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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미륵불숭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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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천의 증산대도일화장 다른 이름

2025-06-0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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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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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불교(天華佛敎)

천화불교(天華佛敎)에서 석가모니불을 부르는 말.

2025-06-0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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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무도청산기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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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국선도연맹

국선도의 청산기화권은 일종의 무예이지만 단순히 신체 단련과 강화를 통해 남을 제압하는 무술에 그치지 않고 심신수련을 통해 정기신(精氣神)을 통일하여 하늘의 뜻을 깨닫고 올바른 몸과 마음을 지켜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심신수련을 위한 수련체계이다. 청산기화권은 평상시에는 심신수련법으로 자기 수양을 위해 활용되고 위급시에는 자기 방어와 상대항 제압을 위한 호신술로 활용된다. 도법을 전수한 청산선사의 이름을 따서 청산기화권이라고 지칭된다. 이 책에서는 국선무도 청산기화권의 기본인 기화행보법 혈타법 기화화중법 기화오공법 기화팔법 기화연혈법 등이 상세히 설명되며 국선무도 무기술로 검법과 창봉법 단건법이 소개된다.

2025-06-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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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기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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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의 가르침에 따라 최초 아홉 명 제자들이 전남 영광군 백수읍의 구수산 중 아홉 개 산봉우리에 각각 올라가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않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도한 장소이다. 중앙봉을 중심으로 옥녀봉ㆍ마촌앞산봉ㆍ촛대봉ㆍ장다리봉ㆍ대파리봉ㆍ천기동뒷산봉ㆍ밤나무골봉ㆍ설래바위봉으로 정했다. 구인기도봉은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했다. 예컨대 해안지대라서 밀물일 때는 하천이 범람하여 건너기 어려우므로 촛대봉과 마촌앞산봉 대신 눈썹바위봉과 상여바위봉이 추가되었다.

2025-06-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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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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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삼성궁에서는 신선도의 계율이라고 하면서 신도들로 하여금 삼륜(三倫)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를 지키게 한다. 그 가운데 구서는 ①효(孝) ②우(友) ③신(信) ④충(忠) ⑤손(孫) ⑥지(知) ⑦용(勇) ⑧염(廉) ⑨의(義)이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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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기원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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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여래종

한국불교여래종에서 행하는 신앙의례.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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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해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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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도

1984년 삼신도를 창립한 김석렬은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인 정근철과 협력하여 『일신경』·『백의민족의 함성』·『기독교의 유일신 신앙 비판』·『계룡해인승』 등의 저술을 출판하였다. 이 저술들의 주된 내용은 외래사상을 배척하고 우리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5-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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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보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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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시해란 육신으로부터 혼백이 빠져나와 자유롭게 활동한 뒤 다시 돌아가는 기술로 도교 수행법의 하나이다. 수행에 능숙하게 되면 신체까지 선거(仙去)할 수 있다고 한다.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는 최치원의 외척인 승려 현준(玄俊)이 당나라에서 시해법을 배워 ≪보사유인지술(步捨游引之術)≫이라는 책을 저술하자 최치원이 다시 현준에게서 그 법을 배워 ≪가야보인법≫을 지은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보(步)는 혼백이 걸어 나감을 사(捨)는 육신을 내버려둠을 유(游)는 천지간을 자유자재로 떠돎을 인(引)은 5백 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 지상에 남겨두었던 육신을 끌어올려다가 혼백과 합침을 의미한다. ‘가야’는 최치원이 만년에 기거하던 ...

2025-04-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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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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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남접의 교인가운데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 운동을 반대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에만 전념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하여 하나의 교파가 만들어지게 되었음. 이 교파를 지리산파 혹은 회은도라고 불렀으나 얼마가지 못하고 소멸되었음.

2025-10-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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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적동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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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1912년 이토암이 이곳에 터를 잡았고, 1913년에는 이청학이 탄생하였으며, 1916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이곳은 골짜기를 양팔로 품에 안은 듯 좌우로 뻗어 내린 지맥이 좌청룡, 우백호가 분명하고, 앞에는 큰 산이 일(一)자로 가로 놓여 있어 이토암이 은신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였다. 이때 20여명의 제자들이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가며 이곳에서 이토암을 모셨다고 한다.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신이한 의술로 제자들을 모으는 한편, 자암(慈庵)과 함께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창생제도를 기원하는 천제를 베풀고, 『교유문』을 저술하는 등 금강대도의 종교적 기틀을 세워나갔다. 이토암이 떠난 이후로 황폐 ...

2025-10-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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