁(九宮)성수(成數)로다. 종횡(縱橫)운용(運用)하야 십오(十五)성진(成眞)이라 진법(眞法)여시(如是)하니 시왈(是曰)진리(眞理)로다. 각(角)항(亢)저(氐)방(房)심 ...
2025-10-09 21:11
6
종법위원회
금강대도
금강대도의 중요 안건을 의결하는 기구이며, 종법위원은 신앙심이 돈독하면서 오래도록 수도한 도인(道人)이나 덕망을 두루 갖춘 원로들 가운데 도주가 종법위원으로 임명한다. <참고문헌> 『건곤부모님과 금강대도의 진리』(이재헌, 미래문화사, 2003)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Ⅱ(이재헌, 미래문화사, 2010)
2025-10-09 21:10
6
종무행정
대한민국의 종무행정은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문교부에 담당부처가 설치된 이후, 문화공보부, 문화부, 문화체육부 산하에서 지속, 확대되었다. 2008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에선 종무담당관 3인, 정원 18명이 종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종무실의 주요 기능은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 및 종교로 인한 사회갈등 예방, 사회 양극화 등 국가 및 사회현안 문제 해결에 대한 종교계의 선도적인 역할의 유도, 전통 종교문화의 보존 및 현대적 계승, 문화의 다양성 구현 및 국민의 문화적 요구 수용이다. 초기 신종교에 대한 종무행정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유사종교’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1960년대까지도 종교와 유사종교 ...
2025-10-09 21:08
6
종교취지서
대종교
하상역이 저술하였다고 하는 대종교(大宗敎)의 설립취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문헌.
2025-10-09 21:02
6
종교연구원
1964년 이창규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별칭.
2025-10-09 21:00
6
조선소년군
보천교
1923년 5월에 보천교경남진정원이 주최하는 ‘보천교소년회’창립총회에서 ‘조선소년군’의 조직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6월에 보천교 소년들 가운데 ‘신체가 건강하고 의지가 견고하며 학적이 양호’한 15명을 선발하여 ‘조선소년군’이라 하였다. 조선소년군은 경상남도 진주의 보천교청년회와 공동으로 자선음악회를 개최하여 낸 수익금을 조난자 유족들의 구호활동자금으로 썼다. <참고문헌> 『보광』 (보천교, 1922) 「보천교의 교육활동」(김재영, 『신종교연구』제14집, 한국신종교학회, 2006)
2025-10-09 20:14
6
제주 법정사터
보천교 및 불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리 산1번지의 법정사는 1918년에 승려들과 보천교인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제주법정사 항일항쟁’을 계획하고 준비한 장소이다. ‘제주법정사 항일항쟁’은 1918년 10월 7일에 법정사의 승려들과 보천교인, 그리고 도순리 인근 마을 주민 등 총 400여 명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제주도 내 최초·최대의 항일운동이다. 참여자들은 화승총과 곤봉 등으로 무장하고서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시키겠다는 거사 목적을 격문을 통해서 알렸다. 그리고 중문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일본인들을 구타하였다. <참고문헌> 「濟州 法井寺 항일항쟁 연구」(안후상, 『종교학연구』제15집, 서 ...
2025-10-09 19:42
6
정일기념일
천진교
김연국이 창립한 천진교의 대신사 해월 최시형의 종통계승기념일(8월 14일).
2025-10-09 19:20
6
정일교
한얼교의 초기 명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9 19:20
6
정요순
광명도
정요순은 1913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소학교를 마친 후 일본인 상점에서 장사를 배워 성진과 평양 등에서 상공업을 경영하는 사업가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었고 호화스런 향락생활을 하였으며, 창씨개명 후 가족과 일본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일제에 협력하면서 부를 축적한 그는 그러나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느낀 바 있어 수도생활을 시작하였고, 농사를 지으면서 주경야독으로 신구 의약서를 연구하였다. 한편 최훈남(崔薰南)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고 유불선야회(儒佛仙耶回)를 종합한 ‘무극천권숭배설(無極天權崇拜說)’을 배우기도 했으며,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관음송엽방(觀音松葉方)’이라는 약을 먹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
2025-10-09 19:12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